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천마봉,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오금이 저리다

[고창에서의 가족여행 1박 2일-②]

등록 2010.08.15 11:05수정 2010.08.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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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암이 있는 고창 선운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보면 아찔하다. ⓒ 전갑남


전북 고창 선운사 근처 미당 서정주 선생 생가가 있는 민박집에서의 1박. 잠자리가 편치 않다. 열대야에다 모기가 윙윙대며 극성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몇 시나 되었을까. 아직 밖은 깜깜하다. 모기가 물건 말건 또 열대야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아내와 애들은 세상모르고 곤한 잠에 빠졌다. 어제 일정이 너무 빡빡한 것 같다. 아들 녀석은 옅은 코까지 골며 비몽사몽이다. 날이 세면 선운산 등산을 하자던 약속은 지키려나?


새벽 선운산에 오르다

다시 눈을 붙였다. 잠깐 사이 잠이 든 모양이다. 아들이 일어나 날 깬다.

"아버지, 산에 가시기로 했잖아요?"
"응, 그랬지. 근데 넌 피곤하지 않아?"
"좀 힘들어도 새벽 선운산에 올라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서둘자구나."

몸이 무겁다. 설친 잠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아들과의 약속이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함께 오르자고 하면 고개부터 흔들 게 뻔한 아내와 딸내미는 늦잠이나 실컷 자라고 해야겠다. 우리는 두 모녀가 깰 새라 조심조심 옷을 입었다. 얼려둔 물병, 그리고 간단한 간식을 챙겼다.

초행 산행길이 조심스럽다. 이른 새벽이라 산행을 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코스도 잘 몰라 두려움도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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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일주문. ⓒ 전갑남


선운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아들이 내게 묻는다.

"아버지, 선운산이 아니라 도솔산이라고 되어있네요."
"아마 선운산의 또 다른 이름이 도솔산인 모양이구나."


호남의 내금강이라는 선운산.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兜率)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라 한다.

선운사 매표소에 사람이 지키고 있다.

"선운산 등반을 하려는데 얼마나 걸리죠?"
"대중없어요. 한 시간 코스도 있고, 길게 종주하려면 10시간 코스도 있어요. 여기 등산코스가 있는 전단지를 보세요. 도솔암을 거쳐 천마봉을 다녀오는 제1코스를 가장 많이 탐방하죠."

우리는 4.7km의 왕복 3시간 코스를 잡기로 했다.

도솔암 오르는 길에 만난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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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 도솔암 오르는 두 갈래길 . ⓒ 전갑남


도솔암 가는 길이 두 갈래이다. '차 다니는 길', '사람 다니는 길'이 따로 있다. 우측 넓은 길은 찻길이고, 좌측 작은 계곡을 따라 좁은 길이 사람길이다.

"차 다니는 길이 좀 편안할까요?"
"글쎄다. 그래도 숲 속의 호젓함을 느끼려면 '사람 다니는 길'이 낫겠지!"

우리는 '사람 다니는 길'을 택해 걸었다. 울퉁불퉁 바윗길도 있고, 작은 개울도 건너 뛰어야하는 한다. 아침 안개 피어나는 계곡의 물이 보기에 참 좋다. 그런데 습기 많은 후덕 지근한 날씨는 어느새 땀으로 옷을 적신다.

땀이 비 오듯 한다. 그런데, 흐르는 땀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 날라 왔는지 깔다구떼가 성가시게 군다. 연신 손부채질을 해 쫒아도 막무가내이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녀석들 때문에 왕 짜증이 난다. 땀 냄새를 맡고 얼굴과 목에 달려드는데 속수무책이다.

참다못해 아들 녀석이 기어이 한 마디 내뱉는다.

"아버지, 우리 그만 내려가는 게 낫겠어요. 요놈의 벌레들이 장난이 아니네요!"
"산에 오르는 일이 원래 쉬운 일이 아니잖니."

