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뻥 파업' 말고 준정치조직 돼야"

[현장 활동가 인터뷰]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등록 2010.09.17 11:25수정 2010.09.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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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영(51)은 논산공업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현대자동차에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그 시절 농촌이 다들 그랬듯이 그의 집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7만 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해 주면서 객지 생활을 처음 하는 아들을 격려했다.

 

1977년 9월부터 시작한 노동자 생활. 33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그는 두 딸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실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딸이 더 효도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운동하던 중 좌절감에 빠져 주말 농장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기도 했단다. 그래도 지금은 울산혁신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현장을 초심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87년 노동자 투쟁의 외침이 진정 무엇이었는지를 찾고 실천하는 데 그는 온 몸을 던지고 있는 듯했다.

 

a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 하부영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 하부영

- 현대자동차에서 일한 지 33년째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뭔가요?

"77년 9월에 실습생으로 왔는데, 차가 엄청 잘 팔리는 거죠. 입사하니까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을 시키는데 하루 종일 75대를 만들더라고요. 목표 달성을 하면 통닭 사주고 회식하고 성과급 같은 것도 몇 푼 쥐어주고. 해서 계속 목표가 올라가 연말 가니까 두 배인 150대로 올라가더라고요. 불과 3개월 만에."

 

- 컨베이어 시스템도 안 되었을 때인데 엄청 힘들었겠네요.

"그때는 의장만 컨베이어 라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수작업이었죠. 도어도 들고 다니고 차체 라인은 손으로 미는 거지. 저 앞에서 조장이나 반장이 깃발 들고 있으면 자기 작업 다 하고 롤러 위에 차체 올려놓고 깃발 잘 보고 호흡 맞춰서 하나, 둘 영차!해서 목표 지점에 그 차가 서게 하는 거지. 짐승처럼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79년도 10월 12일. 그 날은 잊히지도 않아. 인원을 두 배로 모집해서 2교대를 들어갔어요. 10시간씩 일을 하다가 10시간 맞교대를 뽑더라고. 너무 차가 잘 팔린 거지. 근데 그해 연말에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어요. 세계경제가 불황에 휩싸이면서 하루아침에 공장이 딱 선 거야. 불과 3개월 앞을 못보고 인원을 두 배로 뽑아놓은거지. 생산라인은 다 서고 관리자들은 전부 차 팔러 '고향 앞으로' 하고.

 

그때는 월급도 안 줘. 노조도 없었고 노사협의회도 없었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거의 전부 회사를 나갔어. 50%가 해고됐죠. 그래도 남는 사람들은 현대정공 컨테이너 만드는 곳으로 지원자 받아서 보내거나 현대중공업으로 보내거나 했죠. 그래도 남으니까 현대중공업 견학가자 해서 버스를 태워요. 반장들이 가자가자 해서 가면 사람들이 안 와. 남봉고개 넘어갈 때쯤 해서 뭘 쓰라고 해. 지금 보니까 현대중공업으로 옮긴다는 전적동의서(회사를 옮긴다는 동의서)야. 현대중공업 마당에 딱 내려서 전적동의서 쓴 사람은 내려주고 안 쓰면 쓸 때까지 버스 안에 있어야 했죠.

 

정리해고라는 거, 경기가 확 나빠질 때 자본가들이 어떻게 하는지 젊었을 때 경험을 한 거지. 얼마나 날벼락 같았던지. 갑자기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주변 형님들 집에 놀러 가면 아이 먹일 우유도 없고 쌀도 떨어져서 못 살겠다고 농촌으로 가기도 하고."

 

"노동운동 한다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시절이었죠"

 

a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 하부영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 하부영

- 노동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노조 생기기 전에는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아예 상상도 안하고 못 했죠. 난 그래도 주변이 괜찮았던 것 같아요. 입사 초기에 우리 조장이 석유화학공단에 있는 SK쪽에서 대의원 활동을 하다가 왔대요.

 

술 먹을 때나 쉴 때 모이면 '니들이 언젠가는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 저쪽은 상여금 1000% 받는데 우리는 150% 받는다. 우리는 노조가 없어서 그렇다.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내내 해 줬죠. 74년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서의 폭동사건, 76년 현대자동차노조 설립사건 등을 이야기해 줬죠. 반장들하고 현장에서 신망 받는, 다른 곳에서 노조경험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 노조를 설립하려고 했는데 정보가 새나가서 전부 납치됐어요. 사측이 이들을 서울 계동 현대사옥 옆 여관에 붙잡아 놓고 포기각서 쓰게 하고 정비나 판매 등 외곽으로 보내고.

