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예산과 한판 싸움, 요렇게 준비해 보시라

준비되지 않은 당선을 위한 안내서, 생활정치연구소 <지방자치 가이드북>

등록 2010.08.18 10:42수정 2010.08.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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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끝난 지 2달이 지났다. 새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된 지도 50일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뭘 했냐?'고 묻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그렇지만 '당선되고 보니 준비가 되어 있었냐'고 묻기에는 충분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준비가 부족한 채로 당선된 것이 사실이다. 단지 초선이라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초선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을 쌓아왔거나 당선될 때에 대비해서 충분한 준비를 해 온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을 보면, 준비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특히 수도권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에서 이처럼 야당 측의 당선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8년간 수도권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한나라당이 독점하다시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당선된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당선되고도 구체적인 밑그림이 없어

a  <지방자치 가이드북>

<지방자치 가이드북> ⓒ 모티브북

'지방공동정부'나 '로컬 거버넌스' 관련해서도 혼선이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선거연합을 위해 지방공동정부를 표방했지만, 지방공동정부에 관한 구체적인 그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방공동정부라는 개념을 어떻게 구체화해야 하는 지와 관련해서도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

'로컬 거버넌스'라는 단어도 꽤 자주 들리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거버넌스(협치)를 지역에서부터 실현할 수 있을지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말만 무성한 실정이다.


핵심공약의 추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민참여예산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꽤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들로부터는 '뭘 하고 있나?'라는 불만도 나온다.

이렇게 올해 하반기가 지나간다면 신임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개혁작업을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취임 초기에 개혁작업을 하지 못하면 사실상 기존의 정책방향, 행정관행에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용이 없으면 갖다 쓰기라도 해라

준비된 내용이 없으면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토론되고 제안된 내용들을 배우고 제대로 갖다쓰기라도 해야 한다. 썩고 구태의연한 지방자치를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이 제안해 놓은 내용들도 많다. 토건예산을 구조조정하고 생활예산을 늘리려면 '예산공개심의제',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질화해야 한다.

소수의 기득권세력이 주도하는 지방자치에서 벗어나려면 다양한 시민들, 여성들과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통로를 보장해야 한다. 웹 2.0시대에 맞게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지방공무원 인사를 혁신하고 인사와 관련해서 금품을 주고 받는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 옴부즈만제도처럼 시민의 입장에서 일하는 독립된 주체들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처럼 이미 제안된 정책과제와 아이디어들을 제대로 갖다 쓰기라도 한다면, 지방자치는 많이 바뀔 것이다.

공부하고 소통하는 지방의원들이 필요

지방의원들의 경우에는 집행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에게 끌려다니는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공부하고 외부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지방의원들이 욕을 먹어 온 것은 공부도 하지 않고, 소통도 게을리하면서 목에 힘이나 주려고 하는 행태 때문이었다. 의회에 배정된 업무추진비도 함부로 쓰고 공짜 해외여행은 좋아하면서, 정작 지방의원으로서 해야 할 집행부 견제·감시나 조례 입법활동을 소흘해 해 온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지금 필요한 지방의원은 지역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활정책들에 대해 조사하고, 국내외의 사례를 연구하여 현실화시키는 지방의원이다. 찾아오는 민원인들과 공무원들이나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의원이 먼저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진짜 생활정치가 될 수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때에,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엉뚱하게 쓰여지지 않게 하고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작은 복지정책 하나라도 현실로 만드는, 그런 생활정치를 하는 지방의원들을 보고 싶다.

어떤 정책이 좋은 정책인지, 지방의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생활정치연구소에서 나온 <지방자치 가이드북>도 참고가 될 것이다. 지방자치와 관련된 실무적인 이야기들, 사례들이 알차게 담겨 있다.

지금 많은 유권자들은 지켜보고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과연 어떻게 하는 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해도 다음번에 유권자들이 또 표를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요즘 투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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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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