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노래 부르기

등록 2010.09.30 14:41수정 2010.09.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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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녁 TV 앞에서 나는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간만에 행복했다. 손뼉을 쳐가며 깔깔거렸다가 뭉클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야말로 벅찬 감정에 가슴이 흠뻑 젖어 마구 출렁거렸다. 한바탕의 출렁거림이 진정되고 난 후에 나는 가슴 속에 말랐던 모세혈관이 다시 새록새록 살아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두를 너무 감상적으로 꺼냈나? <남자의 자격> 팀의 합창대회 출전 이야기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지난 학창 시절 합창대회 장면을 떠올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지만, 이제 더 이상은 보기 힘든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 풍경을.

 

필자의 기억 속 가장 잊을 수 없었던 합창대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늘 전교 꼴찌를 도맡아 하던 우리 반은 무서운 호랑이 수학선생님이신 담임선생님을 늘 실망시키며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합창대회 일정이 공고되었다.

 

'그래도 너희 반이 노래 실력은 좋아!'라시던 음악선생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당시 선명회합창단에서 활동하던 친구가 의욕적으로 나서서 선곡도 하고 지휘를 맡아 '우리도 뭔가 해 보자'라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쉬는 시간에도 모여서 노래 부르고, 종례 전 다함께 하던 청소시간에 마룻바닥을 닦으면서도 같이 연습을 했다.

 

하나 밖에 없던 음악실을 선점하기 위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침 일찍 등교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 남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화음을 맞추며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가고파' 가사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인터넷도 CD도 없던 그 시절, 키에 콩을 담아 까불리며 파도 소리를 만들어 테이프에 담는 극성까지 보였다. 거기다가 붉은 장미꽃까지 한 송이씩 머리에 꽂고….

 

우리의 의욕적인 연습에 음악선생님께서도 '너희가 최고다!'라고 격려해 주셨고, 대회 당일 아침 비릿한 날달걀을 눈 한 번 꾹 감고 삼켰다. 우승을 예감하며 벅찬 가슴을 안고 '함께 모여 노래 부르기'라는 현수막이 붙은 무대에 섰다. 머리에는 꽃을 꽂고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서……. 그렇게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마주 잡은 친구 손의 체온에 진정시켜가며 입을 쫙쫙 벌려 열창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외부에서 초빙된 심사위원은 우리 반이 아닌 다른 반에게 1등상을 안겨줬고, 우리는 지휘상 하나 달랑 받았다. 대회가 끝나고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심사위원을 원망하며 체육관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눈물이 마를 무렵 호랑이 담임선생님은 우리들 앞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오셨고, 그 무서운 분이 목이 멘 소리로 '사실은 우리 반이 최고였다'고 벅차게 말씀해 주셨다. 결국 우리는 눈물로 시작했다가 그 체육관 한가득 까르르 웃음소리를 울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담임선생님은 더 이상 성적으로 우리를 면박주지 않으셨고, 만년 꼴찌반 우리들은 그래도 행복했다.

 

그때 그 기억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교사가 된 뒤에도 합창대회 때가 되면  반 아이들을 독려해 열심히 노래지도를 했더랬다. 혹자는 전체주의의 흔적이라며 부정적으로 지적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른다는 게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서로 조금씩 부족하고, 다른 색깔을 지닌 아이들이 손을 마주잡고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게 감동적이었다. 각자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주며 '나'만의 노래가 아닌 '우리'의 노래를 부르는 일, 그러기 위해 많은 시간 함께 하며 아이디어를 내고 연습을 하는 과정이 따뜻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그날 <남자의 자격> 팀의 대회 출전기를 보고 내가 뭉클했던 건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멋진 화음을 만들어가던 과정도 감동적이었지만, 대회에 출전해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팀의 합창 모습을 보며 눈물짓던 그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부족한 대로 모자란 대로 모여서 한마음으로 만들어 낸 화음과 그런 타인들의 모습에 그들은 감동을 받았으리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많이 각박하다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아직 알고 있고, 다른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도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뜨거운 가슴이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치르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바쁘다. 바쁜 아이들과 함께 정신없이 수업과 방과후 수업, 보충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선생님들도 아이들 못지 않게 바쁘다.

 

거기다가 대입 수능에서 예체능 과목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수업시수도 많이 줄어 든 게 현실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추진될 집중이수제로 인해 영어, 수학, 국어 과목 등의 소위 '주요과목'만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이런 까닭인지 내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도 국영수를 제외한 과목의 경우, 선발인원이 대대적으로 줄었다.

 

우리 아이들 중에는 국영수보다는 예체능에 소질이 있고, 그런 과목이 있어 그래도 학교생활이 즐거운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으로 학교생활의 낙을 삼아야 할까? 이 아이들에게 '인생이란 원래 고해(苦海)'다라는 말로 국영수를 들이대며 끝없는 고문을 해대야 하는가. 학교수업도 모자라 방과 후에 학원수업까지 국영수 일색으로 들이밀면서 말이다.

 

수많은 '다름'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아, '나'가 아닌 '우리'의 행복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모으던 그 여유가 영영 사라진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다르게 태어났으되, '같음'을 강요받으며, 그다지 다르지 않고 비슷비슷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견제하며 결국엔 따로따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우울하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런 재미없고 삭막한 삶을 강요해야 한다는 게 정말 슬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전국완씨는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9.30 14:41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전국완씨는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합창 #학교 #교육 #학교생활 #남자의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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