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법정 증언 대가로 금품제공 약정은 무효"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행위에 해당해 이행의무 없다"

등록 2010.08.09 14:34수정 2010.08.0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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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일방 당사자로부터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해 주는 대가로 2억 원을 받기로 하는 약정은 반사회질서행위에 해당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비록 증언에 대한 '대가'를 받기로 했더라도 법정에 출석함으로써 입게 되는 하루 수입의 손해를 보전해 주는 정도, 즉 통상 용인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테리어공사 전문업체인 N사는 2003년 의정부에 있는 한 건물의 소유주 S사의 동의 아래 그 건물을 매수해 병원을 운영하려던 병원 측과 인테리어공사 도급계약을 맡아 공사를 진행했으나 공사대금 7억 7160만 원을 받지 못했다.

 

이후 S사의 부도로 인해 이 건물이 경매에 붙여지자, S사 대표는 N사 대표에게 "당신이 이 건물을 점유하면서 공사대금채권액을 부풀려 유치권신고를 한 후 건물 점유 및 공사대금책권을 우리가 지정하는 자에게 양도하면 공사대금을 받아주겠다"고 제안했다.

 

공사대금을 받을 목적으로 이를 승낙한 N사는 공사도급계약에 공사대금을 34억 원으로 부풀린 허위계약서를 만들어 공사대금 31억 8700만 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유치권 신고를 하고 건물을 점유했다.

 

한편 상조회사인 B사는 위 병원으로부터 이 건물 지하의 장례식장을 임차보증금 25억 원에 임차했는데, 병원의 부도로 임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게 되자 경매에 참여해 소유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N사의 유치권 행사로 건물을 인도받지 못하자 B사는 N사 등을 상대로 건물 명도소송을 냈고, 소송 중이던 2006년 3월 N사에게 "N사가 보관하고 있는 공사도급계약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우리가 제기하는 명도소송 등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치권 신고시 제출한 공사도급계약서가 조작된 경위 등 일체의 진실을 밝히며, 유치권을 부인하는 1심 판결이 선고되면 2억 원을 지급한다"는 약정을 맺었다.

 

N사는 B사의 요구를 들어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공사도급계약서가 위조됐다는 등 진실을 밝혀, B사는 결국 승소했다. 사실 N사 대표는 B사의 요구를 들어주면 S사가 제시한 5억 원 보다 적은 돈을 받게 되는 것이고,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심 "반사회질서행위에 해당해 무효"

 

그럼에도 승소한 B사가 당초 약정한 2억 원을 주지 않자 N사는 "증언에 대한 대가로 2억 원을 준다는 약정을 이행하라"며 소송을 냈으나,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재판장 김수천 부장판사)는 2008년 12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어느 당사자가 증언해 주는 대가로 용인될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는 급부를 제공받기로 한 약정은 반사회질서적인 금전적 대가가 결부된 경우에 해당하므로 그런 약정은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예컨대 증인에게 일당 및 여비가 지급되기는 하지만, 증인이 증언을 위해 법원에 출석함으로써 입게 되는 손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그런 손해를 보전해 주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는 약정은 무효라는 것이다.

 

항소심 "약정 당시 상황 보면 무효라 할 수 없다"

 

반면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17민사부(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깨고, "피고는 원고에게 2억 원을 지급하라"고 N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건물을 경락받았음에도 건물을 인도받지 못해 원고 등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하게 됐고, 승소하기 위해서는 핵심 관련자인 원고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에 원고를 설득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약정을 체결하게 된 점, N사 대표는 약정을 이행한 결과 형사처벌을 받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런 점 등에 비춰 볼 때 약정 당시 피고가 궁박 상태에 있었다거나 N사 대표에게 폭리행위의 악의가 있었다거나 또는 약정에서 N사 대표의 의무와 피고의 의무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만큼 이 사건 약정이 불공정한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 "국민의 사법참여행위가 대가와 결부되면 안 돼...무효"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인테리어업체 N사가 "증언에 대한 대가로 2억 원을 준다는 약정을 이행하라"며 B상조회사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N사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타인의 소송에서 사실을 증언하는 증인이 증언을 조건으로 소송의 일방당사자 등으로부터 통상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대가를 제공받기로 하는 약정은 국민의 사법참여행위가 대가와 결부됨으로써 사법작용의 불가매수성 내지 대가무관성이 본질적으로 침해되는 경우로서 반사회적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이 그 약정이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증언에 대한 대가지급의 약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는 만큼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2010.08.09 14:3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약정 #증언 #증인 #불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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