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겹말 손질 (93) 향내

[우리 말에 마음쓰기 950] '그때 그 시절'과 같은 엉터리 말마디

등록 2010.08.19 10:38수정 2010.08.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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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향내

 

.. 그러나 차 향내나 그 밖의 다른 향내를 밝히면서도 사람 향내는 풍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강운구-시간의 빛>(문학동네,2004) 84쪽

 

"그 밖의 다른"은 "그밖에 다른"이나 "이밖에 다른"으로 다듬어 줍니다.

 

 ┌ 향내(香-)

 │  (1) 향기로운 냄새

 │   - 향내가 나다 / 향내를 풍기다 / 향긋한 소나무 향내가

 │  (2) 향의 냄새

 │   - 향내를 피우다 / 향불이 꺼지자 방 안에는 향내만 남았다

 ├ 향기(香氣) : 꽃, 향,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

 │   - 진한 커피 향기 / 짙은 향기

 ├ 향(香)

 │  (1) 불에 태워서 냄새를 내는 물건

 │  (2) 향기를 피우는 노리개의 하나

 │  (3) = 향기(香氣)

 │   - 향이 독특한 나물 / 이 술은 맛도 순하고 향도 좋다

 │

 ├ 차 향내나 그 밖의 다른 향내

 │→ 차 냄새나 그밖에 다른 냄새

 │→ 차 내음이나 이밖에 다른 내음

 │→ 차 내음이나 여러 다른 내음

 └ …

 

왜 언제부터인지 알 길이 없으나, '냄새'라는 낱말은 지저분한 듯 여기고 '향기'라는 낱말은 깨끗한 듯 여기는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냄새'라는 낱말은 "냄새가 고약하다" 같은 자리에만 어울리는 듯 생각하고 '향기'라는 낱말은 "향기가 좋다" 같은 자리에 잘 어울리는 듯 생각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입니다. 아무래도 "좋은 냄새"를 뜻하는 한자말 '향기'이니 궂은 냄새이거나 고약한 냄새이거나 지저분한 냄새를 가리킬 수 없습니다. 토박이말 '냄새'는 좋은 기운뿐 아니라 궂은 기운 모두를 일컬을 때에 쓰니까, 이와 같이 잘못 생각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엉터리로 아는 또 한 가지 이야기를 들자면, '향긋하다'와 '향기롭다'는 뜻이 같은 낱말인데 '향긋하다'는 토박이말이고 '향기롭다'는 한자말입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향긋하다'에서 '향'이 한자로 '香'인 줄 알고 있습니다.

 

'예전'이라는 토박이말을 놓고도 비슷비슷 생각합니다. '예전'은 토박이말이지, '전'이 '前'일 수 없습니다.

 

 ┌ 향긋내 / 향긋내음

 ├ 좋은내 / 고운내

 └ 나쁜내 / 궂은내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들은 '향기' 같은 한자말을 굳이 쓸 까닭이 없습니다. '향긋'을 살려 '향긋내'나 '향긋내음' 같은 토박이말을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좋은-'과 '고운-'을 앞에 붙이며 '좋은내/좋은내음'이나 '고운내/고운내음' 같은 토박이말을 즐거이 빚을 수 있어요.

 

우리가 처음부터 이와 같이 우리 말을 살리거나 살찌운다면 '냄새'와 같은 토박이말을 지저분한 기운을 일컫는 자리에만 써야 하는 듯 잘못 생각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옳고 바르게 말과 글을 가다듬으며 북돋운다면, 우리 말빛은 한결 맑고 밝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향내'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버젓이 오른 낱말인데 왜 겹말로 삼느냐고 따질 분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국어사전 말풀이를 여러 가지 실어 놓았는데, '향 = 향기'이고, '향기 = 좋은 냄새'입니다. 그러니까 '향내'처럼 적으면 아주 마땅히 겹말이 되고야 맙니다. "향이라는 물건을 피우는 냄새"를 가리키는 자리가 아니라면 '향내'처럼 적으면 잘못입니다. 국어사전 '향내 (1)' 뜻풀이 또한 잘못입니다.

