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으로 만들어진 공동묘지도 아니고...

['꿈틀' 공정 여행기-①] 3박4일간의 낙동강 따라 걷기

등록 2010.08.09 18:36수정 2010.08.0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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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2010.07.06 화요일
양재역 출발-독특한 중국집에서의 점심-낙동강 상류 낙단보 건설현장-'이산'촬영지에서 T-shirts 그림 작업-평은면 금광리(금강마을)회관에 짐 풀고 부대찌개-천경배신부님과 마을주민들과의 좌담-노래자랑-모닥불 피워 놓고♬(우리의 이야기, 노래 그리고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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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상류 모래톱과 어우러진 낙동강의 모습이 아름답다. ⓒ 김마음


야~눈앞에 마주한 낙동강의 아름다움이란. 넉넉한 하늘아래 역동적으로 굽이치는 사행천의 풍채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모래톱과 양옆에 무성히 우거진 수풀이 안정된 모습이다. 시선을 살짝 낮추면 자갈 위를 달려가는 여울이 햇살에 반짝이며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보글보글 산소가 공급되는 여울은 민물고기가 어울려 헤엄치는 서식지이고, 수풀은 수달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의 집이 된다. 여러 생명들의 품이자 모레에 발을 묻고 선 우리 삶의 근원이기도 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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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인 낙동강 낙동강 모래톱을 파 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 최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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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단보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보로 댐수준의 규모를 가진 가동보이다. ⓒ 김수정


그러나 이제 곧 낙동강 고유의 모습들이 사라져갈 것을 생각하며 마음 한편이 아팠다. 4대강 사업은 정말 무엇을 위한 것이기에 아쉬움도 망설임도 없이 행해지는지 자연스레 묻게 된다. 아니, 뭘 향해 가는 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단순한 정책적, 사상적 오류가 아닌 후대와 역사에 실질적 영향을 줄 사건이 한 삽 한 삽 진행되고 있다니 누가 내 심장도 한 삽 퍼가는 듯 찌릿해졌다. 강변도로를 달리다가는 강바닥에서 판 모래가 논밭 가득 쌓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졸속 처리된 공동묘지라도 보는 듯 했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 안타까움. 홍수예방, 물 부족 해결, 관광자원개발, 일자리창출 등 그토록 방대하고 다면적인 명목들은, 있는 그대로 본연의 할 일을 해온 대자연의 황토색 수술  앞에선 그저 허구일 뿐이었다.

유난히 아름다운 금강마을에 들어섰다. 내성천의 굴곡에 폭 쌓인 이 하회마을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수몰된다고 한다. 영주댐건설로 인해 차오른 물은 곧 마을 주민들의 집과 푸르른 안정감을 말살시킬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할머니 마음에 주름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갓 스물에 시집와서 60평생 삶의 흔적을 새겨온 곳을 이렇게 초라하게 잃어 가시나. 무례한 속도로 몰아 부친 정부의 '대의'란 참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하다못해 당장의 주거 대책이라도 마련해 주는 인간적 배려조차 없다니.

자연과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이 그저 순진한 관념일 뿐일까? 왜 명백하고 당연한 도리와 상식은 쉽게 간과되고 마는 걸까. 천경배 신부님 말대로 우린 개발주의적인 사고방식, 그것이 만능인줄 아는 환상과 게으른 사유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당장 4대강 사업은 멈출 수 없어도, 이런 가치관이 걸러져 앞으로의 삶을 이전과 더욱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면 이 기행은 제값을 하고도 남으리라.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를 향해 Back to the future!', 우리는 이것을 배우는 시간 속에 있다.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꿈꿀 수도, 변질과 파괴를 슬퍼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일부턴 낙동강의 아쉬운 뒷모습만이라도 필사적으로 마음에 담아보려 한다. 기행 이후에도, 졸졸거리는 강물소리와 비릿한 향내, 너그러운 바람까지 다 내 맘에 남아 있어 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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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마을 주민들 일제시대때 금광리로 개명된 금강마을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하회마을이다. 곧 들어설 영주댐으로 인해 수몰예정지가 되자 4대강 사업반대와 주거대책마련이 마을의 화두가 되었다. 회관앞에 모인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김마음


[둘째날] 2010.07.07 수요일
금강마을 회관에서의 아침-심심하고 건강한 비빔밥-본격적으로 강 따라 걷기-원두막(주먹밥+낮잠)-걷고(물수제비뜨기)-또 걷기-수도리한옥마을(투호게임으로 설거지당번 정하기)-민박집주인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저녁밥상-휴식-레크레이션(밤이 깊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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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따라 걷기 11명의 청춘이 낙동강에 흠뻑 취하여 여유와 즐거움을 맛보았다. ⓒ 김수정


걷고 또 걸었다. 사행천을 따라 우리도 굽이치며 천천히 걸었다. 갈 길은 멀었지만 얼마나 더 가야하나 따지지 않고 무작정 따라 걷기였다. 어느새 조급해지곤 했던 발걸음이 무색하게도 자연의 침착함은 나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가람오빠와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가던 길을 멈춰 물수제비뜨기 대결도 했다. 성우 손에 들린 돌은 던졌다 하면 예수님의 기적. 큰 돌도 물위를 쪼르르 달려간다. 계속 걷다가 우리 발걸음 소리에 놀라 수풀로 뛰어 들어가는 노루 한 마리도 보았다. '아! 여기 살아있는 낙동강에 우리가 있다.' 새삼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걷다가 이내 심심해 질 틈엔 아침에 본 책의 몇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며 고민거리가 되어줬다. '하나님과 우리가 동역자가 되어 자연을 다스리고 가꾸는 것이 태초의 모습인 것.', 그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야생의 자연보다는 정원 같은 자연을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쓰인 걸까? 인위적 개발의 무지막지함은 차치하고라도 어디까지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역할이고 도리일지 괜히 고민스러웠다.

자연을 더 자연답게 하여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깊이 취하고 깃들 수 있게 해야겠지만 흙을 퍼 물길을 다듬는 것까지 우리가 해야 하나? 아님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고 잡초를 정돈하는 정도로만 해야 하나? 자연을 다스리는 우리 임무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생기는 빛나는 지혜로 알게되리라 생각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난 본연의 자연과 함께 숨 쉴 기회가 너무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강을 걸으며 녹슨 의자에 낀 흙 한줌에도 기어이 뿌리를 내린 잡초를 발견했다. 그런 생명의 억센 적응력과 힘은 무엇을 위한걸까. 인간의 다스림에 반응하여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자연의 목소리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목소리가, '아무렇게나 개발하고 엎어 놓아도 재생되고 마는 것이 자연이지'라는 환상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교감하기 위해 있는 자연의 목소리, 생명의 고집임을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하루의 시간이었다. 내일의 바람이 있다면 여기 낙동강에 더 깊이 빠질 수 있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나를 한번은 맡겨볼 수 있는 시간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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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욱준

덧붙이는 글 | 일기 형식으로 쓰여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과 비표준적인 표현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덧붙이는 글 일기 형식으로 쓰여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과 비표준적인 표현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꿈틀 #낙동강 순례 #4대강 사업 #낙동강 여행기 #공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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