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상한 아줌마, 홍대엔 무슨 일로?

평범한 아줌마들이 예술가로 변신했던 특별한 홍대 나들이

등록 2010.10.12 18:18수정 2010.10.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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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한창인 10월 8일~10일, 홍대 앞 주차장 거리에서 '2010 홍대 앞 다시보다- 수집가 홍씨 가게'라는 행사가 열렸다. 일종의 프리마켓 개념으로 예술가들을 위한 장터가 열린 것이다. 작년 가을 옛 서교동 주민센터 자리에 서교예술실험센터가 개관하면서 시작된 행사로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가 주관하며 평소 예술 작품의 판로를 구하기 어려운 무명작가들을 위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교류를 도모하고 예술작품을 통해 일반인들과 소통한다는 의미가 더해져 있다.


책, 회화, 목공, 일러스트, 도자기, 퍼포먼스, 영상 등 어딘가 혹은 정말로 독특한 구석이 있는 듯한 예술가들 사이에 평범이 진리인 비주얼의 줌마네 아줌마들이 떴다. 그녀들, 도대체 어쩌다 예술가들의 천국 홍대 앞까지 진출하게 된 걸까.

젊음의 거리 홍대에 아줌마들은 왜?

 수집가 홍씨 가게는 홍대 앞 주차장 거리에서 3일간 진행되었다.
수집가 홍씨 가게는 홍대 앞 주차장 거리에서 3일간 진행되었다.최형원


"판매 수익에 연연하지 말고 참가한다는데 의의를 두자. 그치?"

오프닝 행사가 예정된 8일 오전 마포구 연남동 줌마네 사무실에선 위로인지 다짐인지 모를 말이 흘러나왔다. 줌마네는 이번 행사에서 그동안 제작했던 손잡지 뚜벅뚜벅 연남동, 동네 한 바퀴 더, 일자리 올레를 배포하며 손수건을 판매할 예정이었다. 말은 그래도 손수건을 포장하던 바쁜 손길들에 내심 우리가 정성들여 제작한 물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면 하는 마음이 함께 담긴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지원에 덜컥 참여업체로 선정되어 부랴부랴 손수건을 제작하느라 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바빴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던 줌마네 멤버들이 언제 손수건을 만들어 봤을까. 적은 예산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제작을 완성해야 했으니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셈이다.

 행사 전 오리엔테이션에서도 그녀들은 진지했다.
행사 전 오리엔테이션에서도 그녀들은 진지했다.최형원

"동대문의 원단 상가를 시작으로 평화시장에 포장지 사러 청계천의 나염공장으로 성산동에 재단과 박음질을 맡기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었다니까요."


그 모든 일을 단 하루 만에 임무 완수했다니 과연 아줌마들의 저력이 놀랍기만 하다. 결과물이 예상했던 것에 조금 못 미치긴 했지만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오후 4시 오프닝 공연을 앞두고는 판매 부스 꾸미기에 한창이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궁리는 많은데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공들여 허투루 만든 책이 아니기에, 만들기 위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손수건이기에 자신은 있다.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뭐 좋은 생각 없어?"

때마침 볼 일을 보고 온 핑크가 합류했다. 물건을 진열한 디스플레이를 보고는 금세 아이디어를 내고 다시 디스플레이를 했다. 다행히 처음보다는 보기가 좋았다. 사진과 책으로 부스를 꾸미고 판매 문구도 그럴 듯하게 써놓고 보니 그제야 한시름이 놓여 오프닝 공연이 귀에 들어온다.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음에 "저건 뭐니?"라며 한바탕 웃고 나니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다.

글로벌 아줌마, 우리는 능력자들

금요일 저녁 파도처럼 넘치는 홍대의 인파가 부스 앞을 오갔다. 혼자서 거리에 섰다면 아마도 부끄러움에 입 한 번 열기 어려웠을 테지만 함께 라는 이름 앞에 낯선 사람들을 향해 저절로 말문이 열린다.

"저희가 직접 만든 책이에요." 
"동네 잡지랍니다."
"A4 용지에 직접 손으로 그려서 인쇄한 거예요."

