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추적의 명탐정 정약용(60회)

도시혈(盜屍穴) <2>

등록 2010.07.30 09:55수정 2010.07.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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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인근에 묻힌 건 송덕상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방법을 맹천보가 알려줬을 것이고 그 일로 인해 그는 살해당했을 것이다."

"하오면 금오위 사건은?"
"아직은 그 점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지만, 이러한 상황을 조사하려 장감찰이 동분서주한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죽은 장감찰은 유달리 삼각산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니까."


다시 하루가 지나 9월에 들어섰지만 새롭게 드러난 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북한산을 찾아나섰는데 인수봉 아래 약수터에서 만난 어떤 사내가 시 한 수를 낭랑하게 읊었다. 그것은 이성계가 새왕조를 이룩한 후 한양을 노래한 시였다.

우뚝 솟은 뫼는 하늘까지 솟았네
한양의 지세는 하늘을 열어 이룩한 땅
굳건한 큰 대륙은 삼각산을 떠 받쳤고
넓은 바다 긴 강물은 오대산에서 흐르네

읊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비감이 어렸다. 글 읽는 선비 같진 않았지만 시구를 읊조리는 품새가 당당하여 정약용은 힐끗 스쳐보며 지나치려는 데 사내의 말이 무심히 들려왔다.

"선비님께서도 명당을 찾아왔습니까?"
정약용이 씨익 웃는 걸 보며 다시 한소릴 내놓았다.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만, 살아생전에 이웃을 돌아보며 살았어야지 어째서 제 핏줄만 생각하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아빈 죽은 송장을 이 곳 저 곳 산천에 뿌리는 일을 했었습니다만 아비의 주검은 못난 아들의 손에 이끌려 산천에 묻지 못하고 수목장을 하고 말았습니다."


"허어 그래요."
"아비의 몸을 이곳 북한산 자락에 묻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지요. 오래 전에 아비의 꿈길을 찾아온 그 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죄를 얻어 목이 잘렸으니 무덤을 평장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사내는 그곳이 어디쯤인가를 검지 끝으로 주욱 일직선을 긋고 자리를 떴다. 급히 사헌부로 돌아온 정약용은 관아에서 일을 하는 풍수사에게 동행을 청했다. 인수봉 약수터가 멀지않은 장소에 이르러 부아악에 대한 연유를 물었다.


"풍수사께선 풍수에 관한 일을 보시니 이곳 삼각산에 대한 여러 일들을 아시리라 봅니다. 빈한한 집에선 장지를 구하지 못해 수목장을 한다 들었습니다만 달리 들은 얘긴 평장을 쓴다고도 했습니다."

"봉분을 쓰지 않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묻혀야 할 자가 나라에 죄를 지은 경웁니다."

나라에 죄를 지었으니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도록 평장을 쓴다는 것이니 그 땅은 누구라도 함부로 내딛을 수 있는 흉측한 곳이다.

"그렇다면 풍수사에게 한 가지 묻겠소. 저쪽 위 인수봉을 위주로 누울 곳을 찾는 방법이 없겠소?"

"누울 곳이라면?"
"장지로 쓰는 경우지요."

"이 지역은 장지론 적합하지 않은 금역이에요. 나라에서 금한 땅이지요. 이곳에 장지를 쓴다면 당연히 풍수비기를 따라야지요. 그렇게 하더라도···, 이곳은 궁혈에 해당합니다."
"궁혈이라니오?"

풍수사는 말없이 위쪽을 가리켰다. 부아악은 어미가 아이를 업고 있는 활 쏘는 혈이다. 삼각산 인수봉에서 일직선으로 달려 내려온 곳은 궁혈이기 때문에 화살이 멈추는 곳이 혈자리며, 활을 쏘았을 때 화살이 꽂히는 곳이 중심점이다.

혈은 찾기도 어렵지만 이름난 풍수사라 해도 진혈을 찾아 묘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풍수사 역시 땅을 살피는 지관으로 잡직에 응할 무렵 그에게 풍수비기를 가르치던 스승은 그런 얘길 했었다.

"삼천리 금수강산엔 온갖 형상의 혈자리가 자리잡았네. 살아있는 게 있으면 죽은 것도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게 있으면 그렇지 않는 것도 있네.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도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있네. 집에서 기르는 짐승도 있고 범접하기 어려운 호랑이나 뱀도 있네. 이러한 모든 것 중에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게 용이란 동물이네."

