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자진사퇴' 끌어낸 사진, 이렇게 찾았다

[특종후기] 충북 지역기자인 내 검색망에 걸린 술잔 든 '김태호-박연차'

등록 2010.09.01 14:56수정 2010.09.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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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이후인 지난 27일 공개된 2006년 2월 박연차 전 회장과 나란히 찍은 출판기념회 사진은 결정타였다.' 8월 29일,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사퇴소식을 전한 <연합>의 보도입니다. 같은 날 <한겨레><조선> <중앙> 등의 분석도 비슷했습니다. 이 사진은 <오마이뉴스> 8월 27일자 기사 '김태호, 2006년 2월에도 박연차와 만났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기사를 쓴 김천수 기자가 이 특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후기를 보내와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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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7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기사 ⓒ 화면캡쳐


지난달 8일, 이명박 대통령이 40대 후반의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총리 후보자로 내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선함을 느꼈다. 그에게 유독 관심이 간 이유는 같은 소띠 동갑내기인데다가(김태호 전 지사 본인이 "62년생이지만 소띠"라고 밝힌 바 있다) 소장수 아들로 성공한 지역출신 총리 후보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곧 50대가 되는 그였지만, 훤칠한 키와 말쑥한 외모는 남자인 나에게도 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경남도의회 의원, 거창군수, 경남도지사를 거친 오롯한 '지방인물'이란 사실에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듯 '지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충북지역 한 신문의 군 주재기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까이에서 지방의원들과 군수들의 일정들을 자주 지켜봐왔기에,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내정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더욱이 지금 내가 사는 지역도 도의원 출신이 군수로 당선돼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터였다.

아마 그래서 더욱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자칭, 타칭 '경남의 아들'이라 불린다는 그가 청문회 자리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데, 경남지역 신문들은 이 상황을 어떤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을까. 지역 기자로서 궁금증이 발동했다.

심심하면 전국 신문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주요 기사들을 비교 검토하는지라, 경남지역 신문이든 제주지역 신문이든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술잔 들고 내 눈 앞에 나타난 박연차와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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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1일 경남 창원에서 있었던 한 출판기념회장에서 나란히 선 김태호 총리 내정자와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동그라미 안 왼쪽이 박연차 전 회장). <경남신문> 2006년 2월22일 기사. ⓒ 화면캡쳐


내가 마음을 먹고 경남지역 신문을 둘러보고 있던 시점은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장에서 2006년 10월 김태호 후보자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골프를 쳤다는 증거를 제시한 직후였다. 줄곧 박 전 회장과 2007년부터 알게됐다고 주장하던 김태호 후보자가 박 전 회장과 골프를 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뭔가 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시점이 그 전일 수도 있어 보였다. 사실 도지사와 지역의 대표적 성공 기업가가 평소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 지역정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태호 후보자는 경남도의원과 거창군수를 거쳐 도지사를 두번이나 지낸 자타가 공인한 '마당발'인데, 박연차 전 회장 또한 소문난 마당발이 아니던가. 물론 같은 군 출신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군을 떠나 도, 그리고 전국적 인물이 아닌가.

두 사람 모두 사람 사귀는 데는 귀재일 것이다. 그래서 경남지역 신문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기사 검색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사에서 김태호 후보자가 총리로서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가끔은 댓글에서 코너에 몰리는 김 후보자를 걱정하는 이들을 볼 수도 있었다.

김태호 후보자와 박연차 전 회장이 함께 나올 과거 기사 검색을 시도한 지 1시간여 만에, 박연차-김태호 두 사람이 술잔을 들고 대형 케이크와 함께 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경남신문> 2006년 2월 22일자 인터넷판에 실린 기사였다. 사진 속에 걸린 현수막에 적힌 '꽃과 똥의 경영철학'이라는 문구가 잠시 미소를 불러왔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약간 떨려왔다. 이때가 8월 26일 오전이었다.

