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촘촘했던 삶, 이렇게 보니 '울컥'

[서평]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펴낸 <김대중 평전1·2>

등록 2010.09.06 10:19수정 2010.09.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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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6월 27일 동교동 자택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안홍기
'거목'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나는 늘 이 단어가 떠오른다. '인동초', '대통령', '민주 투사' 등 김대중을 상징하는 여러 말들이 있지만, 이것만큼 김대중을 잘 상징하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예인이 떠나면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상념에 젖는다. 내 또래의 연예인이 늙어가면 그의 모습에서 나의 나이듦을 떠올리고, 어렸을 때 좋아했던 연예인의 부음 기사를 읽으면 잊고 있었던 기억의 한 조각을 떠올리면서 한 시대가 가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김대중을 연예인에 비교하자면 그는 또래의 연예인이기도 했고, 어렸을 때 좋아하던 과거의 연예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시도 잊혀지진 않았던 연예인이다. 그의 삶 속에는 나의 삶이 투영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내가 잘 모르던 과거의 역사가 살아 있고, 그리고 오늘날 같이 살아 숨쉬는 현실이 담겨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함께 좋아했던 정치인이다. 거목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그늘이 있었고, 오래된 거목이었으나 고목이 된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꽃이 피고지고 열매를 맺는 살아 있는 현실이었다.

2009년 8월, 민주화세력의 최대주주가 떠났다

허나 거목도 시간의 흐름은 어찌할 수 없는 법. 2009년 8월 김대중도 시간의 무게를 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떠났다. 민주화 세력의 실질적인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가 떠난 것이다.


 <김대중 평전> 1권 겉그림.
<김대중 평전> 1권 겉그림. 시대의창
국가든 기업이든 한 역사의 창업자가 떠나면 남은 자에게는 기록과 계승이라는 책무가 안겨진다. 김대중이 남겨 놓은 자산 탓에 이를 상속받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계승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고, 그의 진정한 유지와 정신의 의미를 둘러싸고 후손들은 또 많은 역사 투쟁을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계승자에 비하여 기록자를 자처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일기로든 단편적인 에세이로든 조그맣게라도 그를 어떻게 느꼈고 그와 어떻게 호흡하고 살아왔는가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 책무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펴낸 <김대중 평전1·2>(시대의창)은 기록자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한 첫 번째 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지은이도 거목의 생애에서 흘러나오는 무게감을 느낀 탓인지,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거목이 주는 무게감을 이기고 200자 원고지 4천여 매에 달하는 분량을 썼다는 사실에서, 저자의 노력과 발품의 무게가 느껴진다.

<김대중 평전>, 이보다 더 촘촘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김대중을 살아온 현실의 무게로 느끼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1985년 미국 망명을 끝내고 들어올 때부터였다. 미국 하원 의원과 세계적 기업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장 등과 함께 들어온 김대중의 무게를 당시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거물이 내가 사는 공간으로 들어옴을 중학생인 어린 나이에도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 이전의 김대중의 삶은 나에게는 역사 속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김대중 평전>은 두 권으로 출간되었는데, 2권의 시작은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귀국한 시점부터 전개된다. 따라서 나에게 1권의 내용은 역사요, 2권의 내용은 그와 함께 걸었던 현실로 생각된다.

연령대에 따라서는 1권과 2권 전부가 자신의 생애 속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내용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거의 모든 내용이 지나간 역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김대중의 전체적인 삶을 조감하고 살펴보는데 충분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의 정치적 삶을 지켜봐온 50살 이상의 기성 세대에게는 지나간 기억의 편린들을 정리해주는 책이 될 것 같고, 그가 역사 속 할아버지로 생각되는 20대 이하에게는 그를 알아가는 기초 자료로서 훌륭한 역사책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언론에 비친 정치인으로, 어떤 때는 무명의 선거 운동원으로, 어느 시점에서는 열렬한 지지자이자 비판자로 함께 했던, 조각난 세월의 기억들 사이로 새록새록 무언가 올라오곤 했다. 그만큼 이 책이 김대중의 생애를 촘촘하게 썼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다만 촘촘함이 때로는 평이함으로 다가서는 아쉬움이 한켠에 있다. 그렇지만 김대중이라는 거목의 생애를 빠짐없이 다루는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다른 사람이라면 생애 은퇴를 준비할 나이인 60살 이후의 삶만 해도 <김대중 평전 II>를 꽉 채우고 있다. 그 시기에 있었던 큰 역사적 격랑만 손꼽아도 6월항쟁, 3당합당, IMF위기, 노벨평화상 수상 등이 나온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만 기술해도 각 권당 500~600페이지의 책의 면수가 부족한 실정이다.

민주주의와 통일조국, 우리가 김대중에게 진 빚

 <김대중 평전> 2권 겉그림.
<김대중 평전> 2권 겉그림. 시대의창
아이러니하게도 상업적으로 이 책은 <김대중 자서전>(삼인 출판사)과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김대중이 영면하기 전에 연재를 시작하여 서거 후에 연재를 끝냈다. 서거 후 출간을 유언한 자서전의 출판 시기와 겹치는 우연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서전과 평전은 색깔이 다르고 김대중이라는 거목의 생애는 그의 이름에 있는 국민 대중과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서로 호흡하면서 만들어진 역사적 구성물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는 작업은 자서전과 평전 등 여러 각도에서 이뤄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브루스커밍스 교수는 "한국인은 김대중에게 '외환위기 극복'과 '햇볕정책'이라는 두 가지를 빚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오늘까지 이룩한 민주주의 성과와 앞으로 다가올 통일 조국까지 모두 김대중에게 우리 국민이 진 빚이다. 아마도 김대중은 거창한 빚 갚음을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그를 기억하고 다시 살아오는 역사로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 생각한다.

거목의 역사는 그가 이 세상에 없어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역사 속에서 새롭게 다시 살아나야 한다. 앞으로도 김대중의 이야기를 가지고 수많은 소설과 영화, 평전이 나오겠지만, 김대중의 영면 시점에서 그를 바라보는 현대사 연구가의 평전은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하나의 소중한 역사책이 될 것이다.
#김대중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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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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