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네들" 소리가 입에 붙었다, 불효자식이다

[포토에세이] 장인·장모의 젊은 시절을 보며

등록 2010.08.29 19:05수정 2010.08.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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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인, 장모님 결혼식 사진 1963년 11월, 경기도 곤지암

장인, 장모님 결혼식 사진 1963년 11월, 경기도 곤지암 ⓒ 김민수


장모님 칠순을 준비하면서 옛날 사진들을 모아 동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많은 사진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사진은 흑백사진들이었다. 그 흑백사진 속에 들어있는 새신랑과 새각시, 저 사진 속 아이들도 지금은 이미 60을 바라보고 있을 터이고, 연세가 드신 분들은 저 세상에서 안식하고 계실 터이다.


며칠 전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모시고 인천 소래포구에 갔다. 비도 줄줄 오는데 오랜만에 사위노릇을 한답시고 아내와 함께 해물칼국수와 조개구이를 대접할 요량이었다.

장인어른은 얼마 전 일을 하시다가 허리를 다쳐서 두어달 고생을 하셨다. 그냥 그려러니 했는데 소래염전을 걷는 장인어른을 보니 몇 달 새 부쩍 늙으셨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a 결혼식 사진 흑백사진 속에 담겨있는 옛 모습

결혼식 사진 흑백사진 속에 담겨있는 옛 모습 ⓒ 김민수


세월이 그렇게 가는 것이구나. 불과 20여 년 전 결혼승락을 받으러 처가에 갔을 때만 해도 젊으셨던 분이 이렇게 할아버지가 되어 꼿꼿하던 허리가 휠 만큼 세월이 흘렀구나 싶다. 지금의 나보다도 더 젊었던 시절의 모습, 내 결혼식 사진을 찾아보니 거기에도 앳된 얼굴의 청년이 있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으니 한창 꽃다운 나이였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내가 젊은 시절, 그토록 비판해 대던 기성세대가 되어 버렸고, 대학생 아이의 등록금 걱정을 하고 딸아이 결혼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잠시, 우리 부모님도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왜 나는 그것을 종종 망각하고 사는지 싶었다.
간혹 부모님들과 의견 충돌이 빚어질 때 나도 모르게 '노인네들'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그토록 싫어하시는데도 그놈의 '노인네들'이라는 소리가 입에 붙어 버렸다. 불효자식이다.


내 아이들이 훗날 내게 '노인네'라는 소리를 하면 '나도 너희들처럼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호통을 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흑백사진에서 만난 젊은 장인장모


a 아내의 돌사진 그리고 결혼 1년 후,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된 큰 딸의 첫돌잔치

아내의 돌사진 그리고 결혼 1년 후,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된 큰 딸의 첫돌잔치 ⓒ 김민수


낯선 사진, 그것이 아내의 돌사진이라고 했다. 아내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고,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 터이다. 흑백의 잔칫상을 보면서 '당신은 나보다 훨씬 잔칫상이 좋네!'했다.

나에게는 돌사진도 없지만, 기억도 없다. 기억의 편린이 남아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이모님과 생일이 겹쳐 생일날이면 늘 혼자 있었다. 저녁 늦어서야 이모님 생신음식을 대하는 것이 내 생일이었기에 지금도 내 생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꼬박꼬박 생일을 챙기려는 아내와 미역국을 내오면 성질을 내는 까칠한 남편,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그 사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a 장인어른과 아내 검정고무신, 장인어른은 이맘때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셨다.

장인어른과 아내 검정고무신, 장인어른은 이맘때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셨다. ⓒ 김민수


사진 속에 남아있는 장인어른의 젊은 시절 모습은 꽃미남이었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는 장인어른과 하얀고무신을 신고 있는 아내, 아내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영락없이 둘째다. 그리고 아내는 장모님의 판박이었으니 앞으로 이십 년 뒤 아내의 모습을 유추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부모님들도 유년의 시절과 청춘의 시절이 있었으며, 그때의 소중한 추억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내가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있었던 수많은 추억들을 마음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추억에도 불구하고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누구의 도움 없으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나이가 되면 오히려 더 슬플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노인네니까 하고 넘겨 버리고 마치 나는 노인네가 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 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되었구나!'하며 세월의 빠름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산다는 것'이 유별난 일도 아닌것 같고, 지금 내가 얻으려고 아둥바둥 하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너희들도 나이 좀 들어봐라

a 흑백사진 장인어른과 아내, 1965년, 경기도 광주 곤지암

흑백사진 장인어른과 아내, 1965년, 경기도 광주 곤지암 ⓒ 김민수


빛바랜 흑백사진, 그 속에서 나보다 젊은 시절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고 우리 아이들보다도 훨씬 어린 아내를 만났다. 나이가 들어서야 조금씩 그 분들에게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마도 노인네가 되어서야 지금 내가 부모님들에게 효도랍시고 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큰 비수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찌르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살아보지 못하고 생각만 가지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삶, 그래서 뒤늦게 후회하는 삶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그때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하면서도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하고' 살아가며 후회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20년 전 결혼사진과 신혼여행 사진이 있는 사진첩을 보면서 '완전 얘들이 결혼했네' 아내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이들도 그때의 사진을 보고 나의 얼굴을 보더니만 '아빠, 그런데 지금은 왜 그래?' 농을 던진다. 조금은 철이 든 큰 딸아이만 '더, 중후한 맛이 나는데 뭘'하며 위로를 한다.

'그래, 이놈들아, 너희도 조금만 더 나이들어 봐라.'

아, 부모님들이 내게 오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싶다. 흑백사진 속에 들어있는 추억들이 컬러사진 혹은 디지털 사진 속에 들어있는 추억보다 깊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나는 아날로그 세대인가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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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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