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말했다 "인생 너무 힘들어요"

오징어 달구지와 살인사건으로 기억되는 나의 어린시절

등록 2010.09.27 18:57수정 2010.09.2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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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너무 피곤해 보이네~, 학원 끝나면 집에가서 좀 쉬어야겠다. 잠도 좀 자고 기운 좀 차려서 내일 보자."
"선생님~ 학원 끝나고 할 게 많은데 어떻게 쉬어요, 이제 수학학원 가야 돼요. 학원숙제도 아직 안 했는데... 집에가자마자 숙제부터 해야 한다구요."


"그래? 도대체 학원을 몇 개나 다니고 있는데 그래? 오늘은 좀 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쉬다니요, 겨우 이런 걸로 쉬면 엄마한테 혼나요. 이 학원 끝나면 수학학원 갔다가 다시 공부방 가야 돼요. 집에 가면 8시쯤 될 걸요?"

"정말? 무슨 학원을 그리 많이 다녀?"

초딩이 말했다 "인생이 너무 힘들어요"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된 꼬맹이가 하루 종일 학원에서 씨름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안쓰럽다. 그 사이에 다른 아이가 껴들어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요즘에 그정도는 기본이에요. 전 지금 영어, 수학, 피아노, 과학 이렇게 총 네개 다녀요. 원래는 독서학원도 다녔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몇 달간 쉬는 중이에요. 방학 되면 독서학원도 다녀야 돼요."


한숨을 쉬며 말하는 아이의 얼굴은 벌써 인생을 다 산 듯한 표정이다. 당연하다는 아이들의 표정은 이렇게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이들인데, 시무룩한 아이들의 표정이 아무리 안쓰러워 보인다 할지라도 아이들이 수업중간 중간 딴짓을 못하도록 하나하나 감독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선생님~ 인생이 너무 힘들어요.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의 입속에서 터져나온 말이다.

"뭐라구?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인생이 힘들데? 앞으로 힘들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이정도로 살고 싶지 않다면 쓰겠어? 기운 내고 빨리 끝내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이런 아이들이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거렸다.

오징어 달구지에 빠져 지내던 어린 시절

아이들을 감독하며 책상에 앉아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불과 십여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워낙 시골마을이었던지라 학원을 찾기도 힘들었고, 놀기 좋아했던 초등학교 시절 공부는 안중에도 없었다. 공부는 당연히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친구들을 한데 모아 놀기에 바빴다.

그 당시 한참 유행했던 게임은 '오징어 달구지'였다. 땅따먹기, 멀리뛰기 등은 이미 한물간 게임이었고, 아이들 사이에서 오징어 달구지는 최신식 게임으로 통했다. 게임방식은 땅에 아주 커다란 오징어 그림을 그려놓고 그 사이에 번호를 새겨놓아 번호 위로 돌을 던져 뛰는 게임이었다. 하루 종일 그 게임에 빠져 있다 보면 시멘트 바닥에 무릎팍이 내동댕이 쳐지는 것 또한 일상다반사였다.

어떤 날은 새로 산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함께 오징어 달구지 게임을 하러 갔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발을 헛딛는 순간 무릎이 땅을 찧었다. 조마조마 하며 무릎에 내려다본 순간 찢어져 버린 청바지 올과 그 사이에 찢긴 살갗이 보였다.

찢긴 살갗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보다 더 무서웠던 건 새 청바지를 이제 다시는 못 입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 사이로 옷을 사오신 어머니의 매서운 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걱정을 해주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에 들어가  청바지를 숨길 알맞은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뜨끈한 아랫목은 항상 할아버지 차지였기에 그 이불 밑에 숨겨놓으면 너무나도 감쪽같을 듯했다.

그 아랫목에 청바지를 고이 모셔두고 며칠간은 아무일 없는 듯 지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조용히 엄마가 나를 부르시더니 아랫목에서 며칠은 숙성된 듯한 노린내나는 청바지를 꺼내셨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엄마한테 들을 핀잔을 걱정했다. 엄마는 무릎을 훑어 보시더니 무릎에 빨간약을 발라 주시며 청바지보다 내 상처를 더 걱정하셨다. 그렇게 청바지가 찢어진 후에도 한창 오징어 달구지는 인기였다. 하지만 486컴퓨터가 들어오고, 아이들이 '보석' 게임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마을앞 회관에서 아이들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 동네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어요

초등학교 시절 얽힌 추억얘기는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였다. 매서운 칼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초겨울이 올 때 쯤이면 아이들과 함께 뒷바닷가로 장작불을 피워 놓고는 고구마를 구워먹곤 했었다. 석화가 나오는 시기에는, 굴도 몇 개 던져 놓고 지글지글 익기만을 기다렸다. 이때는 아이들과 마을의 이런저런 소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낙이었고, 쏠쏠한 재미였다. 하루는 어떤 아이가 두려운 눈빛으로 아이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 있잖아, 그 당산나무 밑에 있는 그 집, 할아버지 알지? 그 있잖아, 만날 도끼 들고 산에가는 아저씨 말이야."
"응, 그 아저씨 알지, 근데 그 아저씨가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게 말이야... 저번에 비오는 날에 저 뒷산에서 우연히 그 할아버지를 봤는데 아주 큰 나무를 도끼로 찧고 있더라구..."
"응? 근데? 그게 뭐가 어때서?"

