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잔치 끝난 자리 빚더미만 남았네

[해외리포트] 밴쿠버시 애물단지 된 올림픽 선수촌

등록 2010.10.11 14:50수정 2010.10.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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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스포츠 잔치가 열렸던 밴쿠버시가 부동산 거품 하락으로 빚더미에 앉을 전망이다. 사진은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캐나다 밴쿠버 BC 플레이스. ⓒ 밴쿠버동계올림픽조직위


고급콘도로 개조해 건설비용 회수하려 했으나

올림픽은 틀림없는 전 세계인의 잔치이자 화합의 장이다. 약 7개월 전 김연아는 밴쿠버에서 열렸던 2010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감동하게 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분명히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로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대규모로 조성된 고가의 올릭픽 선수촌 단지가 밴쿠버시와 시민에게 막대한 빚을 떠안겨줄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캐나다의 언론과 방송은 연이어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당초 밴쿠버시는 개발사인 밀레니엄사(the Millennium Development Corp)와 헤지펀드인 포레스트사와 손잡고 5만6천㎡에 달하는 올림픽 선수촌을 건설했다. 포트리스사(Fortress)는 선수촌 건설을 위해 자금조달을 약속했으나, 2008년 경제 위기로 자금 조달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밴쿠버시에 총 12억 달러의 개발비 중 7억3천만 달러의 보증을 요구했다.

밴쿠버시와 밀레니엄사는 올림픽 이후 선수촌을 고급 콘도로 개조해 판매하여 건설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7개월이 지난 현재 257채의 콘도만이 주인을 찾은 반면, 무려 480채의 콘도가 팔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만약, 선수촌을 개조한 고급 콘도(한국식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다면, 밴쿠버시는 선수촌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부채로 떠안게 된다.

실제로 밴쿠버시는 밀레니엄사가 8월 31일까지 지불해야 하는 약 2억 달러 중 8백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받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개발 비용의 증가로 밴쿠버시는 선수촌 개발 비용을 포함하여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총 16억 달러의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3천만 달러에 달하는 토지 비용을 제외하고 밴쿠버시는 선수촌 콘도의 가격 인하를 통해 개발사에 빌려준 금액만이라도 회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공원과 연결되는 선수촌 단지의 서쪽 입구. 대부분의 콘도가 비어있다. ⓒ 김정희


뛰어난 입지에 건설된 호화 선수촌 단지


밴쿠버에서 가장 좋은 위치와 뛰어난 경치로 소문난 폴스 크리크(False Creek) 지역에 있는 선수촌 단지는 최저 60만 달러에서 최고 500만 달러에 달하는 고급스러운 콘도를 포함한다.

밀레니엄사는 7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 개발비를 모두 충당하려면 콘도당 평균 150만 달러에 판매해야 한다. 하지만, 캐나다부동산연합(CREA)이 밝힌 캐나다의 평균 주택 가격은 2010년 8월 현재 약 32만 달러선임을 고려할 때, 올림픽 선수촌의 집값은 고가이고 주인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재정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선수촌 개발 당시 약 20%에 달하는 콘도를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인 소셜-하우징(social-housing)으로 사용한다는 계획 역시 차질을 빚고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촌은 가장 높은 환경 기준을 바탕으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여 건설했기 때문에 건설비용이 비싸졌고, 이러한 건설 비용은 세계 경제침체 여파로 밴쿠버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기 전의 부동산 시장 흐름을 바탕으로 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던 지난 2002년에서 2005년 사이의 밴쿠버 부동산 시장과 현재 상황은 현저히 다르다. 밴쿠버부동산회(Vancouver Real Estate Board)에 따르면, 2010년 8월의 주택 판매량은 2008년 같은 달에 비해 약 40% 증가했지만, 작년보다는 36% 하락했다.

