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전문서 제목에 왜 다문화가 들어갈까?

다문화, 안 걸린데 없는 세상... 전문서적마저 책 제목을 왜곡하네

등록 2010.09.03 16:59수정 2010.09.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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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명확한 학술적 텍스트가 아니라 실용적인 지침서가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또한 전문가들이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문화적 변화에 따른 문제도 적절히 다루도록 돕기 위해 쓰였다. (중략) 이 책은 아동 보육과 아동 발달 전문가를 위한 서적이다."

다문화사회와 어린이 원제인 Culture and the Child가 '다문화사회와 어린이'로 번역되었다.
다문화사회와 어린이원제인 Culture and the Child가 '다문화사회와 어린이'로 번역되었다.한울아카데미
1996년 10월에 호주에서 발간된 다프네 키츠(Daphne Keats)의 <문화와 아동, Culture and Child>의 한국어 번역본 <다문화 사회와 어린이>(2010년 3월)를 보면서 아무리 다문화가 대세요, 안 걸리는 데가 없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전문서적을 번역하면서 책 제목을 시대 조류에 편승해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자 본인이 '아동 보육과 아동 발달 전문가를 위한 서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전문 서적의 책 제목을 임의로 왜곡하는 것은 전문가의 양식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자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책 내용이 다문화를 다루고 있고, 다양한 국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서적이다. 전문가가 다른 문화적 배경의 아이들을 보육하게 되는 경우에 그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동의 개인적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고려되어야 할 몇몇 문화적 요인 때문인지 판단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썼기 때문에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

그렇다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연구 대상들이 누구이며,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말하는 다문화 어린이는 누구인가? 책에서 연구 대상이 되었던 아이들은 중국과 일본, 말레이시아계 아이들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다문화 어린이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지칭하기보다, 오히려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타 국적 출신인 어린이를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엄마를 두고 있는 어린이를 의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원저와 현실은 연구 대상도 다르고, 다문화 어린이에 대한 접근 방법 혹은 개념도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책 제목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문화'가 들어갈 자리에 '다문화 사회'를 짚어넣은 것임을 말해 준다. 그래서 한 마디 하고 싶다. "다문화, 너 참 오지랖 넓으시네요."

다문화 어린이라는 '개념'조차 왜곡된 현실 속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이 시류에 영합하여 책을 낸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리사회가 이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진입했고,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가도 나와야 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 대통령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이름 때문에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무슬림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부르카(이슬람 여성의 의복)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 7월 13일 하원을 통과했다. 이는 이름, 옷차림과 외적 특성 등을 토대로 상대방의 문화적 정체성을 판단하려는 경향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피부색과 얼굴 특성은 민족성의 지표로 자주 이용되지만, 문화적 정체성 측면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지표다"라고 지적한다.

이주민 120만 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행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책이나 텔레비전, 영화를 통한 간접적인 느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 사회는 이게 참 불편하다고 느낀다. 아직까지 타문화권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문화적 정체성은 갈등을 야기한다는 견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우리사회가 점점 더 많은 국적과 인종이 섞여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그 복합성 때문에 더 흥미로울 수 있을 거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는 노력을 해 보자는 것이다.

긍정의 시각, 따뜻한 시각을 갖고 보면, 저자의 말처럼 "문화마다 아이들의 '바람직한' 행동 또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판단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한 문화에서는 '바람직한' 아이가 다른 나라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되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어린이들을 보듬을 수도 있게 된다.

최근 우리사회의 다문화 열풍은, 본의 아니게 부모 중 한 명이 국적이 다른 가정에 속한 어린이들에게 '다문화'라는 낙인을 찍고, 아이로 하여금 주류 집단에서 배제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점에 대해 저자는 "불리한 소수 민족 출신의 아동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문화가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을 느끼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일 수 있다, 특히 갑자기 이런 모든 상황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주류문화의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나 지배적인 문화적 관점의 태도를 취할 때는 종종 소수 민족 아이들은 배척당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에 대한 배척이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리사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우리말에는 상대방을 배제한 '우리(나라)'와 상대방을 포함한 '우리(끼리)'가 있다. 상대방을 배제한 우리는, 상대편을 '그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차이를 비교하는 데 문화적 요소를 강조한다면 편견을 부추기고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기질적 차이는 모두 '우리'와 '그들'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들'도 함께 하는 '우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말하는 바람직한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다문화적 아동은 인간 경험의 다양성에 대해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즉,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살 수 있음을 알고 문화마다 생활방식이 다를 수 있으며 다양한 종교와 신념의 존재를 이해하여 비록 이들 종교와 신념이 자신의 것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선량한 사람들을 배출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또한 '다르다는 것'이 곧 '나쁜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와 같다는 것'이 곧 '좋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문화 사회와 어린이 (반양장) - 소아정신과의사가 권하는 다문화 사회 아동정신건강 지키기

다프네 키츠 지음, 김영화 옮김,
한울(한울아카데미), 2014


#다문화사회 #어린이 #왜곡 #다문화사회와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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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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