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비!"하고 외치며 웃는 딸아이

[그림책이 좋다 86] 심조원·김시영, <쏙쏙 봄이 와요>

등록 2010.09.17 11:14수정 2010.09.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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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쏙쏙 봄이 와요 (심조원 글,김시영 그림,호박꽃,2010.3.16./8500원)

 

a  겉그림

겉그림 ⓒ 호박꽃

겉그림 ⓒ 호박꽃

인천에서 살던 때, 동네 골목 마실을 하노라면 으레 나비를 만났습니다. 동네 골목 곳곳에는 크고작은 꽃그릇에 갖가지 풀과 꽃과 나무가 자랐으며, 골목 골골샅샅에는 크고작은 텃밭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와 흙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비가 날고 벌이 윙윙거립니다. 그렇지만 모든 골목동네에서 나비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다. 퍽 많은 골목사람이 당신 살림집 둘레에 꽃잔치를 벌여 놓고 있을 때에 비로소 나비를 만납니다.

 

산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요즈음, 집에 들어온 나비를 내보내느라 날마다 바쁩니다. 며칠 앞서는 사마귀가 '뜯어진 모기장 틈바구니'로 들어왔습니다. 귀뚜라미나 방아깨비나 쇠파리까지 우리 살림집으로 자꾸자꾸 들어옵니다. 미처 모기장을 달지 못한 창문으로 들어오고, 밥을 하며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옵니다.

 

아이가 <쏙쏙 봄이 와요>라는 그림책을 집어듭니다. 인천 골목집에 깃들던 때에는 <까먹자 빠작>이라든지 <옹기종기 냠냠>을 퍽 자주 집어들며 엄마나 아빠보고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어 달라 했는데, 두 돌을 지난 아이는 시골집에서 거의 <쏙쏙 봄이 와요>만 집어들며 혼자서 펼쳐 봅니다. 그러고는 나비가 나올 때마다 책을 한손으로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나비를 가리키며, "아빠, 나비!" 또는 "엄마, 나비!" 하고 외칩니다. 개미는 '기미'라 말하고, 콩은 '꽁'이라 말합니다. 바퀴벌레를 보고는 아직 '파리'라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 사람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기 때문에 아이가 더는 <옹기종기 냠냠>을 안 좋아한다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는 떡볶이나 튀김이나 만두를 곧잘 사 먹을 수 있는 한편, 한 주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사 먹었기에 더 낯익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만. 시골로 살림집을 옮긴 뒤로는 두 달 남짓에 걸쳐 꼭 두 번만 떡볶이와 튀김을 사 왔거든요. 시골집에서는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사 와야 하니 힘들기도 하지만, 굳이 군것질거리를 사 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꼭 그러하지는 않으나, 도시에서 마시는 물과 바람하고 시골에서 마시는 물과 바람이 다르기에 따로 주전부리가 없어도 넉넉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는 아무래도 <옹기종기 냠냠> 같은 책이 재미나다고 여길 만합니다. <쏙쏙 봄이 와요>에서도 군데군데 자연 내음이 깃들어 있습니다만(더구나 이 그림책은 그림결이 몹시 예쁘며 곱습니다. 티가 나도록 잘못 그렸다든지 엉뚱하게 그린 그림 또한 없습니다), 큰 틀에서는 도시에서 마주하는 아주 자그마한 자연입니다. 시멘트와 쇠붙이에 둘러싸이거나 가로막혀 숨이 가쁜 자연이에요. 자칫 자연을 아예 잊거나 모를까 걱정스러운 도시 살림이기에, 이런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 나라 어버이들이 아이들한테 자연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쏙쏙 봄이 와요> 같은 그림책을 그렸다 할 텐데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 도시 터전에서는 이만 한 자연조차 쉽사리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잘 헤아려 보셔요. 도시에서 학교나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이나 자가용을 타고 있을 때에 나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 나비를 생각하기나 하나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는 보거나 생각하겠으나, 나비나 벌이나 잠자리나 쓰르라미를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그나마, 도시 길거리에 심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기는 하지요. 그런데 이 매미소리마저 자동차 소리에 파묻힙니다. 가게마다 크게 틀어 놓는 노래소리에 스러집니다.

 

시골집에 있는 동안 따로 노래를 틀어서 들을 일이 없습니다. 밥을 하는 동안에도 집구석 어디엔가 들어와 있는 귀뚜라미가 노래를 하지만, 산속 수풀 어딘가에서 크고작은 새가 우짖습니다. 집 둘레 텃밭과 논밭에서 온갖 풀벌레가 지저귑니다. 바람소리를 듣고 빗소리를 듣습니다. 맑은 날에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깊은 밤에는 까만 하늘에 매달린 별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듯합니다. 보름달빛이 환한 밤에는 보름달이 속삭인다는 느낌이고, 바람에 나뭇잎 부딪는 소리라든지 빗물이 나뭇잎에 튕기는 소리라든지 닭이 똥을 누는 소리라든지 처마에서 빗물이 마당으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라든지, 모든 소리가 노래결과 매한가지입니다.

 

가끔 도시로 볼일을 보러 가서 하루밤을 묵을 때에는 참 후덥지근합니다. 선풍기를 안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여느 도시사람이라면 에어컨을 찾겠지만요. 우리는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선풍기를 들이지 않았으니, 시골에서는 더더욱 선풍기를 들일 까닭이 없습니다. 날 그대로 날씨를 느낍니다. 달력이 아닌 낮밤 날씨를 살갗으로 느끼며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헤아립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날씨와 철을 받아들입니다. 우리 아이 어머니와 저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 또한 차츰차츰 몸으로 자연과 삶터를 맞아들입니다.

 

아이가 <쏙쏙 봄이 와요>에서 나비만 찾는 모습이 알쏭달쏭하다가도, 아이가 이 그림책을 펼칠 때에 아이 삶터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란 오직 나비 하나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 세 사람은 시골집에서 감자를 심고 캔다든지 고구마를 심고 캔다든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고작 두어 달째 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한 해 두 해 살림을 이어가는 동안 감자를 심어 캐고, 고구마를 심어서 캐노라면 <쏙쏙 봄이 와요>를 들출 때에 "아빠, 감자!"라든지 "엄마, 고구마!" 하고 외치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아빠, 감자!" 하고 외칠 무렵이면, 이제 우리 아이는 <쏙쏙 봄이 와요>는 이웃집 어린 동생한테 물려주고 다른 그림책을 들춰볼 나이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2010.09.17 11:14ⓒ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쏙쏙 봄이 와요 (보드북) - 봄 편

심조원 지음, 김시영 그림,
호박꽃, 2010


#그림책 #그림읽기 #책읽기 #삶읽기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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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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