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의 책임감

아무도 보지 않는 밤10시 꿋꿋이 자기 할일을 다 하는 할머니의 책임정신

등록 2010.10.16 12:27수정 2010.10.16 12: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4일 늦은 밤 10시에 어느 꾸부정한 할머니가 좁은 골목길에서 담배꽁초며 휴지를 골목주차된 차 뒷편까지 꼼꼼히 줍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자동차 하나가 빠듯이 지나갈 정도인 그 좁은 주택가 골목에서 폐지나 재활용품이 아닌 쓰레기를 하나 하나 꼼꼼히 천천히 줍고 계셨습니다. 늦은 약속 때문에 낯선 길에서 처음 온 길인데가 1시간째 길을 헤매던 기자지만 의아할 수밖에 없어 말을 걸었습니다.

 

기자 :"할머님, 지금 운동하시는 거에요?"

할머니: "아니야~신경쓰지 말구 가~"

 

찬 바람에 감기가 걸린 기자는 '참 이런 날씨에도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 겸 청소를 하시나보다'하고 몇 걸음을 더 지나쳤습니다. 뒤에는 자동차가 불빛을 내며 한 대 다가오고 그 불빛에 뒤를 돌아보며 인도에 올라서니 그 할머니는 주차된 차 사이로 끼어 숨다시피 계시다가 다시 또 나와서는 쓰레기를 천천히 한 발자욱 한 발자욱 옮기시며 치우시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운동하실 일은 아닌데, 좁은 도로에서 날씨도 추운데...'하며 어차피 길을 잃어 지친 김에 가게 앞에 서서 이젠 그 할머니를 보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동차가 지나간 후 30대쯤 보이는 행인으로부터 담배 한 대를 얻고 피우셨습니다. 담배 인심 참 좋은 나라지요. 그 남자분은 담배를 하나 꺼내드리고 불을 붙여 드리고 유유히 걸어갔습니다.

 

이 할머니, 계속 길 바닥의 쓰레기를 하나 하나 어쩜 그리 꼼꼼하게 줍는 지 모르겠습니다.

어르신들이나 주부들이 시장에 가실 때 끌고 다니시는 작은 손수레에 쓰레기 담을 단단한 봉지를 하나 매달고는 쓰레기를 담배곽, 아이스크림 비닐, 담배꽁초, 휴지조각, 우유팩 등 하나 하나 그렇게 느린, 그렇게도 느린 걸음으로 꾸부정하게 걸으시며 하나씩 담습니다.

이젠 도저히 궁금해서 여쭈어봤습니다.

 

기자: "할머님~ 지금 운동하시는 거에요? 아니면 동네 청소하시는 거에요? 추우신데요.

          환경미화원분들이 치우시는거 아닌가요?"

할머니: " 어~ 이거? 공짜는 아니야. 돈 받는게 있어."

기자: "네? 이시간에 하는 게 어딨어요? 낮에 동사무소에서 하는 건 알지만. 그것도 얼마

          안된다는데 이렇게 밤까지 하세요?"

할머니: " 내가 사정이 있어서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아 꼭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

기자: " 아니 그래도 이렇게 밤에 해도 아무도 모르잖아요?"

할머니: " 어떻게 해? 난 내가 해야 맘이 편한 걸."

기자: "할머니 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

할머니: " 당신 기자야? 안돼. 찍지마"

기자: "......"    (명함도 없는 터라)

기자: " 할머니 한 장만 찍으면 안될까요? 얼굴 좀 이쪽으로 해주세요."

할머니: " 찍지 마- "

 

기자는 할머니가 싫다는데 무례하게 카메라가 없어 핸드폰으로 옆 모습과 뒷모습을 두세장 찍었습니다. 성씨만이라도 알려달라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끝까지 말씀을 안하시고 얼굴도 못 찍게 하시고는 그렇게 골목을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걸으시며 가을의 찬바람 부는 좁은 골목을 늦은 밤 10시에 그렇게 당신의 할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채우시고 계셨습니다.

 

서울 대림동의 늦은 밤 길 잃은 골목에서 만난 이름 모를 어느 할머니는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책임감으로 추운 밤거리에서 꼬박 꼬박 채우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기업인들이 생각나는 까닭은 왜 일까요?

 

'공정한 사회'란 준법이라는 빌미로 개인과 가족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떤 사람들의 집단들보다, 그 할머니 같은 분을 모델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며 떨리는 심정으로

그러나 후세에게 바른 세상을 물려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눈으로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한 구석을 조명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해 봅니다.

 

부디, 이 글로 인하여 그 할머니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오직 이 세상의 귀감으로 남길 바라며...

 

첫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www.ohmynews.com

박상진 기자 manofher@nate.com

2010.10.16 12:27 ⓒ 2010 OhmyNews
#책임감 #청소 #공정한사회 #환경미화 #노인복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 정의와 공정이 살아 있는, 강한 대한민국을 지향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김 여사 성형' 왜 삭제? 카자흐 언론사로부터 답이 왔다
  2. 2 [단독] 순방 성과라는 우즈벡 고속철, 이미 8개월 전 구매 결정
  3. 3 해외로 가는 제조업체들... 세계적 한국기업의 뼈아픈 지적
  4. 4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5. 5 "모든 권력이 김건희로부터? 엉망진창 대한민국 바로잡을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