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최고의 농촌 별미 '추어탕'

한낮 무더위 피해 옹기종기 모여 함께 먹는 이맛

등록 2010.08.05 10:03수정 2010.08.05 10:0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같이 한창 더운 날씨에는 한낮에 들일 밭일 하는 농촌사람은 없다.

농사일은 땡볕을 피해서 오전 일찍 하거나 오후 늦게 해질녘에 잠시 몰아서 한다.

 

그래서 한낮에는 논을 둘러봐도 밭을 둘러봐도 사람구경하기 힘들다.

그러면 농촌의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하면 또 그건 아니다.

도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모처에 숨어있다

 

우리 마을의 경우 여자들은 주로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죽인다.

남자들은 마을 정자나무아래로 자전거를 주- 욱 대 놓고

소주를 걸치거나 장기를 둔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나이든 축에 드는 사람들이고

좀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은 마을회관이나 정자나무 아래에서 시간 죽이며

놀 수는 없다.

그럴 군번이 안된다.

나처럼 '들어온 돌' 인 경우에는 군번도 안될 뿐 아니라 이른바 '짬밥'도 안된다.

(아니 설사 군번되고 짬밥이 되어도 그렇게 시간죽이며 생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래서 이 즈음에는 여기 저기 마실을 잘 다닌다.

그럴싸한 놀거리를 만들어 내어 모일 궁리를 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시도때도 없이 우는 숫닭이 있는 집은 마을의 고요를 위해 닭모가지를 비튼다.

아니면 몰래 던져놓은 그물이나 통발을 걷어서

매운탕을 끓이거나 추어탕을 끓여 먹으며 논다.

 

 그렇다고 촌사람들이 항상 이렇게 논다는 걸로 오해 하지는 마시라.

일하기 어려운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시간에 이렇게 논다는 말이다.

 

이때 잡는 재미는 주로 남정네들이 누리고 장만하는 노동은 대게 마누라들 차지다.

마누라들이 실컷 장만한 음식을 술안주로 먹어치우는 것도 또 남정네들 차지다.

 

(농촌에 만연한 봉건적 분위기는 여자들이 귀농을 꺼리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리라 생각한다.다음에 별도로 꼭지를 정해 농촌의 가부장 문화에 대해 글을 올릴까 한다.)

 

나도 이번에 천렵의 시간을 가져봤다.

원래 원시시대에는 남정네들이 이렇게 사냥을 했다 하던가?

 

종목은 미꾸라지, 장비는 통발 5개, 잡는 기술은?

별다른 필살기 없이 그냥 논에 몇 개 던져놓고 기다리기.

 

 

a

미꾸라지 잡이 전에 놓아둔 통발을 걷으러 간다 ⓒ 서재호

▲ 미꾸라지 잡이 전에 놓아둔 통발을 걷으러 간다 ⓒ 서재호

전에 논에 통발을 몇개 놓아두었다. 오늘은 통발을 걷으러 가는길이다. 뒤태가 볼만한감?

 

a

통발 걷기 논에 놀던 미꾸라지가 통발안에 들어가 있는지 확인한다 ⓒ 서재호

▲ 통발 걷기 논에 놀던 미꾸라지가 통발안에 들어가 있는지 확인한다 ⓒ 서재호

 통발 하나씩 하나씩 걷어서

 

a

미꾸라지 모으기 걷어낸 통발에서 미꾸라지를 모은다 ⓒ 서재호

▲ 미꾸라지 모으기 걷어낸 통발에서 미꾸라지를 모은다 ⓒ 서재호

 

양동이에 담아 모아 보는데 양은 많지 않다.

 

a

모아진 미꾸라지 논에서 잡아올린 미꾸라지들 ⓒ 서재호

▲ 모아진 미꾸라지 논에서 잡아올린 미꾸라지들 ⓒ 서재호

이 정도 양으로는 추어탕 끓이기에 좀 부족하다. 일단 소금으로 미꾸라지 숨을 죽인 후 삶아 냉동해 두기로 했다. 몇차래 더 모아서 양이 좀 차면 그때 추어탕을 끓이기로 했다. 이제 며칠 뒤면 내 논에서 잡은 자연산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녁 때가 다 되가니 마침 연락이 왔다. 윗마을 수부 저수지 옆에 사는 경규 형님이 추어탕 먹으러 오란다.

 

속으로  뜨끔했다 .  

'내가 요새 미꾸라지 잡아 모으는 걸 눈치 챘나?'

나는 우리 식구끼리 몰래 먹으려고 모으고 있는데.

 

전화 받고 보니 쬐끔 미안했지만

그래도 모른 척 하고 먹으러 갔다.

 

a

끓고 있는 추어탕 윗마을 형님집에서 끓이고 있는 추어탕 ⓒ 서재호

▲ 끓고 있는 추어탕 윗마을 형님집에서 끓이고 있는 추어탕 ⓒ 서재호

윗마을에 도착하니 한참 추어탕이 보글보글 달여지고 있다.

 

a

추어탕에 소주한잔 마을사람들이 추어탕을 사이에 두고 모여앉아 있다. ⓒ 서재호

▲ 추어탕에 소주한잔 마을사람들이 추어탕을 사이에 두고 모여앉아 있다. ⓒ 서재호

 

제법 사람이 많이 모였다.

추어탕 한사발씩에 소주잔이 바쁘다.

 

국사발 만한 밥그릇에 고봉밥이 그득한데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갈 때까지는 모두 밥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다들 한마디씩 형수한테 보태는 말에 인색함이 없다.

속이 뻔히 보이는 공치사 하는데도 퉁기지 않는다.

 

"형수님 음식솜씨는 하나도 안 죽은 기라."

"오늘따라 형수님 참 예뻐보이네요."

 

추어탕 국사발이 비어가는 만큼 술먹은 얼굴들은 붉어지고

해는 점점 기울어 산을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더운 여름날 하루가 또 넘어간다.

덥고도 더운 여름날 하루를 이렇게 또 넘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귀농 #추어탕 #여름 #농촌 #미꾸라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원룸 '분리수거장' 요청하자 돌아온 집주인의 황당 답변
  2. 2 나이 들면 어디서 살까... 60, 70대가 이구동성으로 외친 것
  3. 3 서울 사는 '베이비부머', 노후엔 여기로 간답니다
  4. 4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5. 5 택배 상자에 제비집?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