 

ㄴ. 그때 그 시절

 

.. 교감 선생님과 주임 선생님 들이 바쁘게 복도를 뛰어다니며 장학사 나리 맞이에 여념 없었던 그때 그 시절 장학사는 언제나 번쩍번쩍 빛나는 까만색 세단을 타고 수위 아저씨의 경례를 받으며 ..  <김수정-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달,2009) 65쪽

 

"여념(餘念) 없었던"은 "바빴던"이나 "쩔쩔매던"으로 다듬고, "수위 아저씨의 경례를 받으며"는 "수위 아저씨한테 경례를 받으며"로 다듬어 줍니다. '까만색(-色)'은 '까만빛'이나 '까만'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시절(時節) 

 │  (1) 일정한 시기나 때

 │   - 청년 시절 / 대학생 시절 / 농사짓던 시절

 │  (2) = 계절(季節)

 │   - 꽃 피는 시절

 │  (3) 철에 따르는 날씨

 │   - 시절이 좋아서 농사가 잘되었다

 │  (4) 세상의 형편

 │   - 시절이 어수선하다

 │

 ├ 그때 그 시절

 │→ 그때

 │→ 그무렵에

 │→ 그때 그곳

 └ …

 

한자말 '시절'은 모두 네 가지 뜻으로 쓴다고 합니다. 첫째는 '때'이고 둘째는 '계절'이며 셋째는 '날씨'이고 넷째는 '세상 형편'이나 '세상 흐름'입니다. 이 가운데 둘째 뜻인 '계절'은 우리 말로는 '철'입니다.

 

이 같은 말뜻을 살펴본다면, 한자말 '시절'을 쓰는 동안 '때'와 '철'과 '날씨' 같은 토박이말은 쓰임새가 줄어듭니다. 우리 말 '때-철-날씨'가 들어설 자리를 날마다 빼앗기고 있는 셈입니다.

 

국어사전 보기글로도 알 수 있는데, "젊은 날"이나 "젊었던 때"라 말하면 넉넉하고 "대학생 때"와 "농사짓던 때"라 이야기하면 됩니다. "꽃 피는 철"과 "날씨가 좋아서 농사가 잘되었다"라고 적으면 알맞습니다. "시절이 어수선하다" 같은 말을 하는 분이 더러 있겠으나 으레 "나라가 어수선하다"나 "하루하루가 어수선하다"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시절'은 그리 쓸 만하지 않은 낱말이요, 우리 말삶이나 글삶을 북돋운다고 보기 어려운 낱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낱말을 좋아하는 사람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낱말을 쓰는 일이 잘못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한자말을 쓰고 싶으면 쓰되 알맞고 올바르게 써야 합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듯 "그때 그 시절"처럼 적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잖아요? "그때 그때"가 되는데, '그때그때'처럼 한 낱말로 쓰는 자리가 있으나, 이 보기글에서는 '그때그때'가 아닌 '그때'이잖습니까.

 

지나간 어느 한때를 가리키는 '그때'임을 생각한다면 '그무렵'이라 해도 되고, '지난날'이나 '그 옛날'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한때'나 '지나간 한때'나 '아득한 옛날'이라 할 수 있고요.

 

 ┌ 장학사 나리 맞이에 던 그때

 ├ 장학사 나리 맞이에 쩔쩔매던 그무렵

 ├ 장학사 나리 맞이만 생각하던 지난날

 └ …

 

흐름을 생각하고 자리를 살피면 좋겠습니다. 말결을 돌아보고 말매무새를 가늠하면 좋겠습니다. 말마디를 곱씹고 말밭을 되짚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생각을 잘 나타내면서 우리 느낌을 싱그러이 가꿀 수 있는 낱말과 말투란 무엇인지 차근차근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08.19 10:38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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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중복표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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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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