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1년 동안 신을 짚신을 겨우내 삼곤 했지~
이성옥
다음날 아침 다시 방문하니, 박 할아버지의 달인 솜씨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루에 자리를 깔고 한 움큼 짚단을 옆에 두고 본격적인 시범에 나선 박용근 할아버지의 손길은 아침부터 쏟아지는 빗줄기와 시합하듯 속도를 낸다. 마당 한켠에 할아버지 내외의 반찬으로 이용될 상추 고추 가지 등이 심어진 작은 비닐하우스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할아버지를 응원하듯 장단을 맞춘다.
어느새 달인에게서는 말이 사라졌다. 대신 두 손과 두 발이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양말을 벗고 양쪽 엄지발가락에 가는 새끼줄을 건다. 짚신의 기본 틀이 될 날이다. 허리춤에도 둘러진 새끼줄에 고정을 시키며 짚으로 엮어 나간다.
짚으로 새끼를 한 발쯤 꼬아 4줄로 날을 한다. 이어 짚으로 엮어 발바닥 크기로 해서 바닥을 삼고, 양쪽 가장자리에 짚을 꼬아 신총을 낸다. 신총은 발등을 덮어주는 부분이다. 이어 뒷꿈치가 될 날을 하나로 모으고 다시 두 줄로 새끼를 꼬아 짚으로 감아 올려 울을 한다. 가는 새끼로 신총을 꿰어 두르면 신기 편하게 된다.
자신있게 열심히 짚신을 삼는 달인의 동작을 따라 메모하는 일이 쉽지 않다. 짚신에 사용되는 낯선 단어에다가 "요렇게 심(힘)을 줘야 총총허니 쪼매라도(조금이라도) 오래 신제…"라며 이렇게, 저렇게를 연발하는 달인의 실력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탓할 뿐이다.
"짚신 만드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제. 일일이 손으로 새끼줄 꼬아서 만들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버려. 양쪽 1짝식, 1켤레 삼으려면 한 3시간 정도 걸리더라고." 실제 박 할아버지는 짚신 한짝을 삼는 데 꼬박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얼굴엔 싫은 내색이 전혀 없다. 그저 한 켤레를 다 삼아 제 짝을 지어주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인양 미안해 하셨다.
박 할아버지는 짚신삼기 체험 프로그램을 요청하면 농삿일이 아무리 바빠도 거절하지 않는단다. 이제는 체험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민박하는 둘레꾼들이 짚신을 만들어 보겠다면 민박집 주인들이 먼저 박 할아버지를 찾곤 한다.
"이 시골에 뭐 볼게 있다고 이렇게 와서 궁금해 할까, 갖고 있는 기술이라곤 그 옛날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짚새기도 삼고 했는디, 이젠 고것이 기술이 되야부렀당께. 허허. 이런 촌로한테도 배울거리가 있다고 찾아와 주니께 내가 더 좋제."박 할아버지는 매동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7살 때부터 지게지고 농사지고 일을 했다. 박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작은 손 하나라도 집안일을 돌봐야 했다. 그때 함께 시작한 일이 짚신 삼기였다. 질긴 고무신이 모두에게 혜택을 주진 못해 그 빈틈을 짚신이 메웠다.
때론 남의 집에서 거취하며 일손을 도와줄 때는 그해 겨우내 멍석을 한 개는 만들고 나와야 했다. 여기에 1년치 신을 짚신 2죽(1죽=10켤레)은 기본으로 삼아야 했다. 그러니 사랑방에 모이면 누가 먼저 끝내는지 시합하면서 무료하고 고단한 삶을 달랬다.
체험하면서 가족의 돈독함이 더욱 물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