27일, <오마이뉴스> 머리기사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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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지난달 29일 오전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던 서울 광화문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준비된 총리 후보 사퇴문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일단 취재 일정이 있어서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이때만 해도 조금 떨리기만 했지, 이 사진 한 장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선 반신반의했다. 그러면서도 이 기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됐다. 취재 중에도 인터넷만 있으면 들어가 읽어보길 몇 번, 사무실이 별도로 없는 나는 취재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충북지역 주간신문의 지역 주재기자로서 어떤 형식으로 이 건을 기사화할까, 더욱 고민했다. 일단 다음 주 종이신문 세평(世評)란에 칼럼형식으로 올려볼까, 생각을 하다가 시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판에 올리기로 결정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안 한 지 오래됐기에 우리 신문에 송고하기로 마음먹고 작성을 마무리했다. 그때가 26일 오후 10시. 송고를 하고 담당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낼 아침에 상의해서 전화할게요~"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난 컴퓨터 앞에 앉아 관련 뉴스를 검색했고, 그러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혹시 박영선 의원이 사진을 찾아내 기자회견이라도 하지는 않았나 해서다. 다음날인 27일, 아침에 일어나 TV뉴스와 인터넷 뉴스 검색을 해도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오전 10시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외출 준비를 하는데 신문사 대표가 전화를 해왔다.

"기사 잘 봤어요. 그런데 여럿이 찍은 사진인데다 지역신문이라 한계가 있을 것 같으니 <오마이뉴스>에 올려보는 게 어때요?"

기사를 중앙지 성격에 맞게 수정해야 했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오전 10시에 깰 수 없는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히 차를 몰아 약속장소에 갔고, 1시간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오전 11시가 넘어 후배 사무실을 찾았다. 급하게 후배에게서 컴퓨터를 빼앗아 기사를 수정한 뒤 <오마이뉴스>에 송고를 했다. 휴~. 이후 30여 분이 지났을까 '검토중'으로 넘어갔다. 가슴이 좀 떨려왔다. 1시간여 뒤 '새로고침'을 하고 생나무에 들어갔더니, 기사가 없어진 것 아닌가. 정식기사화 된 것이다. 다시 '휴~' 한숨을 내쉬고 본업에 들어갔다.

오후가 되자 지인 몇 명이 축하 전화를 해왔다. <오마이뉴스> 머리기사에 내 기사(김태호, 2006년 2월에도 박연차와 만났다)가 올랐다는 것이다.

김태호 사퇴 관련 <경남신문> 사설, 씁쓸하다

이어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매체가 이 사진을 뉴스로 다뤘다. 그리고 다음 다음날, 김 전 총리 후보자가 사퇴했다는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접했다. 사퇴 소식을 접하고 한 가지 가정을 해봤다. 이번 사진이 딸린 기사를 내가 기사화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렇게 김 전 총리후보자는 사퇴했지만, 이후 접한 <경남신문>의 8월 30일자 사설 '지역인물 중앙진출 무산시킨 김 후보 낙마'는 내 마음을 좀 씁쓸하게 만들었다. 사설의 후반부는 이렇다.

"특히 여당은 후보를 돕던 다른 청문회 때와 달리 부정적 입장을 견지, 총리후보를 여야가 함께 배척하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달라져야 한다는 '청문회 발전론'을 감안하더라도 중앙정치권의 '중앙 지키기'를 의심하게 한다. 김 후보자는 지방자치 실시 이후 도의원, 군수, 도지사 등을 역임하며 성장한 지역인물이고 지역을 이해하는 그가 총리가 돼 지방분권, 지방정부 기능 강화 등을 추진하면 중앙정치권력의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여야가 하나가 돼 김 후보자를 '낙마'로 몰고 간 데는 이런 이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낙마는 지방분권, 지방정부 기능 강화의 기회를 잃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김태호 #박연차 #취재기 #박영선 #경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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