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글 썼더니 교육청 간부가 "삭제하라"

귀 막은 경북교육청 태도에 해당 학부모 "황당하고 불쾌"

등록 2010.09.04 19:54수정 2010.09.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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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A씨가 경북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 ⓒ 윤근혁


"교육청 게시판에 글을 올렸더니 장학사, 장학관이 차례로 전화를 걸어 삭제하라고 했습니다. 황당하고 불쾌했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더군요."

초등학교 학부모인 A씨(농부)가 경북교육청(교육감 이영우) 인터넷 공식 사이트 '참여마당'에 글을 쓴 때는 지난달 26일. 제목은 '2010년 가을 초등교원인사에 대한 학부모의 입장'이었다.

이 글에서 A씨는 "학교 회계 비리와 의혹을 양산하여 교육당국으로부터 조치를 당하고 스스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간 교장이 1년 만에 (또 다른 초등학교에) 공모제교장으로 임용된다는 사실에 학부모로서 경악한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교육청의 공모교장심사위원회는 어떻게 이런 교장을 심사에서 통과시켰는지 의문이 강하게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자신이 경북 B초 학교운영위원장이던 지난해 7월 학교 회계 질서 위반 등의 이유로 교육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K교장이 9월 1일자로 공모교장이 된 사실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이 글에서 해당 교장을 식별할 수 있는 학교와 실명을 적지 않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경북교육청 초등 인사 담당 장학사와 장학관은 A씨에게 잇달아 전화를 걸어 '글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와 경북교육청 관련자의 말을 종합하면 글을 올린 지 4일 만인 8월 30일 오전에는 G장학사가, 오후에는 S장학관이 각각 전화를 했다.

A씨는 이들과 한 통화 내용에 대해 "장학사와 장학관이 차례대로 글을 쓴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더니 초빙형 교장공모제로 임용된 교장 전체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내용이니까 우선 글을 지워주면 조사를 해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참여마당이란 게시판에 칼럼 형식으로 올린 학부모의 목소리를 수렴하기는커녕 남몰래 삭제할 것을 종용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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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교육청 로고. ⓒ 경북교육청 홈페이지

이에 대해 경북교육청 S장학관도 관련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이 장학관은 2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글 삭제를 종용했느냐'는 물음에 "글을 삭제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고 당분간 살짝 내려놓으면 안 되느냐고 부탁했다"면서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이 쓸데없는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어 강요하지는 않았고 개인 의견을 말씀드린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경북교육청은 올해 초 교과부로부터 고객만족도와 학부모 응대 등에 높은 점수를 받아 전국 최우수 교육청으로 뽑힌 바 있지만, 이번 글 삭제 요구 사태는 이런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전은자 참교육학부모회 교육자치위원장은 "경북교육청에 올린 학부모 글은 초빙형 교장공모제의 문제를 지적하고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확대하라는 내용이었다"면서 "이번 경북교육청의 사례처럼 다른 교육청도 학부모의 정당한 글을 수렴하기는커녕 물밑에서 삭제를 요구하는 행태를 벌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경북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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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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