용은 신령하여 민간인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항상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용은 나라를 세울 자리에 나타나므로 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지만 이 나라 곳곳에 몸체를 내린 용의 흔적을 보고 풍수사들은 그것들이 일어나거나 잠들기를 바라는 비방을 쓰기 마련이다. '역린'이란 게 뭔가? 용의 수염을 뽑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용의 화를 돋우는 데 달리 말하면 역모에 해당한다.

용은 나라를 여는 일과 관계있기에 항상 왕실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감록>에도 계룡산에 전해지는 풍수비기에 촉각을 세우며 지내왔지 않은가. 그게 용이다. 계룡산의 중심 산형은 '용이 제 몸을 휘감고 돌아보는 이른바 회룡고조형'이다.

이런 곳은 잡직이라 해도 녹을 먹은 사람들 시선이 항상 눈 여겨 보는 곳이므로 탈이 일어나기 힘들었으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나 고양이, 쥐나 닭 등은 관심밖의 일처럼 내버려 두지만 여기에도 어느 곳을 진혈로 쓰느냐에 따라 좋은 기운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소는 미간을 중심으로 해야 하며, 야(也)자 형의 혈 앞엔 천이 있어야 하고, 금계포란형은 알을 품는 곳, 뱀은 귀 부분, 보검출갑형은 칼끝이 명당이라는 것이다. 강직하고 유순한 소는 미간이 명당이나 이러한 혈자리가 왕실을 위협하거나 풍속을 해친다는 믿음은 없었으나 삼각산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최씨 성을 쓰는 풍수사는 말한다.

"시생도 한때 경아전에서 일했습니다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면 시생처럼 잡직을 받았다 해도 품계가 없는 건 이부 관리들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지요."

"자넨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잘 것 없는 일을 한다고 믿은 탓이지요. 그래서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합니다."

최씨 성을 쓰는 풍수사가 그런 생각에 젖어있는 건 경아전 관리란 게 중인계급에 속하는 말단 관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품계가 없었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재직기간을 충실히 마치면 나중에 종6품에 해당하는 관직을 받기도 했었다. 정약용은 분위기를 바꾸었다.

"장감찰이 삼각산을 조사하다 목숨을 잃었네. 자네 생각에 의심나는 게 있으리라 보는가?"
"그 분은 가끔 저를 찾아와 그런 말을 했습니다. 품계는 가장 낮지만 나라에 공을 세우면 결코 자신만이 좋은 자리에 앉지 않겠다 했지요. 사실 그렇잖습니까. 우리같은 하급관리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장감찰은 시생이 일을 마치는 시간을 기다려 주기도 하고 의문 나는 사항을 묻기도 했어요. 바로 이곳에 관한 일입니다."

최 풍수사가 가리키는 손끝은 부아악에서 한달음에 내려와 화살이 꽂히는 곳으로 산허리에 해당됐다. 근처엔 곳곳의 돌조각이 떨어져나간 모습이었으니 다섯 자 앞엔 약간 높은 둔덕이 있었다.

"수찬 나으리, 풍수비기에 의하면 저 곳이 부아악의 명당이지만 역모의 조짐이 꿈틀댄다는 혈자립니다. 나으리께서 시생을 부를 때 저곳을 염두에 뒀다는 생각에 산역을 할 건장한 사내들을 미리 불렀습니다."

그가 손짓하자 다섯 명의 장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약용이 조심스럽게 그들을 진두지휘했다.

"그동안 자네들은 이런 일들을 계속했으리라 보네만, 이 일은 신속하고 조심스럽게 처리해 주기 바라네. 자네들이 나라에 공을 세우면 그에 상당한 포상은 당연히 내릴 것이네. 참고 삼아 말하지만, 이곳에 묻힌 자는 역모의 수괴와 깊은 관련이 있으니 조심히 처리하게."

최 풍수사는 봉분이 설 자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지 주변을 살피고 나서 한 장소에 막대기를 꽂았다. 그곳을 위주로 파헤치란 뜻이다. 겉흙을 털어내고 털북숭이 사내가 괭이를 찍자 이상한 반향이 울렸다. 급히 주변 흙을 털어내고 주위를 긁자 석회가 나타났다.

윗부분을 깨뜨리고 석회를 떼어내니 거기엔 몇 자의 글귀가 써진 나무로 된 검은 조각이 나타났다. 사내가 건넨 나무 조각을 받아든 순간 정약용의 눈이 커다랗게 치뜨렸다.

