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이경규, 한물 간 줄 알았는데

<남격>으로 또 다른 전성기 맞고 있는 '아저씨' 예능인 이경규

등록 2010.09.06 17:18수정 2010.09.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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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러브스위치>에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이경규씨. ⓒ tvN


KBS2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의 인기, 말 그대로 물이 올랐다. 최근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노래라는 감동을 일깨워주고, 또 인기를 얻으면서 소프라노 싱글이 누가 될 것이냐가 인터넷 연예 뉴스면을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2일 유튜브에 올라 온 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 동영상은 이미 조회수 15만을 훌쩍 뛰어넘었다.

분당 최고 시청률 26.3%, 평균 시청률 19.9%(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5일 방영된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하모니' 4편의 성적이다. 이 정도면 <1박 2일>도 부럽지 않은 수치다. 작년 3월 29일 첫 방영된 이후 1년 5개월여. 리얼 버라이어티의 답습 수준이라는 비판에서 출발, 아저씨들의 좌충우돌 생활 적응기가 까다로워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엔 이경규가 자리하고 있다. 데뷔 30년 차,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의 간판 개그맨. '몰래카메라'와 '양심 냉장고', 그리고 월드컵하면 떠오르는 '이경규가 간다'까지.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슬럼프에서 허덕이며 '이경규가 한물갔다'는 표현까지 심심찮게 들어야만 했던 그였다. '이경규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대표 개그맨이자 예능인인 그에게 이런 표현은 굴욕 수준이었을 터.

올 KBS 연예대상의 유력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인기를 회복한 '아저씨' 이경규. 20년간 정상을 지켜왔던 그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었던 걸까?

<남자의 자격>의 이경규, 버럭과 어리숙함 사이

"제 인생에서 영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92년도에 영화를 만들어서 제작, 감독, 주연, 각본, 1인 5역을 해서 홀라당 망했습니다. 그때 당시 뭣도 모르고 까불다가 홀라당 망하는 것을 고사성어로 '복수 혈전'이라고 했습니다.

또 2007년에 차태현을 꼬셔서 <복면달호>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관객이 170만 정도 들었고 본전을 했어요. 차태현씨가 <복면달호> 끝낸 다음에 <과속스캔들>에서 800만을 터트렸어요. 왜 복면달호에서 터트리지 않고 왜 이 인간은 '과속스캔달'에서 800만을 터트려서 남의 염장을 지르냐는 거예요. 저 소주 2명을 빨아 먹고 울면서 참았습니다."


지난 5월 방송된 '남자 청춘에게 고함' 편 중 이경규가 '인내'를 주제로 한 강의 내용 중 일부다. '아저씨' 이경규는 이제 인내를 얘기할 만큼 연륜이 쌓였다. 그런데 전형적인 '마초' 기질의 이 아저씨가 재미있는 것은,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풍자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건 <남자의 자격> 캐릭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리얼 버라이어티인 이 프로그램에서 이경규는 동생들에게 버럭 대기도 하지만 또 동생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한다. 분당 시청률 33%를 기록했던 '이경규 몰래카메라' 편은 그러한 콘셉트의 극대화였다. '몰래카메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를 기가 막히게, 그것도 24시간 단식을 시켜가며 속이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킥킥대며 공감하지 않았을 시청자들이 누가 있으랴.

이러한 그의 캐릭터는 '남자들이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대학을 졸업하고 평생 연예인으로 살았던 그가 각종 직업에 도전하고 실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어리숙함과 작은 성장을 그리는 프로그램 콘셉트하고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최악의 슬럼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의 한 장면. ⓒ KBS


"이제 참아야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많이 바뀌었어요. 마라톤 보셨죠? 세상에 제일 재미없는 운동입니다. 이걸 4시간 50분 동안 뛰었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감동적이었다. 후배들을 이끌고 잘 나가는구나' 내가 좋아서 뛴 줄 아십니까? 왜? 제가 참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지리산에 기어 올라갔어요. 20kg의 배낭을 메고 18시간을 걸어 올라갔어요. 올라갈수록 화가 났어요. 왜? 다시 내려와야 되잖아. 저는 꾹 참았습니다. 역시 참고 나니까 좋은 댓글이 올라오더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속은 다 뒤집어 지고."

