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

경주시 내남면 ㅇ축사 돼지 수백마리 불법 폐사... 주민들 "식수는 어쩌라고"

등록 2010.09.18 13:22수정 2010.09.1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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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1리 청두마을 당상나무 아래 할머니 뒤편으로 안심농장이 보인다. 주변 마을을 통털어 가장 높은 곳에 양돈축사가 위치하다보니 축산오폐수 등으로 인근 마을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었다. ⓒ 이상홍



16일 오후, 마을 주민의 제보를 받고 찾아 나선 길. 자동차는 산골짜기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힘겹게 달려야만 했다. 어렵사리 도착한 경주시 내남면 안심 1리 산골마을. 눈으로만 둘러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산골마을이었다. 선경을 증명이라도 하듯 외지인이 노후를 보내기 위해 풍채 좋게 지은 기와집도 있고, 목공예를 하는 예술가의 집도 있었다.

그러나 코를 열고 산 속 맑은 공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환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깊은 산골 마을은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마을이 왜 끔찍한 악취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풍광 좋은 시골 마을에서 코를 막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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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현장 안심농장(양돈축사) 뒤편의 황무지에 수년간 수백마리의 돼지가 불법 매립되었고 포크레인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고인 물이 노랗게 썩어 있다. 안심농장 관계자는 썩은 물이 아니라 이곳에 메일밭을 만들기 위해 액체비료를 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상홍


마을에서 100여 미터를 더 올라가니 양돈 축사가 나왔다. '안심농장'이란 이름의 양돈축사에는 3000여 마리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축사의 위생관리가 철저하지 못하고 축산폐수가 그냥 개울로 방류되다 보니 온 마을이 악취로 고생하는 것이다. 

100여 세대의 산골 주민들이 안심농장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지는 10여 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동안 주민들은 행정당국에 수차례 불편을 호소했으나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기자가 주민의 제보를 받고 이곳을 찾은 것은 악취 때문은 아니었다. 안심농장에서 그동안 폐사한 돼지를 축사 뒤편 황무지에 불법 매립한 것이 주민들에 의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미 9월 13일 포항MBC에 의해 한차례 보도된 바가 있다. 그러나 방송보도에도 불구하고 행정당국의 믿을 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서 주민들이 또다시 제보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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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사체 불법 매립지를 포크레인으로 발굴하자 부패한 고깃덩어리가 나왔다. 썩은 토양 사이로 비치는 하얀 덩어리들이 완전히 썩지 않은 돼지 사체다. ⓒ 이상홍



폐사한 돼지를 불법 매립한 현장에 도착하자 온 몸을 파고드는 역겨운 냄새 때문에 가슴이 갑갑했다. 현장을 취재하는 내내 숨쉬기가 곤란했다. 포클레인 한 대가 열심히 땅을 파내고 있었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하기 이틀 전에는 형체가 보전된 돼지 사체가 100여두 이상 나왔다고 했다. 이날 오후,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매립한 지 오래된 곳을 발굴하고 있어서 온전한 모습의 돼지는 볼 수 없었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헤칠 때마다 썩은 토양 사이사이로 돼지의 잔해들로 보이는 부패한 고깃덩어리가 나왔다.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있는 오염된 토양의 두께를 측정해 보니 150cm가 넘었다.

폐사한 돼지 1000여평에 불법 매립 "불법 알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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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토양층 매립된 돼지 잔해가 출토되는 토양층이 최소 150cm가 넘었다. ⓒ 이상홍


폐사한 돼지를 불법 매립한 땅은 1000여 평이 넘어 보였다. 발굴 현장에는 주민들이 감시를 하고 있었고, 안심농장 관계자도 나와 있었다. 농장 경영주의 동생이라는 김씨와 간단히 인터뷰를 했다. 김씨에게 매립 규모, 매립 경위 등을 질문했다. 김씨의 답변은 이러했다.

"2007년 이전에는 관련 법이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매립을 했고, 2007년 이후에는 매립이 불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폐사한 돼지는 소각장에서 소각을 해야 하는데 경주에는 소각장이 없다. 2009년에 농장에 소각시설을 설치했으나 돼지 1마리 소각하는데 6시간이 걸렸다. 부득이하게 불법매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200여 마리 정도 이곳에 매립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발굴과정을 쭉 지켜 본 주민들은 200여 마리가 훨씬 넘는다고 주장했다. 안심농장 관계자는 불법 매립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법은 매립을 금지하고 있지만 행정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법위반을 확인한 이상 사법처리는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실제 현재 농장주는 폐기물관리법 위반,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등 5건으로 고발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이 염려하는 것은 농장주의 사법처리 여부가 아니었다. 폐사한 돼지의 대규모 매립으로 인한 토양오염 및 식수원인 지하수 오염 때문에 근심이 많았다.

지하수 취수원은 불법 매립지에서 직선거리로 200m 정도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 지하수를 100여 세대가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민들에 의하면 지하수를 양동이에 받아 놓고 시간이 좀 흐르면 물색이 옅은 노란색을 띤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오염에는 무관심한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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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 근심에 싸인체 발굴현장을 감시하고 있다. ⓒ 이상홍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행정당국이 환경오염과 주민들의 건강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성토가 많았다.

주민 정씨에 따르면 발굴 첫날 시청 환경과 직원들이 겉흙과 주변의 물을 채취했을 뿐 그 후로 청소과 직원들이 현장만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50cm 이상 깊이까지 매립되었다면 토양오염 조사도 더욱 면밀해야 되고 주민들의 식수원인 지하수 수질조사를 꼼꼼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행정당국에서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조치들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곳 주민들이 기자를 두메산골까지 부른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다. 법을 어긴 농장주의 사법처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오염된 환경을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자가 현장을 다녀간 다음날(17일) 마을 주민들은 경주시청 환경과에 또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그 결과 시청에서 지하수 수질조사, 안심지(인근 저수지) 수질조사, 악취문제 재조사를 실시하기로 환경과와 합의를 했고 조사 작업에 주민들이 입회하기로 했다.

안심1리 주민들은 긴긴 세월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았다. 경주시는 더 늦기 전에 주민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야 한다. 취재를 마치고 마을을 나설 때 "제발 냄새는 안 나게 해 주소" 라며 당부를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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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인터뷰 폐사된 돼지를 불법 매립한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이상홍


#안심농장 #돼지 불법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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