<北來妖士鄭持平單知一絶之死未知萬代榮華之地>
'북쪽으로부터 요사스런 학사 정씨 성을 쓰는 지평이 와서 이곳이 흉한 곳이므로 이장을 권할 것이니 그의 말을 듣지 않아야 만대에 영화가 이어진다'

후손들의 빈틈없는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곳이 금역이란 점에 정약용은 석회부터 깨뜨리란 말을 던졌다.

"최 풍수사도 알다시피 이 지역은 묘를 쓸 수 없는 지역이네. 봉분 안에서 나온 흉측한 물건은 장감찰이 이곳을 조사하고 내가 부아악에 관심을 가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네. 묘를 쓸 수 없는 지역에 이장을 막으라는 글귀가 있는가 하면 이곳에 내가 나타날 걸 예측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불측한 일이 아닐 수 없네."

이것은 죄를 지은 자가 무덤을 쓰고 그걸 막으려고 꾸민 일이지만 어떤 일이 생겨도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정약용이 작업을 강행한 지 30분쯤 됐을 때 석회의 한쪽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조금씩 범위를 넓혀 나가자 이윽고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보고 산역꾼의 시선이 정약용에게 향했다.

"어떻게 할까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묻고 있었다.

"부수게!"
방법을 물은 것이지만 이내 고개를 끄떡이며 산역꾼의 괭이 끝은 바닥을 난타했다.
"쾅! 쾅!"

소리가 두어 차례 울리더니 산역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바닥은 구멍이 뻥 뚫려 관은 이미 어디론가 흘러간 뒤였다. 최 풍수사가 소리쳤다.

"도시혈입니다!"
"도시혈?"
"이 자린 도시혈이었습니다."

이런 자린 사면이동(斜面移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역 지역인 이곳에 묘를 쓰는 건 적합치 않다. 다시 말해 누군가 이곳에 흔적을 남겨 정약용에게 경고의 말을 남겼던 건 일종의 선전포고라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정씨 성의 요사스런 학사가 온다는 말을 했지 않은가. 최 풍수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나으리, 활 모양의 터는 궁혈(弓穴)입니다. 아이를 업은 부아악 능선에서 활을 겨누면 화살이 떨어지는 곳은 아래 쪽이니 저를 따라 오십시오."

최 풍수사가 일행들을 끌고 내려간 곳엔 세개의 봉분이 있었다. 나란히 있는 봉분 앞쪽의 비석엔 선대왕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조씨(趙氏) 성의 궁인에 대한 행장이 기록된 비문이 있었다.

'금오위 이철형의 조모가 묻힌 무덤이면 하나여야 하는 데 어찌 셋인가?'

정약용이 의혹을 가진 것처럼 그곳엔 세 기의 무덤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주변을 살피고 나서 최 풍수사는 근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무덤을 가리켰다. 이내 정약용의 고개가 끄덕이는 것과 함께 최 풍수사의 말이 떨어졌다.

"두 곳과는 달리 이곳이 최근에 만든 봉분입니다. 시생이 여길 주목한 이유는 가장 오른쪽 무덤에서 바라다 뵈는 곳이 부아악으로 도시혈과 일직선을 이뤘습니다. 그곳에서 화살을 날린다면 당연히 여기에 떨어지겠지요. 여보게들, 이곳을 허물게!"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산역꾼의 손놀림은 빨랐다. 무덤 주위의 서른 자 안으로 출입을 통제시켜서인지 외부인은 무덤 안에 무엇이 있는 지를 알지 못했다. 그날 밤 한 통의 차자가 어전에 전해졌다.

<전하, 신 정약용 아뢰옵나이다. 십여 년 전 궁을 번란시키고 양위마마의 생명을 위협하던 송덕상과 문인방 패거리들이 민심을 교란시키고 모든 게 전하의 부덕인양 호도하길 그치지 않은 증거가 보이옵니다. 신은 송덕상의 처 동파가 묻힌 곳에 오래된 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송덕상의 유골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나 지하의 신께 맹세한 부적을 찾아내 면밀히 검사하여 추격 중에 있나이다. 전하, 아무리 주위에 믿는 이가 있다 해도 그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야 전하의 옥체 미령하실 것이옵니다.>

[주]
∎차자(箚子) ; 간이상소문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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