이는 또한 2006년과 2007년에 비해 각각 35%와 27%나 하락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촌과 관련한 밴쿠버시의 투자는 부동산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재 밴쿠버 시민은 1인당 평균 2,623달러에 달하는 빚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레거시(Legacy)'라는 주류 판매점은 문을 닫았고, 바로 옆에는 임대사무실이 있었지만 찾는 사람은 없이 사진을 찍으러 온 소수의 관광객만이 눈에 띄었다. ⓒ 김정희


"다음 선거에서 대가 치를 것"

밴쿠버 시민은 이미 교육과 의료보험 등의 예산 삭감과 동시에 새로운 세제 도입으로 세금이 오르는 등의 달갑지 않은 정책을 경험했고, 일부에서는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인 자영업자는 "다음 선거에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면서 밴쿠버 시민은 선수촌으로 인한 부채증가와 세금인상을 반갑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더 프로빈스(the Province)>와 같은 밴쿠버지역 일간지의 인터넷판 보도 기사에도 "다음 선거는 언제인가"라는 댓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올림픽이 캐나다에 빚을 남긴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76년 올림픽을 몬트리올에서 개최하기로 했을 때, 당시 시장이었던 쟌 드래피에는 올림픽의 재정적인 성공을 장담했지만, 몬트리올시는 오히려 올림픽 이후 무려 10억 달러의 재정 적자에 시달렸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국제 석유파동과 정치적인 문제로 재정 적자를 겪은 바 있다. 자신을 프레드(Fred)라고 밝힌 한 시민은, "올릭픽 드림에 눈이 멀어서 이러한 사태가 오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서 몬트리올에 이어 밴쿠버 역시 이러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했다.

예상과 달리 냉담한 구매자의 반응에 밴쿠버시는 콘도 가격 인하와 다른 인센티브 제공을 고려하고 있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the Globe and Mail)>에 따르면 현재 캐나다 부동산 시장의 위축으로 선수촌 개발 당시의 예상 판매가보다 약 20%나 하락한 제곱피트당 750-800달러가 적정가로 형성돼 있다.

이 신문은 밀레니엄사가 선수촌의 콘도를 제곱피트당 800달러에 성공적으로 판매한다고 해도 조달할 수 있는 것은 4억 달러 뿐, 여전히 3억 3천만 달러의 부채를 남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밴쿠버 시장인 그레고리 로버트슨(Gregor Robertson)은 밴쿠버시가 선수촌 개발을 위해 투자한 금액을 상환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했다.

입점을 연기하고 있는 캐나다 소매업체 '런던 드러그스(London Drugs)'. 밴쿠버 올림픽을 기리는 깃발과 매장 입구를 막고 있는 낡은 테이프가 대조를 이룬다. ⓒ 김정희


저소득층에 호화 콘도를 제공하겠다?

밴쿠버시가 선수촌 개발 당시 약속했던 저소득층을 위한 소셜-하우징 역시 올림픽이 끝난 7개월째 입주자와 운영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글로브 앤드 메일>은 아직 선정하지 못한 하우징(Social-housing) 운영사를 선정하는 동안 월 31만 달러에 달하는 임대료를 포기해야 하고, 이는 밴쿠버시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더욱 복잡한 문제는 이러한 소셜-하우징이 수익성이 분명하지 않고, 운영비 역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적절한 운영사를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란 것이다.

실제로 세 개의 비영리단체가 소셜 하우징 운영자로 신청했지만, 밴쿠버시는 이 단체들이 운영에 적합하지 않다며 거절했고, 시의회는 밴쿠버시의 재정 문제를 부각하면서 시의 결정을 비난했다. 한 때 252채의 임대 아파트를 제공하기로 했던 약속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위기에 처했으나, 현재까지 밴쿠버시는 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적절한 운영사를 선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 갈 곳이 없는 일부 저소득층 사람들은 선수촌에 입주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밴쿠버시의 결정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처지이다. 일부에서는 고가의 콘도를 소수의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지적하고 있다. 선수촌을 방문 중이라 밝힌 크리스 웨이(Chris Wei, 42)씨는 "세금과 저소득층 지원을 모두 낭비하는 것"이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계올림픽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은 과도한 부동산 가격 상승과 2008년 경제위기로 인한 급작스런 부동산 시장의 위축, 재원을 맞았던 뉴욕 헤지펀드의 투자 포기, 그리고 밴쿠버시가 위치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세제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추가 수축 등이 이러한 사태를 몰고 온 것이다.

평창은 과연 부동산 불패 이어갈 호재인가

동계올림픽 유치과정에서 이미 두 차례나 고배를 마신 바 있는 평창은 이건희 IOC 위원을 특별사면 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지원 아래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 2월에는 IOC평가위원회가 평창을 방문해 실사에 나선다는 소식도 들린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소식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계 올림픽을 세계적인 스포츠와 문화의 행사가 아닌 부동산 불패를 이어나갈 기회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 밴쿠버의 사례는 중요한 경고를 하고 있다.
#밴쿠버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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