 

노조 만들 생각은 전혀 못하고 살았는데 선배들이 그런 이야긴 많이 했지요. '젊은 니들이 해야 한다. 우리는 안 된다.' 울산은 주변에 무슨 교육을 하는 단체나 교회 같은 것도 없었어요. 그런 거 한다고 하면 한 눈에 발각되고 빨갱이로 몰리는 시절이었죠. 그러다가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동료들과 시작하게 됐죠."

 

- 87년 이후에는 계속 노동운동을 해 왔는데 가장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요?

"내가 반성문을 써 가면서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학자금과 주택 문제예요. 87년도까지 훑어 돌아가 보니 진짜 노동운동이 잘못됐더라. 그 당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했는데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림도 없었고 토론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좀 더 잘 사는 거, 물질적으로, 자본가에게 좀 더 실질적인 것을 따오는 거, 이런 거에 치중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되니까 기본급보다 각종 수당이 많게 되고 복지적인 요소가 강해진 거지.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학자금인데 지금 현대 자동차에서는 단협에 자녀 두 명까지 대학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있어요. 6년제는 12학기. 이러니 누가 자식들을 대학에 안 보내겠어? 대학 안 가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하니 공부를 잘하든 아니든 전부 다 보내는 거지.

 

며칠 전에 신문 보니까 대학생 64%가 대학 괜히 갔다고, 후회하다고 하더군요. 그냥 빨리 취업이나 할 걸 한다는 거죠. 학자금 문제도 집집마다 엄청난 문제예요. 얼마 전에 퇴직한 선배 집에 가보니 형수가 우는 거야. '나 인생 잘 못살았다, 인생 지옥이다'하더라고요. 퇴직하고 자식들 대학 보내고 부모로서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사는 게 인생 지옥이래. 무슨 얘기인가 하니 학자금 주니까 그거 아까워서 타먹으려고 자식이 실력도 안 되는데 대학에 보냈을 거고, 자식은 대학 나와서 취업도 안 되고 비정규직은 또 힘들어서 하기 싫어하는거지. 나이 먹으니까 결혼시키고 손자도 낳았는데 아들도 며느리도 실업자고 고부갈등은 크고, 그러다가 며느리가 애 놓고 나가버려서 손자까지 떠맡아버리고…. 한두 집안이 그러는 게 아니더라고요.

 

주택 문제만 해도 그래요. 주택정책을 처음에 올바르게 세워서 공단을 지으면 주택도 짓고 문화시설도 지었어야 했어. 초기 전노협 시기에 '내 집 사야 한다'가 아니라 이런 개념으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노조가 그런 방향으로만 잡아서 투쟁해 공공주택이 30~40%만 됐어도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은 안 됐을 거예요.

 

주택문제로 건설업자 배불려줬고 자가용은 자본가 배불려 준 거고. 출퇴근 거리가 넓어지니까 부동산 투기지역만 넓혀준 거 아닌가. 우리 회사 조합원들 조사해보니 76%가 빚쟁이야. 대기업 다니니 대출액수 많으니까 최대한 대출 받아서 주택규모 늘리고 주식투기하고. 그러다 크게 당하기도하고. 그러는 중에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할 수 있게 된 거지.

 

주식시장 활성화, 벤처 열풍, 국민연금 주식 시장 투자 등 이런 큰 그림 안에서 노동자들이 당한 것 같아요. 잔업 특근이 많고 수입이 괜찮으니 미래에 대한 수입이 보장됐죠. 그러니 놀음하고 돈도 흥청망청 썼죠. 그렇게 돈을 써도 또 벌 수 있다 하니까 과도하게 돈을 쓰는 거야. 그러다가 빚쟁이가 된 거야.

 

왜 이렇게 됐는지 금융전문가들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많이 벌면 많이 쓰는 게 자본주의라 하더라고. 미래 수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각자가 이만큼 대출을 해도 갚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미래 예측을 하기 때문에, 담보액도 높으니 대출액도 높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빚 많은 것은 자본주의 원리라는 거지. 빚도 자산에 들어가잖아요.

 

노조가 아까 얘기한대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요구였는가에 대해서만 깨달았다면 세상을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노동운동이 진짜 자본에 부역하고 협조하는 일만 했다는 반성을 정말 깊게 하고 있어요."

 

"근골격계 산재 환자가 많을 때는 2500명까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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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부영

. ⓒ 하부영

- 이번에 대법원에서 사내하청 2년 이상은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는데 노조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판결 이후에 노조 성명서를 보면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회사에 요구하고 있어요. 물론 그건 맞아요. 하지만 반쪽이에요. 대법원 판결은 이들이 정규직이라고 판결한 거예요. 그러니 노조는 즉시 이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 할 일을 안 하면서 회사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밑으로 적당히 물타기하겠다는 집행부의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지금까지 금속의 1단사 1노조를 실천하면서 많은 내부 분란이 있었고 폭력사태까지 가지 않았나요? 이제 그들을 정규직 조합원으로 선언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규약을 만들어야 해요. 예전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이렇게 가입했는데 이번에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이렇게 바뀐 거다는 공고를 붙여놓으면 그러면 정규직 조합원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가 우려하는 반대와 반발, 이간질을 한방에 막을 수 있어요. 그러면 전원 가입할 거 아닌가요."

