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제한상영가? 영등위, 또 오버하시네

김지운 감독 <악마를 보았다> 등급판정 논란..."사전검열"

등록 2010.08.05 11:21수정 2010.08.0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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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페퍼민트앤컴퍼니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제작비 70억 원을 들이고 이병헌, 최민식이 등장하는 대규모 상업영화가 자칫 일반상영관에서 퇴출될 처지에 놓였다. 11일 개봉을 앞두고 있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그 문제작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4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부랴부랴 5일로 잡혔던 언론시사를 10일로, 11일로 예정됐던 개봉일을 12일로 연기했다. 이번 제한상영가 판정은 지난달 27일에 이은 두 번째로 알려졌다. 영등위는 제작·배급사가 신청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연거푸 거부한 셈이 됐다.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해 영등위는 "도입부에서 시신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어 둔 장면 등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및 비디오물 등급분류 기준(2010년 6월 3일)에 따르면 <악마를 보았다>의  제한상영가 판정은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있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는 2장 6조의 관람 등급 기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행법상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고, 광고나 홍보 또한 마찬가지란 점이다. 극히 제한된 영화 수급과 수익 등 문제로 제한상영관은 전국에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 상업영화의 제한상영가 판정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제작사 측은 문제가 된 일부 장면을 기술적으로 보완한 뒤 즉각 재심의를 신청한다는 입장이다. 제작사 페퍼민트앤컴퍼니 김현우 대표는 "영화의 본질에 해당할 측면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영상물등급위원회 측의 판단을 존중하기 위해 영화의 연출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위가 높은 장면의 지속 시간을 기술적으로 줄이는 보완 작업을 거쳐 재심의를 진행 중이며 예정된 개봉일정에 큰 차질 없이 진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악마를 보았다>, 제한상영가 등급 받을 만할까?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가운데가 김지운 감독. ⓒ 페퍼민트앤컴퍼니


"내가 한 영화 중에 수위가 높고 가장 과격하지 않을까. 심리적인 폭력도 강하고 잔인한 장면도 많이 나오고. 짐승을 잡기 위해 내가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게 될 것 같다."

크랭크인 전 가진 인터뷰에서 김지운 감독은 <악마를 보았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영화는 사이코패스인 연쇄살인마(최민식)에게 약혼녀를 잃은 정보국 요원(이병헌)이 자신의 고통을 뼛속 깊이 되돌려주려는 광기어린 복수극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반칙왕>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국·내외에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인정받아온 김지운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하는 스릴러 장르라 더욱 주목을 받아왔다.


김지운 감독은 또 "살면서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상상 속에서는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며 "이 영화는 그걸 시도하고 보여주는데 어떤 쾌감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호순, 유영철 사건 같이 경기도 일대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냉혈한 살인마의 모습과 그에 복수하는 뜨거운 남자의 비윤리성이 부딪치는 화학작용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가 밝힌 <악마를 보았다>의 연출의도였다.

비슷하게 김현우 대표 또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며 "아무 이유 없이 참변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을 관객들이 같은 감정으로 바라보고 호흡할 수 있도록 복수의 과정을 사실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했다"고 완성된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제나 소재 면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표현 수위가 셀 수밖에 없고, 또 그런 특성의 장르다. 또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 수위가 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번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을 절대적이고 온당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고무줄 심위 영등위', 한국 성인 관객들을 믿어 보시라!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페퍼민트앤컴퍼니


사실 제한상영가 등급 제도는 지난 2008년 7월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겼던 <천국의 전쟁> 수입사가 2006년 2월, 등급판정 취소에 대한 행정소송과 함께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동시에 제청했고, 헌법재판소는 결국 재판관 9명 중 7명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 그해 11월 등급보류 비디오물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언론·출판 자유 위반를 들어 위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2009년 12월 31일을 법 개정시한을 명시한 상태에서, 결국 2009년 4월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등 16인은 제한상영가 등급 분류 존속을 명시한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통과시켰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렸고, 영화계에서도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제도를 개정 법안을 입법하면서까지 가까스로 연명시켜온 셈이다.

2009년에도 영등위의 등급 판정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영화 <작전>은 주가조작을 청소년이 모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뒤, 이후 재심의를 거쳐 15세 판정을 받아 '고무줄 심의' 논란이 일었다. 여고생과 이주노동자 청년의 우정을 다룬 <반두비> 또한 정부 비판적인 묘사로 인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 아니냐는 영화계 안팎의 의혹을 받기도 했다.

독립영화에 대한 재갈물리기도 여전하다. <똥파리>와 함께 로테르담영화제에 출품된 바 있던 <고갈>은 지난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뒤, 재심의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는 게이커플의 로맨스를 그린 <친구사이?>가 영등위의 청소년관람불가 판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 현재 재판 계류 중이다.

기존 영등위의 일관된 입장은 유해물로부터의 청소년 보호였다. 영화계에서는 물론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들어 일관되게 반발하고 있다. 무려 14년 전인 1996년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를 내린 사전검열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성부 문화부, 성자 영진위, 성신 영등위의 삼위일체

<악마를 보았다> 스틸컷 ⓒ 페퍼민트앤컴퍼니


그러나 이번 <악마를 보았다>의 등급 판정은 또 다른 차원이다. 일단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신청한 유력 감독의 상업영화에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내린 최초 사례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관람이 불가한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으로 창작물을 먼저 재단했다는 점이다. 트위터 아이디 @Kwon_YC의 말처럼, 성인관객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악마를 보았다>가 심의 반려와 마찬가지인 '제한상영가'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일부 장면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하여 영등위에서 결정을 내리신 것 같다. 좋은데, 그런 건 관객이 알아서 우려할 수 있게 니들은 좀 빠져주면 안 되겠니?"

특히나 그동안 유달리 성적 표현에 민감했던 영등위가 처음으로 한국영화의 폭력과 사회적 행위를 제한상영가 판정의 이유로 들었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하다. 영등위가 할리우드 영화를 위시해 과도한 폭력에 관대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한편 <악마를 보았다> 측의 재심의 청구 입장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악마를 보았다>를 기다려온 팬들은 물론 영화인들 또한 영등위의 시대를 역주행하는 처사에 의문과 비난을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악마'마저 보게 된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무리수를 통해 성부 문화부, 성자 영진위, 성신 영등위 삼위일체가 완성되는 건가요? 이쯤 되면 한국영화를 '적그리스도'로 삼고 있지 않느냐는 '아마겟돈'스러운 의심. 네, 웃자고 하는 진심입니다."

<후회하지 않아> <탈주>를 만든 이송희일 감독의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지금이다.
#악마를보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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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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