이경규, 그는 역시 천생 개그맨이다. '인내'를 주제로 삼은 강의에도 힘들었던 도전기 과정과 특유의 투덜거림을 녹여내 웃음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그게 다 그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경험이요, 관록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개그로 승화시킨다. 

그 또한 슬럼프가 있었다. 지난 4월 방영된 tvN <택시>에서 스타로 올라선 뒤 그가 직접 밝힌 슬럼프는 대략 2번이다. '몰래카메라' 종영 이후 <일밤>의 진행자가 이홍렬, 이문세, 이휘재로 교체됐을 때가 그 첫 번째다.

"그때 변방으로 빠졌어요. 그때가 슬럼프였죠. 이후 1996년 <이경규가 간다>로 다시 살아났어요. 사생활 자체는 사실 양심이 아니었는데, 떠밀려서 도로 위의 양심이 된 거죠. 양심아이콘으로 우뚝 서고."

그 이후 전성기 때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 온 그는 <전파견문록>이나 <대단한 도전> <건강보감>으로 인기를 이어간다. 또 <돌아온 몰래카메라>도 오리지널보다는 잔잔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특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무한도전>의 경쟁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라인업>을 통해 그는 처절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2007년부터 잘 안 되더라고요. 인터넷 상이나 기자분들이 '이경규는 갔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있다, 나이가 많으니 할 만큼 했다'고 하고. 그러면서 사실 많이 반성을 했어요. 내가 내 성 안에서 갇혀 사는구나. 탈출을 해야겠다. <데미안> 소설에서 보면 알에서 깨어나듯이."

그가 요즘 방송에서 자주 거론하는 것이 링컨의 좌우명이었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경구다. 2000년대 중반 MBC 방송연예대상을 2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경규는 시청자의 외면도, 독한 평가도, '바닥' 시청률도 겪어 봤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50대에 <남자의 자격>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화성인 바이러스> 등 케이블 포함 5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자신이 제작하는 <전국노래자랑>이란 영화 또한 촬영을 앞두고 있다. 2010년은 이렇게 이경규의 제3, 제4, 제5의 전성기다.

방송이란 먼 길 떠나는 나그네의 주목되는 행보

tvN <화성인 바이러스> ⓒ tvN


"옮겼을 때 잘못되면 여기서 끝이구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죠. 옛날에는 내 재능으로 모든 걸 다 이룰 거라 생각을 했는데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구나, 이제는 생각해요.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고요. 요즘은 후배가 잘 웃기면 행복해요. 저 친구 때문에 내가 먹고 산단 말이죠."

친정인 MBC를 떠나 KBS의 간판 시간대, 그것도 <일밤>의 경쟁프로그램에 출연한 이경규. 그러나 그는 변해 있었다. 제일 싫어한다는 기나긴 녹화시간도 참고, 또 한 때 그를 홍해 갈라지듯 피했다는 여자 작가들과도 잘 지내며, 무엇보다 자기 본위의 방송에서 탈피해 후배 연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넉넉한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합창단에서 실력은 부족해도 투덜대는 걸로 방송 분량을 만들어내고 가장 큰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다.

이게 다 결과론적 얘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복수혈전>이후 10여 년 넘게 영화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고, 또 주연이나 감독을 포기하고 제작자로 한발 짝 물러서 <복면달호>를 내놓았던 것을 상기시켜 보자. <몰래카메라>의 악동은 이렇게 딸 예림이를 걱정하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확인하고 가야 할 자리에 설 줄 아는 재미있는 '아저씨'로 변모했다.

"그대여, 결코 서두르지 마라. 대어(大漁)를 낚으려는 조사(釣師)일수록 기다림이 친숙하고,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일수록 서둘러 신발끈을 매지 않는다."

그가 추천한 소설가 이외수의 글귀다. 지나온 30년만큼 앞으로도 더 오래 '해 먹고' 싶다는 이경규. 70대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미국의 방송인 래리 킹처럼 그가 오래오래 TV 브라운관에서 시청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일은 꽤나 흐뭇할 것 같은 예감이다.
#이경규 #남자의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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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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