 

- 현대 자동차에서 비정규직은 언제부터 늘기 시작했나요?

"원래 비정규직은 주변 작업만 했고 직접 생산 라인에 없었어요. 그런데 직접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간부가 노조로 올라가게 되면서 비정규직으로 메우고 대의원이 빠져 나가면 또 비정규직이 들어오고. 인원 보충을 정규직 증원을 통해 해야 했는데 너무 마찰이 심할 것 같으니까 노조가 동의한 거죠.

 

자동차 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좀 차이가 있어요. 5년마다 차종을 교체해요. 라인 시스템 자체를 바꿔요. 그러면 신차 초기에는 잘 팔리겠지만 나중에는 덜 팔리죠. 수출도 줄고 차도 안 팔리면 또 일거리가 줄어들죠. 신차공장은 일거리가 많은데 인원이 없어서 못 팔고, 이게 항상 존재하는 현상이에요. 그럴 때 노동 유연성의 문제가 발생하죠.

 

또 근골격계 산재 환자가 많을 때는 2500명까지 가요. 이들이 복귀했을 때 자기 자리를 찾아가지 못한다면 현장에서 난리가 나요. 그리고 평균 결근률이 7%정도인데 월차까지 생각하면 10%의 여유 인력을 정규직으로 확보해야 해요. 근데 그걸 주변 정리하던 비정규직 투입으로 편하게 해결한 거예요. 회사도 생산라인에는 정규직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비정규직을 써도 별 문제 없고 노조도 승인을 하니까 대거 늘리기 시작했죠.

 

회사는 임금이나 기타 비용이 적게 들어서 재미를 보니까 정규직 10명을 투입해야 할 공정에 정규직을 투입 않고 비정규직을 13명 주는 거예요. 3명은 필요 없는 인원이잖아요. 정규직 일거리를 3명에게 나눠주거나 그들을 정규직 일자리에 데려다놓고 3명씩 교대로 놀거나. 여기서 확 넘어갔죠. '정규직 필요 없다, 비정규직 달라'고. 2000년 연말부터 2002년 초까지. 그때 비정규직이 몇 천 명 늘어났어요."

 

- 민주노총의 체계와 역할에 대한 의견이 많은 걸로 아는데요.

"총연맹, 산별 노조, 지역 본부 등이 기능과 역할을 분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오로지 단위노조 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직 체계가 똑같아요. 총연맹이나 당이나. 조직명칭도 거의 같잖아요? 역할과 사업의 비중이 다른데도….

 

그런데 예전 단위노조 운영방식처럼 파업지침 때려서 파업 되나? 바로 밑 산별노조도 관장을 못하면서 무슨 파업을 한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뻥 파업'이라는 말을 썼다가 지금까지 욕먹고 있죠. 그 전부터 문제제기 했어요. 기능과 역할을 분리시키자고. 파업 결정을 산별이 하는 거다. 산별이 자기 조직을 책임지는 것이지. 민주노총은 그야말로 상급부대로서 정치투쟁을 중심으로 사업과 내용을 재편해야 해요. 준정당조직화, 준정치조직화 하는 것으로.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정치투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민주노총이 정치투쟁을 주로 하도록 그 역할과 기능을 새롭게 정립시키고, 투쟁대오를 끌고 와서 결합하는 것은 산별이 하는 거예요. 민주노총에서는 투쟁일정 방침을 세워 산별에 요구하고…. 80만 총파업이 아니고, 요번 투쟁에는 금속, 보건, OO연맹에서 총 40만 명이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거면 되는 거지.

 

파업할 데도 없는데 왜 파업을 결정하나? 더 기가 막힌 경험이 있어요.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할 때 서울 와서 회의를 해 보면 날마다 파업하자는 의견이 나와요. 파업하자고 하면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과 보건의료노조 홍명옥 위원장은 머리 숙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신나서 파업하자고 하죠. 또 전교조하고 공무원노조가 파업하자고 해요. 파업권도 없는 사람들이 왜 파업을 주장하느냐 말이지. 책임도 못 지면서…. 민주노총 가보니까 그런 분위기더라니까.

