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서 전시하던 시대는 끝, 마당이 바로 전시실

백수 3일째, 창원 진해 박배덕&갤러리 마당으로 떠난 여행

등록 2010.09.10 09:13수정 2010.09.10 09:57
0
원고료로 응원
a  박배덕 갤러리 마당 풍경

박배덕 갤러리 마당 풍경 ⓒ 김준영

박배덕 갤러리 마당 풍경 ⓒ 김준영

 

백수생활 3일째. 꿈을 위해서 더 부지런하게 살자는 마음가짐은 마치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며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객원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월간스트리트 경남 책을 보다가 한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참 독특했다. 박배덕 & 갤러리 마당. 갤러리 마당? 여기서 마당이라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갤러리는 세련된 인테리어에 고요한 클래식이 들리며 격식을 갖춘 사람들이 한 작품 한 작품 보면서 감상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말인 마당이라니. 그래서 더 친근감이 갔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보는 즉시 이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깐. 인터넷으로 가는 버스편을 검색하다 아는 후배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박배덕 & 갤러리 마당을 찾았다.

 

그냥 살며시 구경하고 가라는 포근한 문구와 열린 대문이 나의 발길을 재촉했다. 과연 이 갤러리 마당은 어떤 곳일까?

 

a  박배덕 갤러리 마당 전체 풍경

박배덕 갤러리 마당 전체 풍경 ⓒ 김준영

박배덕 갤러리 마당 전체 풍경 ⓒ 김준영

후배와 함께 갤러리 마당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계신 선생님 한분이 계셨지만 들어와서 구경하라는 글 때문인지 몰라도 우선 전시관으로 가서 작품들을 구경했다.

 

문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제 1전시실에는 스티로폼과 비슷한 판에 유화를 입혀서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작품들은 대체로 농촌 풍경과 같이 우리의 소박한 풍경이 많았다. 후배는 제 2전시실로 들어가고 나는 작업하고 계신 박배덕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월간스트리트 경남 잡지에서 보고 왔습니다."

"아. 전에 찾아와서 취재한 곳인가? 집은 어디야?"

"창원에서 왔습니다. 책에 주소만 적혀있어서 대중교통을 찾기가 힘들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잡지에서 보고 너무 오고 싶었거든요."

 

가방에서 잡지를 꺼내 건내드렸다. 박배덕 선생님은 잡지를 읽고는 의자에 앉아서 말씀을 하셨다.

 

"얼마 전에는 부산 MBC에서도 촬영하고 갔어. 여기저기서 취재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 기억을 못해."

"아, 그렇군요? 선생님. 아까 제 1전시실을 둘러보았는데? 작품 틀이 되는 액자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거 재료가 스티로폼이에요? 스티로폼처럼 보이던데?"

"아니야. 내가 여러 재료를 섞어서 만든 복합재료야. 스티로폼을 쓰면 유화에 녹아서 작품이 저렇게 안돼."

"아 그렇군요. 제가 몇몇 미술관을 가보았는데 미술이 너무 추상적이라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작품을 보니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던데, 농촌 풍경같은 소박한 풍경을 좋아하시나봐요?"

"나는 인간이 자연을 만남으로써 느끼는 감정을 내 작품에 표현하고 있어. 그래서 자네가 소박한 풍경이 많다고 표현했는지 몰라."

 

"그럼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은 무엇인가요?"

"예술가들은 작품을 대할 때 풍경을 보더라도 사진과 같이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느낌으로 재편집해서 그리는 사람들이야. 그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 예술가들이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해서 관람객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강요된 이해야. 제목 없이도 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야."

 

a  박배덕 갤러리 마당에 있는 작품

박배덕 갤러리 마당에 있는 작품 ⓒ 김준영

박배덕 갤러리 마당에 있는 작품 ⓒ 김준영

 

왠지 모를 전율이 몸을 짜릿하게 했다.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지고 빠져드는 사람들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박배덕 선생님 부인께서 커피를 가지고 오셔서 권하셨다. 그러고는 내가 가져온 책자를 물끄러미 보셨다.

 

"내 남편은예~미술밖에 못해예. 지금은 다들 하는 인터넷도 못해서 누가 와서 글 썼다고 보라고 해도 '썼구나' 하면서 듣고 흘려버리고, 오직 저렇게 작품을 만드는 데만 빠져 살지예."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토록 정열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박배덕 선생님이 존경스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여기 오게 된 이유가 떠올랐다.

 

"선생님 갤러리 뒤에 마당이라는 글자는 왜 있는 거에요?"

"저 마당이라는 글자에는 중요한 뜻이 있지. 원래 대부분 이루어지는 전시회는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들잖아. 그런데 마당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편하게 사람들이 들어와서 볼 수 있는 거지. 즉 관람객이 작품에 접근하기 쉽다는 거야. 들어오니깐 마당이 있고, 마당을 보니깐 그림이 있다. 이렇게 대중과의 소통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당에 작품들을 전시했고, 갤러리 뒤에도 마당이라는 글자를 붙인 거지."

 

과연 생각해보니 그랬다. 열린 대문으로 한발자국 들어서면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마음  편하게 작품 하나 하나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라는 게 워낙 잘 발달되어서 이렇게 나는 가만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도 저절로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예전에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빚을 내서라도 전시회를 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진 거야. 예술가도 사람이니까 시대에 적응해야지."

 

사람이라 시대에 적응한다는 말.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어린 나보다 더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야기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

 

흔쾌히 수락해주시는 박배덕 선생님. 나는 박배덕 선생님의 작업 모습과 작품, 주위환경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일은 박배덕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마음 놓고 창작할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a  박배덕 화백이 작품에 몰입하고 있다.

박배덕 화백이 작품에 몰입하고 있다. ⓒ 김준영

박배덕 화백이 작품에 몰입하고 있다. ⓒ 김준영

 

박배덕&갤러리 마당은,

 

창원시 진해 웅동 1동 소사마을(김달진문학관)동네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진해역 맞은편 부산방향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115번 승차 후 봉덕마을 하차. 그리고 김달진 생가 표지판을 따라 약 15분 정도 이동하면 만날 수 있다.

#김달진문학관 #진해여행 #박배덕갤러리마당 #박배덕 #진해갤러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5. 5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