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유, 아줌마!"

두물머리의 사진사들

등록 2010.10.16 12:07수정 2010.10.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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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두물머리로 바람맞이를 다녀왔다. 양수대교에서 바라보는 중미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구름도 보기 좋았으며 두물머리 느티나무 밑의 할아버지는 왠지 외로워 보이기도 하였다. 멀거니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다말고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이게 뭔 청승인가도 싶다.

 

a 황포돛대 두물머리의 황포돛대

황포돛대 두물머리의 황포돛대 ⓒ 조상연

▲ 황포돛대 두물머리의 황포돛대 ⓒ 조상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떼의 카메라맨들이 느티나무 아래에 삼각대를 펴놓는다. 자주 봐오던 일이라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어느새 나도 그들 틈에 섞여있다. 조그만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삼각대 사이에서 몇 컷 찍는데 옆의 아줌마가 조리개랑 셔터속도를 맞추어준다. 고맙다고 씨익 웃어주었더니 좋단다. 나도 사진사인데. 쩝!

 

a 사색 자주 즐겨찾는 장소입니다. 서울 면목동에서 스쿠터로 30분 걸리지요.

사색 자주 즐겨찾는 장소입니다. 서울 면목동에서 스쿠터로 30분 걸리지요. ⓒ 조상연

▲ 사색 자주 즐겨찾는 장소입니다. 서울 면목동에서 스쿠터로 30분 걸리지요. ⓒ 조상연

잠시 사진을 찍다말고 고구마 파티가 벌어진다. 먹어보라는 소리가 없기에 무작정 다가가서 제일 큰 고구마로 하나 집어 들었다. 목이 메여 아줌마 "커피 한잔만 줘요" 했더니 한잔 따라준다. 이러는 나를 신기한 듯이 한 쪽에서는 수군거리고 한쪽에서는 희한한 사람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기분이 좀 그렇다.

 

a 사진사들 갑자기 찾아든 사진사들.

사진사들 갑자기 찾아든 사진사들. ⓒ 조상연

▲ 사진사들 갑자기 찾아든 사진사들. ⓒ 조상연

트림 한 번 하고 씨익 웃으며 잘먹었습니다하고 돌아서는데 아줌마 한 분이 부르신다. 손짓을 하기에 되돌아서니 고구마 세 개와 만 원짜리 두 장을 주신다. 하시는 말씀이 "열심히 사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가시다가 해장국이라도 사서 드세요" 하신다. 내 모습이 그리 흉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넋 놓고 앉아서 저 멀리 강물을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 뭔 사고라도 치려는 듯 보였나보다. 아무튼 돈까지 주시다니 대한민국 아줌마는 이래서 좋다. 되돌려주면 아줌마 무안하실까보아 그저 꾸벅하며 아무소리 없이 받아 넣고 오토바이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춘자(750CC 오토바이 이름)의 투둥투둥하는 소리가 두물머리에 울려 퍼진다.

 

a 사진사들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사진사들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 조상연

▲ 사진사들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 조상연

백미러로 뒤의 사진사 아줌마들을 보니 돈과 고구마를 주신 아줌마는 놀라서 멍하니 바라만보고 나머지 아줌마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다. 별 수 있는가? 선글라스 너머로 백미러 속에 보이는 아줌마들을 향해서 손 한 번 흔들흔들해주며 유유히 두물머리를 벗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아줌마가 주신 돈으로 기름을 넣는데 가득 채우고도 천 원이 남았다. "고마워유, 아줌마!"

 

사랑을 하고 여행을 즐기면 젊어진다고 했던가? 오토바이 소리에 파묻혀 멀어져만 가는 아줌마들의 웃으시는 모습이 싱그럽다. 가을 새벽안개처럼 어머니의 품 속 같이 그렇게 푸근하다.

2010.10.16 12:07ⓒ 2010 OhmyNews
#두물머리 #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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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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