 

당시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의 파업하자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어요. 파업결정이 났어. 찬반투표를 했어. 근데 그 이후로는 회의에 안 와. 나중에 보니까 거기는 찬반 투표도 안 되더라. 야, 이건 거대한 사기 집단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007년이 됐는데 똑같은 논의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죠. 총파업 거창하게 하지 말고 80만 명이 10분만 합시다. 다들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러면 파업할 수 있는 사람은 파업하고 파업 안하는 사람은 1인당 5천 원씩 벌금내자고 했어요.

 

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때 파업 못하는 사업장들은 미안하다고 물이라도 보내고, 퇴근하고 집회 와서 연대 발언하고 농성장 청소라도 하고 오뎅탕이라도 끓이고 그랬단 말이죠.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벌금 내자니까 결사반대 하는 거야. 파업 못하는 쪽에서. 그래서 포기했지.

 

총연맹은 정부와, 지역본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섭하고 투쟁해야죠. 지역은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진보정치세력과 함께 하면 지역별 노조가 할 수 있는 사업이 무궁무진하게 많죠.

실제 산별운동하자고 하는데, 저는 미루자고 주장했거든요. 유럽이 산별노조로 성공한 것과 우리는 다르다. 경제구조가 우리는 재벌 중심이잖아요.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산별운동이 망했단 말이죠. 전 만날 유럽 예만 말하는 사람들에게 '종유럽주의' 아니냐고 말하고 싶어요.

 

차라리 산별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방점을 찍어야 해요. 노조는 지역노조를 강화시키는 일반연대노조 이런 쪽으로 가야한다는 거죠. 산별노조가 아닌 것을 산별노조라고 하니까 문제라고 얘기하거든요. 지역지부가 원칙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지역지부 밑에 기업별 지회가 있어요. 기업별 지회가 딱 버티고 있는데 무슨 산별노조냐, 이게. 그러니까 산별노조가 아닌데 산별노조라고 하고, 산별노조처럼 운영하려고 하니까 그 부조화가 이뤄지는 거 아니냐는 거죠.

 

우리 문제점을 해결하고 공장 담벼락을 넘을 수 있는 지역사업이나 내용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짜놓고 불러내든지. 그 다음 것은 없고 오로지 기업지부나 기업노조에서 기업지회로 바꾸면 산별노조인 것처럼 하고 있단 말이죠."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대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a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 하부영

하부영 울산혁신네트워크 대표 ⓒ 하부영

 

- 지역노조, 공단노조 등을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요.

"근로자 복지기본법에 보면 '근로자들의 주거안정에 관한 정책을 지방정부의 수장이 하도록'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지역 본부가 공단노조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조직해 보자는 거죠. 공단에서 기업별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바로 해고이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노조가 안 되면 공단노사협의회부터 만들어서 탁아소 문제, 주택 문제, 주차 문제 등을 해결해 보자는 거죠. 2개 이상의 기업이 연합해서 만들면 지자체에서 지원하게 되어 있거든요. 작년에 울산은 이 예산을 안 써서 35억이나 반납했어요. 공단 노동자들이 임금도 많지 않은데 교통편이 불편하니까 자가용 타고 다녀요. 공동주택, 공동문화시설, 공동식당 등 할 일이 엄청 많죠. 이런 과정에서 금속 지역지회가 만들어지는 거죠."

 

-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은 듯한데요.

"저는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대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08년의 민주노동당 내부 분열 갈등은 진보의 가치가 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요. 진보의 최고 가치는 노동계급이 아닙니까? 가장 다수인 노동자와 가족 중심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죠. 가장 다수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나는 해석해요.

 

가치충돌이 일어났을 때 사업이건 예산이건 노동의 가치를 최고로 뒀을 때 진보의 가치가 바로 잡힌다고 봐요. 생태·환경·여성은 2차·3차로 우선순위가 정립될 거예요. 그게 혼재되어 있다 보니 실제로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비례의원 문제에서도 왜 1번이 여성이어야 하는지, 왜 4년 임기를 다 채우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동의하기도 어렵고요. 여러 사람이 의정활동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투쟁으로 구속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정파 문제 등 할 이야긴 정말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지난달 12일 울산터미널 부근 식당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필자의 상경 시간과 현장을 오래 비울 수 없는 하부영씨의 사정상 3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아마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 더 논쟁적인 인터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민주노총당' 문제, '아직까지는 금속노조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등 도발적인 문제 제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독립적인 재정구조를 가져야 한다거나 지역 생활공동체에 대한 문제 제기, 비정규직 해법에 대한 명확한 의견 등 실제적인 지역운동의 상을 그리고 있어 공감이 많이 갔다.

 

진보적 의제에 대한 남성 대기업 노동자 특유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내가 본 활동가들 중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춘자 기자는 <노동세상> 발행인입니다. 노동세상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2010.09.17 11:25ⓒ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춘자 기자는 <노동세상> 발행인입니다. 노동세상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하부영 #현장인터뷰 #이춘자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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