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제자들을 전장에 보낼 수 없다"

평화헌법 사수를 위해 노력하는 오키나와 시민들

등록 2010.08.03 11:00수정 2010.08.0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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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1일부터 25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으로 오키나와현을 방문했다. 답사 첫날을 마치고 강의와 토론을 위해 세미나실로 향했다. 세미나장은 오키나와 교원노동조합사무실이다. 사무실은 오키나와현청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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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현청 오키나와 현청이다. 근처에 국제거리가 있다. 우리 서울로 치면 명동거리라고나 할까? ⓒ 김옥태

▲ 오키나와현청 오키나와 현청이다. 근처에 국제거리가 있다. 우리 서울로 치면 명동거리라고나 할까? ⓒ 김옥태

 

우리가 현청 앞에 도착했을 때, 방송차량을 이용한 1인 시위자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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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헌법 수호를 외치는 시민! 방송차량을 이용한 1인 시위자. 우리가 도착하여 관심을 보이자 더욱 열심히 평화헌법 수호를 외치고 있다. ⓒ 김옥태

▲ 평화헌법 수호를 외치는 시민! 방송차량을 이용한 1인 시위자. 우리가 도착하여 관심을 보이자 더욱 열심히 평화헌법 수호를 외치고 있다. ⓒ 김옥태

"평화헌법은 일본과 세계를 위한 보물"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

 

일본헌법이 평화헌법이라는 칭호를 듣게 된 것은 제9조의 내용 때문이다. 일본 평화헌법의 상징적 조항으로,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세계에 대한 약속이자 평화공약이다. 자위 목적 이외의 군대 보유와 해외에서의 군사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또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공격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 복구에 성공하여 경제 강국이 되면서 점차 우경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규군의 설치와 해외 파병, 핵무장을 위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누구보다 처절하게 겪은 오키나와 사람들이기에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헌법이 더 없이 소중하리라.

 

방송차량까지 동원한 평화시위가 나의 눈에 새롭고, 뜨겁게 다가왔다. 최근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지 않은가? 집회와 시위가 지나치게 제한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적으로 대하고 핍박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정부 고위 관료는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야당에게 투표한 젊은이들을 북으로 가서 살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착잡한 마음으로 세미나장으로 향했다. 세미나장은 오키나와현청 앞 로터리를 지나 국제거리 입구에 자리한 오키나와교원노동조합 세미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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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제자들을 전장에 보낼 수 없다. 오키나와교원노동조합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벽에 붙어 있는 구호이다. ⓒ 김옥태

▲ 다시는 제자들을 전장에 보낼 수 없다. 오키나와교원노동조합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벽에 붙어 있는 구호이다. ⓒ 김옥태

1층에는 가정요리집이 있고, 오키나와교원노동조합 사무실은 2층에, 그리고 3층은 세미나실이었다. 2층 계단으로 오르니 벽에 붙은 뜨거운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다시는 제자들을 전장에 보낼 수 없다."

 

오키나와전 당시 일본군은 어린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남학생은 병사로, 여학생은 간호부로. 동원된 대부분의 학생들은 희생을 당했다.

 

오늘날 오키나와 교사들은 반성한다. 당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학생들의 전쟁 동원을 막았다면 단 한 명이라도 학생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고. 그들은 지금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2010.08.03 11:00 ⓒ 2010 OhmyNews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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