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함부로 만졌다가는 큰일난다

대전 보문산 자락에 토란꽃 수십 송이 '활짝'...고향 어머니 토란국 생각나네

등록 2010.09.08 18:12수정 2010.09.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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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전 중구 문화동 보문산 자락 비탈밭에 핀 토란꽃.

대전 중구 문화동 보문산 자락 비탈밭에 핀 토란꽃. ⓒ 오마이뉴스 장재완


a  카라를 닮은 토란꽃.

카라를 닮은 토란꽃. ⓒ 오마이뉴스 장재완


추석 때가 되면 어머니는 뒷밭서 캐 온 토란으로 국을 끓여주시곤 했다. 들깨를 듬뿍 넣어 만든 토란국은 말 그대로 별미였다. 난 그 토란국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토란국을 끓이는 과정은 참 쉽지가 않다. 토란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해 주시던 토란국을 맛있게 먹기만 했던 나. 몇 해 전 시골에 갔을 때 어머니가 토란 껍질을 벗기고 계신 것을 보았다. 어느새 팔순 노인이 되신 어머니의 손마디 마디는 갈라지고 갈라져 그 틈새에 까만 때가 끼어있다.

아무리 씻어도 하얘지지 않는다는 어머니는 한 손에는 반쯤 찌그러진 숟가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토란을 들고서 연신 껍질을 벗기고 계셨다. '그래 오랜만에 고향에 왔으니 어머니 일 손이나 도와보자'는 생각에 난 어머니의 숟가락을 뺏어들었다.

어머니는 '이것 함부로 만졌다가는 가려워서 큰일난다'고 하시면서 날 말렸지만, 모처럼 어머니 일손 돕기로 마음먹은 바에 그냥 어머니를 밀쳐내고 토란이 담긴 바가지에 내 손을 담가 버렸다.

어머니의 걱정 만큼 따갑거나 가렵지는 않았다. 어릴 적 감자 벗기던 솜씨를 발휘해 토란 껍질을 벗겨냈다. 어머니는 '큰일난다니까' 하시면서 고무장갑이라도 끼고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난, 갈기갈기 갈라진 어머니 손으로도 그냥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마음으로 그냥 맨손으로 껍질을 후다닥 벗겨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토란국이 끓는 부엌을 서성였고,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토란국은 날 천국으로 안내했다. 참 맛있었다. 난 식탁에 앉아서 형들과 아내, 조카들에게 내가 껍질 벗긴 토란이라고 자랑을 해 대면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었다.


그런데, 으악! 드디어 솔솔 입질이 오고 있었다. 가렵다고는 했지만 손이 그렇게 가려울 수가 없었다. 아니 가려운 게 아니고 아예 따가웠다. 시간도 길어서 1-2시간이 아니라 밤새 그렇게 가렵고 따가웠다. 긁으면 긁을수록 그 고통을 더해 갔다. 손 등이 거의 헤어지도록 긁으면서 그 밤을 지새운 것 같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만큼 아픔도 큰 토란국. 토란은 줄기도 유용하게 이용하는 식물이다. 토란대를 말렸다가 나물로 무쳐먹기도 하고 육개장 등에 넣어서 먹기도 한다. 그 뿐인가. 토란은 잎이 넣고 매끄러워 아이들에게는 참 좋은 장난감이다.


어릴 적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밭에 있는 토란잎을 따서 우산처럼 쓰고 뛰어다녔다. 물론, 제대로 비를 막아주지는 못했다. 토란 잎 위에 물방울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리며 놀던 기억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a  백년 만에 한번 핀다는 토란꽃.

백년 만에 한번 핀다는 토란꽃. ⓒ 오마이뉴스 장재완


a  대전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토란밭. 토란 잎 아래에 노란색의 토란꽃이 보인다.

대전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토란밭. 토란 잎 아래에 노란색의 토란꽃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그런데, 이번에는 토란꽃이 내 눈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어머니도 팔십 평생 동안 토란 농사를 지었으나 토란꽃이 피는 것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고 하신다. 혹자는 백년 만에 한 번 필까 말까한다는 게 토란꽃이란다. 그 만큼 귀한 꽃이 토란꽃이다. 그렇다 보니 토란꽃이 피면 그 해에 경사가 있을 것이라는 속설도 있다.

토란꽃이 피었다는 전화를 받고 대전 중구 문화동 보문산 자락의 비탈밭으로 내달렸다. 몇 평되지 않는 조그만 밭뙈기에 사람크기만한 토란이 쑥쑥 자라있었다. 넓적한 토란 잎 아래 줄기사이에 처음 보는 이상한 꽃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마치 카라같이 예쁘장한 얼굴로 수줍게 꽃술(?)을 내밀고 있는 토란꽃. 그렇게 귀하다는 토란꽃이 한두 송이가 아니라 30송이는 족히 넘게 이쪽저쪽에 피어있었다. 난 토란줄기를 헤쳐 가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물론 주인의 허락은 받았다.

기후 때문일까 종자 때문일까 그 귀하다는 토란꽃이 언제부터인가 자꾸 피고 있다고 한다. 원인이야 알 수 없지만, 쉽게 피지 않던 토란꽃이 피는 것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올 추석에 토란국 끓여 달라고…. 그 때에는 꼭 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길 테다.
#토란꽃 #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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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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