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세우는 작업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음료수를 들고온 푼수 아내가 창틀 사이에서 기분좋게 폼을 잡고 있다. "인효 엄마는 빠지라니께..." "그래? 나를 찍겠다고 하는 줄 알았지."
송성영
"혼자서 재미있게 잘 살았네요."언젠가 어떤 진보 단체의 모임에서 자기 소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동안 우리 네 식구의 적게 벌어 잘 먹고 잘 싸워가며 잘 살아 온 얘기를 늘어놓았더니 누군가 내게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등지고 혼자서만 잘 살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가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당한 말씀이었습니다. 맞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와 접근 방법이 달랐습니다. 어디서건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뱃속 편하게 땅을 일구며 재미있게 살다보면 저절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과 함께 2년 가까이 아파트 생활을 했지만 찾아오는 손님들은 불평불만 가득한 이웃집 아줌마들과 돈 갚으라고 독촉하는 은행이며 세금 고지서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누군가와 생명 평화를 논의할 짬도 없었습니다.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돈벌이에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골 생활을 하면서 양심 바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그들과 함께 시민사회 활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부조리한 세상에 관심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터전, 고흥에서도 그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전화선조차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살아간다고 결코 도피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사람들 속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