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원시부족 추장의 연설이 유효한 이유

[서평]<빠빠라기>를 읽고 현재 생활 방식을 성찰하다

등록 2010.08.31 14:36수정 2010.08.3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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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휴가 기간(8월초)에 10일간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4대강 사업 반대' '지리산 케이블 카 반대' 를 외치며 지리산·낙동강 도보순례를 다녀왔다.

10일간 세상과 동떨어져 자연 환경과 함께 하는 것은 요즘 20대들에게 매우 힘들었다. 땀에 젖은 T셔츠를 입고 하루 종일 활동하기, 대부분 이동을 걸어서 하고, 물수건으로 샤워하기 등 하루하루가 불편한 삶의 연속이었다. 도시에 있으면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에 샤워도 마음껏 하고, 먼 거리는 자동차를 통해 이동할 수 있고, 더우면 에어콘과 선풍기를 틀 수 있는데 말이다.


활동 초반에는 많은 참가자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힘들어 했다. 하지만 활동의 후반기로 넘어오자 새로운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땀의 개운함을 느끼게 되었고,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하루하루 먹고 살 돈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등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활동이 끝나고 이틀 만에 시간에 쫓기고 돈에 치이는 도시 생활로 돌아왔다. 나의 생활 조건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시간과 돈 등에 치이는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씁쓸하였다.

문명세계의 사람들 - '빠빠라기'

a  <빠빠라기-에리히 쇼일만> /정신세계/

<빠빠라기-에리히 쇼일만> /정신세계/ ⓒ 정신세계

20세기 초 문명의 세례를 받기 전 사모아 섬의 투이아비 추장은 서양의 문명 세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추장은 서양 문명을 보고 서양 사람들에게 '빠빠라기' 라는 호칭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을로 돌아와 부족민들에게 문명인의 생활상을 소개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독일인 에리히 쇼일만은 추장 투이아비와 1년 이상 함께 기거 하며 추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내용을 기록하게 된다. 문명의 세례를 받기 전인 원시 원주민의 연설은 매우 소박하고 원시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에리히 쇼일만은 비문명인인 그들이 지적한 것이 문명인들의 삶을 성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1920년 연설문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빠빠라기> 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웃집 사람이 죽어도 무관심한 사람들"

추장 투이아비는 문명세계에서 본 빠빠라기들의 생활 방식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비판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집, 소유와 돈, 시간에 쫓기는 생활, 직업, 사유 등 문명인들이 당연시 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얘기 한다. 이 글을 통해 몇 가지 소개 하고자 한다.


먼저 문명인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추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들이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 

"각각의 아이가(가족)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통 이웃집 일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마치 벽 하나 사이에 마노노섬과 아폴리 섬과 사바이 섬, 그리고 넓고 넓은 바다가 가로놓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번째, 추장의 시선에서는 돈을 둥근 쇠붙이와 묵직한 종이로 묘사하며 돈을 탐하면 탐할수록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말한다.

"돈으로 사람이 즐거워지거나 행복해지는 일은 없다고,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사람의 모든 것을, 나쁜 다툼 속으로 끌어넣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돈은 한 사람의 인간도 진짜로 구제하지는 못한다. 돈이 한 사람의 인간도 즐겁게, 억세게,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 시간에 쫓겨 살고 그것을 단축시키는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만들고자 하는 빠빠라기들을 추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빠빠라기는 시간을 되도록 빡빡하게 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간을 멈추어두기 위해 물을 이용하고 불을 이용하며(수력 또는 화력발전), 폭풍우나 하늘의 번개를 사용한다. 빠빠라기는 시간을 이용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나로서는 아무리 해도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중략) 우리들은 아직 한 번도 시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없고, 때가 오면 오는 대로 그저 때를 사랑해왔다. 시간을 윽박질러 다그친 적도 없거니와, 쪼개어 산산조각을 내려고 한 적도 없다. 시간으로 고통을 겪은 적도 없거니와, 시간으로 고민한 적도 없다."

90년 전의 추장의 연설문 아직 유효하다

<빠빠라기>를 읽고 나서 조금 씁쓸했다. 약 100년 전에 얘기 했던 사실이 지금은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서울 강남에 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하루하루 시간에 쫓겨 주위 이웃이 자살해도 무관심하고, 자연 환경을 파괴하여 토건업자들의 배를 채우려는 사건들이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기후 현상 등 현재와 같은 사회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와 환경이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진 자들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게 하려고 한다.

<빠빠라기>는 현재와 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 매우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투이아비 추장은 자신의 마을 부족 사람들에게 문명인들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들의 생활을 지키자고 연설하였다. 우리는 추장의 연설을 통해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추장의 연설은 어떻게 하면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을 뛰어 넘어 새로운 삶을 방식을 구성할 것인지 고민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빠빠라기 - 처음으로 문명을 본 남태평양 티아베아 섬마을 추장 투이아비 연설집

투이아비 지음, 에리히 쇼이어만 엮음, 강무성 옮김,
열린책들, 2009


#빠빠라기 #문명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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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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