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머리? 이름과 행동이 완전 딴판이네

[우리나라 바닷가 1만리 자전거여행 23] 함평군 돌머리해수욕장에서 신안군 지도까지

등록 2010.10.14 15:18수정 2010.10.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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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목)

지난 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다. 돌머리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어려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놀림깨나 받았을 성싶다. 웬만하면 이름을 바꿨을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걸 보면 이곳 주민들, 나름 자존심이 강해 보인다.


돌머리. 마을 서쪽에 바위가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어감이야 어찌 됐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다. 나같은 돌머리도 한 번 들으면 절대 안 잊어 버릴 것 같다. 이름에 '머리'라는 단어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지역 역시 육지에서 튀어나온 지형을 하고 있다. 끝이 뭉툭한 게 꼭 자루가 긴 망치같이 생겼다. 이 해수욕장은 이름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풀장, 아이디어 괜찮다!

바닷가로 내려서면 풀장인지 해수욕장인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다. 얼핏 봐서는 바다 같기도 한데, 바닷물은 이미 저 멀리 썩 물러나 있는 상태다. 알고 보니, 인공 해수풀장이다. 이곳의 바다는 썰물 때 바닷물이 해안에서 너무 멀리 쓸려 내려간다. 그래서 썰물 때도 계속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풀장을 만들게 되었다는 얘기다. 아이디어가 괜찮다.

서해안의 해수욕장이 대체로 썰물 때 바닷물이 너무 멀리 달아나는 경향이 있다. 해안에서 바닷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성가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자연적인 한계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해수욕장을 만든 데 좋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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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머리해수욕장. 원형 해수풀. ⓒ 성낙선


해변을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그 소나무 숲 속에, 초가지붕을 씌운 정자를 들여앉힌 것도 이색적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해 해수욕장을 멋지게 꾸미려 노력한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돌머리라는 이름과 다르게, 실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완전히 딴판이다. 돌머리라는 이름에서 오히려 한 번 결심한 일은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뚝심을 읽는다.


돌머리해수욕장을 돌아 나오면서, 마치 가슴에 바윗돌이라도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바로 코앞에 남쪽 나라 전라남도의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며,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반도와 연륙교와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들이 줄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해안선은 앞서 거쳐 온 태안반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얼마나 해매고 돌아다녀야 할지, 또 얼마나 많은 언덕을 오르내려야 할지 알 수 없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긴장이 되는 걸 억지로 무시할 수도 없다.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함평군을 지나 무안군에 들어서는 지점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한다. 마을 안길을 한참 달리다가 눈앞에 갑자기 서해안 고속도로가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내가 가야 할 길에서 1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진땀이 흐른다. 마을 안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지방도로로 올라탄다. 그 길로 무안군의 해제면으로 들어서는 길목까지 줄달음친다.

무안군은 좁은 땅에 매우 복잡한 해안선이 있는 지역이다. 서쪽 바다 위에 사방이 별 모양으로 뿔이 돋아나 있는 땅덩어리가 두 개나 튀어나와 있다. 하나는 무안군 해제면과 현경면 일부이고, 또 하나는 운남면이다. 두 지역 모두 특이하게 육지와 가느다란 끈 같은 땅줄기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 땅줄기가 아니었으면 둘 다 섬이 되었을 운명이다. 이 두 지역 모두 반도인 셈이다. 그래서 때로는 해제반도와 운남반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해안선 뿔 몇 개를 과감하게 쳐냈다

사실 반도만 돌고 나오면 그나마 조금 수월하겠다. 해제면에는 연도교로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섬이 무려 3개나 된다(사실은 4개다. 나중에 '증도'가 하나 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도, 송도(솔섬), 사옥도라는 이름의 섬으로 비록 무안군과 연결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행정상 주소지는 신안군에 속한다. 지형만 그런 게 아니라 족보까지 복잡한 셈이다. 나중에는 그 섬들에 다시 주변 섬들을 더 연결할 계획이라고 하니, 현재 이 정도에서 그친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는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거 뭘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곳의 해안선을 곧이곧대로 다 돌아보고 나오는 데 며칠이나 걸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결국 지도를 면밀히 들여다본 끝에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이는 뿔 몇 개를 과감하게 쳐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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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리 가는 길의 밭 풍경 ⓒ 성낙선


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고 먼저 찾아간 곳이 현경면 용정리다. 북쪽으로 가느다랗게 툭 튀어나온 이 땅은 그 끝에 이름이 월두, 즉 '달머리'로 풀이되는 마을을 달고 있다. 달머리라는 이름에서 무언가 시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땅이다. 해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별세계'에 와 있는 듯 조금 독특한 분위기다.