 사진이 멋있어 발길을 멈췄다는 성시종씨는 메일로 꼭 사진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며 명함을 주고 갔다.
사진이 멋있어 발길을 멈췄다는 성시종씨는 메일로 꼭 사진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며 명함을 주고 갔다. 최형원

막상 말문이 트이니 하고 싶은 말들이 자꾸만 많아진다. 덤으로 "책에 실렸던 일러스트를 넣어 제작한 손수건이랍니다"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없는 책(당연하다. 서점에서도, 서점이 아닌 어디에서도 판매되지 않으니)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유난히 가을과 어울리는 손수건 색상이 예쁘다고도 하며 지갑을 열기도 했다. 자신들이 만든 책을 나눠준다는 보람과 손수건이 팔리는 재미에 '잘 팔릴까?' 했던 기우는 벌써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낸 것 같다.

"의외로 손수건이 잘 팔려. 역시 우리는 능력자인 거 같아. 하하하하."

아줌마들의 주특기인 자뻑도 빠지지 않는다. 처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행사에 참여하는 저마다 흥이 오른 모습이다. 즐겁던 분위기도 순식간, 외국인 손님이 나타났다. 한국인의 고질병 영어 울렁증에 다들 입술만 옴짝달싹 거리고 있자니 최근에 영어를 배웠던 바다가 슬그머니 나선다.

 외국인들에게도 열심히 책을 설명했지만 불행히도(?) 잘 알아듣진 못한 것 같다.
외국인들에게도 열심히 책을 설명했지만 불행히도(?) 잘 알아듣진 못한 것 같다.최형원

"우리가 만든 책이에요. 손수건도 직접 만들었구요."(물론 영어로)

그 쉬운 말이 왜 입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는지 아쉽기만 하다. 2장에 5천원이라는 말에 색상을 고르더니 흔히 전대라고 부르는 허리춤의 가방에서 5천원을 꺼낸다. 책을 권했더니 "I don't read"라고 웃으며 사양했다. 아쉬움이 두 배로 늘어난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줌마네의 부스는 성공적이었다. 조급한 마음이 충만한 도시 한복판에서 조금은 느긋하게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 그녀들이 만든 작은 공간이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풍경이었을지 모르지만 따갑도록 밝은 햇살이 쏟아진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그녀들은 충분히 즐겁게 예술가들의 행사를 즐겼다.

일상이 예술이라 생각하고 즐기기

 젊음과 예술의 거리 홍대 앞에서 그녀들은 분명 조금은 수상한 아줌마들이었다.
젊음과 예술의 거리 홍대 앞에서 그녀들은 분명 조금은 수상한 아줌마들이었다. 최형원


"처음엔 예술가들 사이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에 좀 주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알았죠. 그들이나 우리나 마음이 자유롭고 무언가를 표현해 보인다는 것은 같은 맥락이니까요."

외국인들은 한국 아줌마들의 일상을 보고 "원더풀!"이라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가사 일을 할 수 있냐고 묻기도 한다. 정말로 한 번 생각해 보라.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또 21세기인 지금도 가정 일엔 무관심한 편인 대한민국 남자들을 대신해 집안의 모든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일상을 지휘하는 아줌마들. 이러고 보니 어찌 아줌마들이 예술가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아줌마들은 가족을 향한 따뜻한 마음으로 늘 일상의 소소한 예술을 실천하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주체 못할 아줌마들의 호기심이야 말로 예술의 출발선이라기에 충분하다.

"다시 또 하라면 요? 음, 준비 기간을 좀 더 여유롭게 잡고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재밌잖아요. 사람들도 만나고 바깥 공기도 실컷 쏘이고. 꼭 나들이 나온 것 같아서 좋은데요."

전국에 숨어있는 수많은 아줌마 예술가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줌마네 멤버들이 깔깔깔 웃어 보인다. 그간의 고생은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

10일 밤 8시. 에누리 없이 행사가 정리되고 부스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와지끈 거리며 무너지는 행사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그녀들의 마음속 앨범에 줌마네와 함께 한 추억의 사진이 한 장 더 늘어났다. 신데렐라가 그랬듯 밤이 되자 평범한 아줌마로 돌아간 그녀들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홍대 앞 가게 다시 보기의 행사에는 줌마네 필진 핑크, 바구니, 금성, 바다, 꽃바람, 엄네, 모모 가 참여했다. 줌마네에서는 모두가 이름대신 별칭을 사용한다.


덧붙이는 글 홍대 앞 가게 다시 보기의 행사에는 줌마네 필진 핑크, 바구니, 금성, 바다, 꽃바람, 엄네, 모모 가 참여했다. 줌마네에서는 모두가 이름대신 별칭을 사용한다.
#홍대앞 다시보다 #주차장 거리 #수집가 홍씨 #서교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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