산행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을 때 기쁨은 두 배이고, 한 번 맘먹은 데까지는 올라가야 보람이 있다는 내 말에 아들은 묵묵히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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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가는 길, 계곡에서 피어나는 아침 물안개가 멋진 풍광을 연출하였다. ⓒ 전갑남


깔따구떼가 '차 다니는 길'에는 덜 공격할 것 같아 우리는 길을 꺾어들었다. 얼마가지 않아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반긴다. 장사송을 안내하는 글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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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354호 장사송. ⓒ 전갑남


반송 형태의 소나무는 도솔암을 오르는 길가 진흥굴 바로 지나 자라고 있다. 수령이 600년, 높이는 23m 정도가 된다고 한다. 높이 3m 정도에서 줄기가 크게 세 가지로 갈라져 있고, 그 위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챗살처럼 퍼져 있는 모습이 멋들어져 보인다. 거대한 나무 하나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듯싶다.

이곳 고창사람들은 장사송을 '진흥송'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장사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흥굴은 신라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이곳 선운사에서 머물면서 기도를 했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작은 굴 안에는 요즘에도 사람의 발길이 머무는지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촛불을 밝히고 있다.

장사송을 뒤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조금 오르니 도솔암이 보인다. 참선하는 산사답게 아름답고 담담한 모습이 구름에 휩싸인 푸른 숲과 함께 싱그러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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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200호인 도솔암마애불. ⓒ 전갑남


약수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고 오르니 엄청난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 우리를 맞는다. 고려 시대 초기 작품인 도솔암마애불이다.

마애불은 네모에 가까운 평면적인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 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갔다.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 두툼한 입술에서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미소가 느껴진다.

절벽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자연 암벽에 6m나 되는 마애불을 조각한 당시 석공들의 수고는 얼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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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 촬영 장소가 되었던 용문굴. ⓒ 전갑남


마애불을 지나 가파른 길을 조금 오르니 용문굴이 나온다. 바위가 훤히 뚫리어 문을 이루고, 그 안에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기기묘묘하게 생긴 용문굴에는 어떤 신령스런 전설이 전해질 것 같은 신비감이 있어 보인다. 평상에 앉아 숨을 고르니 바람도 이곳에서는 쉬어 가는지 땀을 식혀준다.

낙조대를 거쳐 천마봉까지... 장관이다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이 이제 천마봉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며 용기를 북돋운다.

쉬엄쉬엄 오르지만 숨이 턱에 차오르고 맥박이 더욱 빨라진다. 한참을 오르다 한순간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낙조대이다.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선운산 주변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올망졸망 펼쳐진 산세가 부드럽다.

아들이 준비한 음료수를 건네준다. 갈증의 풀어주는 한모금의 물이 생명수이다. 

이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천마봉을 향하는데, 배면바위로 향하는 철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선운산에 다시 오를 기회가 오면 배면바위를 밟아 볼 것을 마음에 담아본다

낙조대에서 몇 분이나 걸었을까? 어느새 천마봉 정상이다. 우리를 괴롭히며 따라온 깔따구떼들도 맑게 갠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쫒아버렸다. 아들 녀석의 표정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올 때와는 딴 판이다. 어려움을 뚫고 큰일을 해낸 기쁨 같은 것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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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봉 정상에서 산 아래 펼쳐진 장관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아들. 산에 오르기를 참 잘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전갑남


천마봉은 말이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형상을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깎아지른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계곡을 가득 메운 푸른 숲에 펼쳐진 빽빽한 나무가 싱그럽다. 그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에 짙은 녹색 사이로 거대한 바위들이 점점이 박혀서 조화를 이룬 모습 또한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느끼는 즐거움이다.

가슴팍을 파고드는 시원한 천마봉 산바람으로 간밤에 설친 잠 때문에 쌓인 피곤이 멀리 사라지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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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은 푸른 숲과 기기묘묘한 암벽이 잘 어울리는 산이었다. ⓒ 전갑남


#고창군 #선운산 #도솔암 #천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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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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