"뭔가 이상하잖아. 그 할아버지, 비도 오는데 왜 산에 올라갔을까? 멀쩡한 나무는 왜 잘랐을까? 내 생각엔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 같애. 그러니까 산에서 그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땅에 묻은 마음에 그 위로 나무를 자른 거지."
"사람을 죽였다구? 세상에 어떡하지? 그냥 두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살인사건을 알고도 그냥 둘 순 없어. 안되겠다, 우리 빨리 신고하자."

"어떻게 신고를 해? 그 아저씨가 우리가 신고한 거 알게 되면? 우리가 신고한다고 어른들이 우리 말을 믿을까?"
"그래도 우리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데 침묵하면 안 되지. 빨리 신고하자! 어쩐지, 그 할아버지 볼 때 왠지 심상치가 않더라구, 더 큰 일 일어나기 전에 빨리 서둘러."

아이들은 살인사건에 대한 정황을 대충 맞춘 후에 한데 모여  공중전화 부스를 향해 달려갔다.

"저기요? 거기 112죠? 여기 복길리인데요 우리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난것 같아요. 비 오는 날 산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무를 잘랐는데, 그 할아버지가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학생 몇 살이야? 확실한 거 아니지? 얼른 집에가서 쉬어. 어른들 걱정하겠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고 다급한 마음에 119를 누르고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뚜뚜뚜...."
"거봐, 아무도 우리 말을 믿지 않잖아, 그냥 내버려 두자. 괜히 장난전화한 것 같네..."
"장난전화는 무슨, 어떻게 살인사건을 알았는데 그냥 넘어가, 이런건 짚고 넘어가야 돼! 아,~ 맞다 간첩신고가 뭐지? 121 맞나? 그리로 전화해 보자!"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긴급통화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아무도 우리말을 믿지 않는다고 우는 소리로 이야기했다. 몇 초 후 우리마을로 오겠다는 경찰 아저씨의 확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몇십 분후에 조용한 우리 마을에 경찰차가 왔다. 아이들 무리를 보고는 아저씨는 정확히 사건이 벌어진 산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는 아이들과 함께 그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냉엄한 눈초리로 경찰관 아저씨가 아이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여기인 것도 같고, 저기인 것도 같고.. 그날 비가 와서... 확실이 어딘지는 잘..."

처음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었다. 잘려진 나무들이 있긴 했지만 땅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경찰 아저씨 둘은 그 장소를 둘러보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파악하고는 산을 내려오셨다.

잔뜩 꾸지람을 걱정하며 아저씨들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지만 아저씨들은 아무 말도 없이 차에 타시고 유유히 마을을 떠나셨다.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괜히 허튼짓을 한 것은 아닌지 후회를 했고, 일제히 최초의 증언을 했던 아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깔깔 웃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살인사건은 무슨~! 괜한 순경 아저씨들 고생만 시켰네..."

하지만, 한동안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오르내리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몇 가지 초등학교 시절 벌어졌던 에피소드를 기억해 내고는 괜시리 민망해 얼굴빛이 달아올랐다. 그땐 그랬다. 바보 같기만 한 어린시절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래 아이들만의 순수함이 있었고, 재미가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일들을 생각하면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새겨지게 된다. 하루종일 온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아이들의 그 빛나던 눈동자는 아직도 나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하지만, 하루에 4~5개씩 학원을 다니는 요즘 아이들의 눈에는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있는 추억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고,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속에 멍한 눈동자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표정 속에는 왠지 모를 부담감이 있었고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중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 학원, 집을 하루종일 반복하며 왔다갔다할 때, 그 마음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새겨지고 있을까? 왜 자신이 학원에 다녀야 하는지, 이것저것 많은 공부들을 해야하는 건지 영문도 모른 채 부모님의 손에 이끌리어온 아이들이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이 시절을 추억했을 때 이 아이들에게 남겨진 기억이라고는 버겁기만한 시험과 공부에 대한 압박감뿐일 것만 같아 이에 대한 씁쓸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건 이들의 추억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삶의 목적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자문할 시간도 이들에게 허락하지 않은 채 단순히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나라를 어떻게 일구어 나갈른지도 막막할 노릇이다.

이 세상을 가슴으로 사랑하는 법을 모른채 계산과 지식으로 자신들을 채워 나가는, 끊임없는 경쟁 속에 이기는 자만이 승리자로 인식하며 단순히 머리만 큰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멍한 아이들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에게 빼앗아 버린 추억에 대한 미안함과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물려준 이 시대의 자화상에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허락되어야 할 것은 성냥갑 같은 교실속에 빼곡히 둘러앉아 공급하는 지식이 아니라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그러한 자유마저도 컴퓨터에 앞에 앉아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잃어가는 그 아이들의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이 아이들이 배울 것이 영어, 수학등의 지식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가슴 찡한 추억이라면 좋으련만..."
#영어 #학원 #추억 #아이들 #오징어달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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