달머리라는 마을 이름을 붙인 내력을 살펴봤다. '달'은 마을 안에 있는 계수나무와 곰솔당산나무를 상징하고 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위의 섬과 바위들은 달 주변에 떠 있는 별과 같다. 달머리라는 이름에 이 세상 달과 별 같이 오래도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마을 주민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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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두, 달머리의 바닷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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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머리 바닷가에 떠 있는 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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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두. 용정포구 앞 등대. ⓒ 성낙선


달머리를 나와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도리포다. 이곳 역시 달머리와 마찬가지로 뿔이 난 지형 끝에 올라서 있다. 도리포가 있는 지역은 그 자체 반도 속의 반도라고 할 만한 땅이다.

30분 자고 일었났더니 개운하군

도리포로 들어가기 전에 무안생태갯벌센터 옆에 조성한 공원으로 들어가 바닷가 정자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잠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알레르기성 비염 약을 복용하고 있는 탓인지 요즘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있는데도 자꾸 졸음이 쏟아진다. 햇볕 따듯한 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파도가 해변을 적시듯이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정자 그늘 아래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난다. 꽤 오래 잠들었던 것 같은데 깨어 보니 딱 30분이다. 숙면을 취했는지 전보다 상당히 개운해진 느낌이다.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난다. 도리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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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체험센터 공원. 정자 앞 바다. ⓒ 성낙선


도리포가 있는 지역 역시 '달머리'가 있는 곳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두세 배 더 길고 또 그 이상으로 넓은 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 지도상에 도리포유원지라고 표기가 되어 있어 꽤 번잡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과는 달리 매우 조용한 분위기다.

도리포 끝에 도로를 닦다 만 흔적이 있다. 그 도로 끝이 어제 지나온 영광군의 향화도항을 가리키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리포와 향화도항 사이에 다리를 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도리포 가는 길이 남과 북 양쪽으로 다 열리는 셈이다. 유동인구가 많아질 것은 불문지사, 그때는 지금처럼 한가하고 조용한 일상과도 작별이다.

도리포를 나와 신안군 '지도'를 향해 달린다. 어떻게 된 셈인지 지도 위에 나와 있는 섬, 지도는 해제면과 거의 붙어 있다. 섬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어정쩡하다. 두 지역 사이에 바다가 지나가고 있기는 한데 마치 작은 강줄기가 하나 지나가고 있는 듯한 형국을 하고 있다.

그 섬의 북쪽과 남쪽에, 섬을 오가는 길이 열려 있다. 다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낮고 짧은 길이다. 보통 육지와 섬 사이를 잇는 '대교' 같은 게 이곳에는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는 새 연륙교를 넘어 지도로 들어갔고, 처음에는 그 연륙교가 북쪽에 있는 건지 남쪽에 있는 건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지도읍까지 가서야 겨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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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포. 77번 국도 연결 지점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정자. ⓒ 성낙선


지도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그만 길을 잘못 들었다. 북쪽으로 진입해 들어간다는 게 그만 남쪽의 연륙교를 넘은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방향을 잃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바람에 여행 코스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할 수 없다. 이런 곳, 이런 상황에서 어찌 보면 혼선을 일으키는 게 정상이다. 내친 김에 남쪽 해안을 따라 지도 읍내를 지난 다음, 바로 송도까지 들어간다. 지도의 북쪽 해안은 다른 섬들을 마저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둘러볼 생각이다.

송도는 지도에 붙어 있는 첫 번째 섬이다. 지도와 사옥도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끼여 있다. 땅이 너무 작아 다이어리 뒷장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작은 지도에는 점으로도 찍혀 있지 않은 섬이다. 그런데 이 섬에 제법 큰 규모의 수산시장이 있다. 섬 크기에 비해 항구도 비교적 큰 편이다. 섬은 작지만, 섬으로서 역할은 충실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작은 섬에서 하루가 아닌 이틀 밤을 쉬어 간다. 요 며칠 새 몸이 상당히 지쳐 있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사옥도와 지도는 내일모레, 차분히 돌아볼 예정이다. 무안군 현경면에서 해제면까지 가는 24번 국도에는 트럭이나 버스 같이 덩치 큰 차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갓길이 좁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 데 꽤 조심해야 한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5km, 총 누적거리는 1615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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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들어서고 난 뒤 찍은 연륙교. ⓒ 성낙선


#돌머리해수욕장 #월두 #도리포 #지도 #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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