외마디 한자말 털기 (98) 광光

[우리 말에 마음쓰기 941] '광을 낸 구두', '자연광' 다듬기

등록 2010.07.21 12:06수정 2010.07.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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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광을 낸 구두

.. 번쩍번쩍 광을 낸 구두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시장이 어깨를 으쓱한 뒤 커다란 가위로 빨간 테이프를 잘랐습니다 ..  <쿠루사(글),모니카 도페르트(그림)/최성희 옮김-놀이터를 만들어 주세요>(동쪽나라,2003) 50쪽


"어깨를 으쓱한 후(後)"라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한 뒤"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테이프를 커팅(cutting)했습니다"라 하지 않고 "테이프를 잘랐습니다"라 적은 대목 또한 반가워요. 이렇게 꾸밈없이 글을 쓸 수 있으면 기쁘고 고마운데, 이처럼 있는 그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대목은 아쉽습니다. 구두를 닦을 때에 '번쩍번쩍'이라 했으면서 "빛을 내다"라 하지 못하고 "광을 내다"라 하고 맙니다.

 ┌ 광(光)
 │  (1) = 빛
 │  (2) 물체의 표면에 빛이 반사되어 매끈거리고 어른어른 비치는 촉촉한 기운
 │   - 헌 구두를 광이 나도록 닦았다 /
 │     어머니는 장롱에 왁스를 칠해 반짝반짝 광을 낸다
 │  (3) 화투의 스무 끗짜리 패
 │   - 광이 나오다
 │
 ├ 번쩍번쩍 광을 낸 구두에
 │→ 번쩍번쩍 빛을 낸 구두에
 │→ 번쩍번쩍 빛나게 한 구두에
 │→ 번쩍번쩍 잘 닦은 구두에
 │→ 번쩍번쩍 닦아 놓은 구두에
 └ …

어릴 적에 아버지 구두를 자주 닦았습니다. 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아버지는 늘 구두를 신었고, 새벽이면 어머니나 형이나 제가 이 구두를 닦아야 했습니다.

구두는 늘 반짝반짝하도록 닦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반짝반짝 닦도록 하던 구두를 놓고 세 가지로 이야기했습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하고 "반짝반짝 윤(潤)이 나도록"하고 "반짝반짝 광(光)이 나도록" 세 가지입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세 가지 말을 고루 들었기 때문에, '빛-윤-광' 세 가지는 다른 낱말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따지고 보면, "빛 윤(潤)"이라는 한자요, "빛 광(光)"이라는 한자입니다. 어느 모로 살피든 하나같이 '빛'을 말하고 있습니다.

 ┌ 빛이 나게 닦다 (o)
 │
 ├ 윤(潤)이 나게 닦다 (x)
 └ 광(光)이 나게 닦다 (x)

빛이 나도록 닦으라는 구두라 한다면, 말 그대로 "빛이 나도록"이라 하면 됩니다. 애써 '빛 光'이나 '빛날 潤'이라는 한자를 써서 가리켜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화투를 칠 때에는 '오 광'이 될 테지만, 구두를 닦을 때에는 빛일 뿐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빛은 그예 빛입니다. 빛에는 빛깔과 빛살과 빛무늬와 빛결과 빛그림과 빛그늘과 빛꽃 들이 있습니다.

ㄴ. 자연광

.. 나는 자연광이나 있는 그대로의 빛이 좋다. 자연광이란 단순해서 사진에서 다루기도 비교적 쉽다. 거기에 플래시로 인공광을 넣으면 한꺼번에 모든 것이 뒤엉킬까 봐 두렵기도 하다 ..  <김윤기-내 멋대로 사진찍기>(들녘,2004) 81쪽

"있는 그대로의 빛"은 "있는 그대로인 빛"이나 "있는 그대로 둔 빛"이나 "있는 그대로 살린 빛"으로 다듬습니다. '단순(單純)해서'는 '수수해서'나 '투박해서'나 '꾸밈이 없어서'로 손질하고, '비교적(比較的)'은 '퍽'이나 '꽤'나 '썩'으로 손질합니다. '플래시(flash)로'는 '불을 터뜨려'나 '불빛을 터뜨려'로 손보며, "모든 것이"는 "모두 다"나 "모두"로 손봅니다.

 ┌ 자연광(自然光)
 │  (1) [물리] 램프ㆍ전구 따위의 인공적인 광원에서 나오는 빛이 아닌, 태양
 │      따위의 천연의 빛
 │   - 천장에 창을 내어 자연광이 들어오게 하였다
 │  (2) 편광(偏光)이 되지 아니한 빛
 ├ 인공광(人工光) : 인공적으로 만든 빛
 │
 ├ 자연광이나 있는 그대로의 빛이 좋다
 │→ 자연스럽거나 있는 그대로인 빛이 좋다
 │→ 자연이 베푸는 빛이나 있는 그대로 살린 빛이 좋다
 └ …

자연이 내는 빛이기에 '자연광'이라 한다는데, '자연빛'이라 일컬을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이 따로 만드는 빛이기에 '인공광'이라 한다지만, '만든빛'처럼 가리켜 볼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따로 한 낱말로 삼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빛"이라든지 "자연이 베푸는 빛"처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꾸민 빛"이라든지 "사람이 만든 빛"이라든지 "억지로 만든 빛"이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자연'이 한자말이고 '인공' 또한 한자말이기에 '자연광'과 '인공광'이라고만 적어야 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얼마든지 '자연빛'과 '인공빛'이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태양광' 에너지라고만 적을 까닭 없이 '햇볕' 에너지나 '햇빛' 힘이라 일컬을 수 있습니다. '채광(採光)'이 좋다고 말하기보다는 '빛받이'가 좋다고 하거나 '빛이 잘 든다'고 하면 됩니다.

빛을 느끼기에 빛을 이야기하고, 빛깔을 헤아리기에 빛깔을 말합니다. 사진은 빛과 그림자를 고루 살피면서 즐기는 예술이요, 빛으로 그림을 그리듯 담는 사진이기에 '빛그림'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광선(光線)'이 아닌 '빛살'입니다. '광적(光跡)'이 아닌 '빛줄기'입니다. 빛이 자국을 남긴다고 해서 '빛자국'이거나 '빛자취'입니다. '후광(後光)'이 난다고 합니다만, 우리한테는 '뒤에서 빛이 나는' 셈입니다. 또는 머리 위에서 빛이 난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뒷빛(뒤 + 빛)'인 '후광'인데, 가만히 따지고 보면 '앞빛'이나 '뒷빛'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써 볼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니까요. 꾸밈없이 글을 쓰면 넉넉하니까요. 수수하게 생각을 나누면 즐거우니까요. 조촐하게 글을 주고받으면 아름다우니까요.

덧바른다고 어여쁠 수 있지 않은 삶이고 넋이며 말입니다. 덧붙인다고 훌륭할 수 있지 않은 꿈이며 얼이요 글입니다. 차근차근 가다듬으며 어여쁜 길을 걸어갈 말입니다. 하나하나 돌보면서 훌륭한 자리를 찾아 뿌리내릴 글입니다. 우리는 우리 말이 참다이 말빛을 드러낼 수 있게끔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글이 제대로 글빛을 내보일 수 있도록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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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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