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큰딸의 마지막 경고장 같은 금연편지
최성근
'인체의 신비전' 보고 충격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인체의 신비전'을 관람하러 갔습니다. 그날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큰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인체의 신비전'을 보는데 담배 피운 사람의 폐와 피우지 않은 사람의 폐 모형이 실물처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검게 변한 폐를 본 아이가 놀라 울며 전화를 해서는 "아빠, 당장 담배 끊으세요"라며 울 먹였습니다. 엉겁결에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알았어, 끊을 게"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아이는 흡연의 피해에 대해 이것저것 듣고 본 것을 늘어 놓았습니다. 꼭 '인체의 신비전'을 보고 오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끊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냥 피우자', '피면 절대 안 돼'가 머릿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는 가운데 결국 금단현상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생일선물은 금연패치라니그리고 한해 한해가 가고, 몇 해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두 딸이 사온 선물은 다름 아닌 금연패치였습니다. 예쁘고 좋은 것도 많을 텐데, 아빠하면 담배부터 생각이 났나 봅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음 날부터 패치 붙이고 담배를 끊기로 또 약속했습니다.
며칠을 견디었지만 결국 또 무너졌습니다. 행여 아이들을 나무랄 때 이제 머리가 커진 아이들은 아빠도 담배를 못 끊으면서 왜 그러시냐며 대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할 말이 없어져 아빠의 기세도 꺾입니다.
그러면서도 금연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할 약속이기 때문에 이제는 약속하지 않습니다. 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득합니다. 그렇지만 20여 년을 태운 담배를 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연에 실패한 경험도 금연의 의지를 약화 시킵니다.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다시하는 다짐, '금연'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흡연자는 정말 설 자리도 없습니다. 담뱃값도 올린다고 하고 금연구역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가족은 물론 주변의 차가운 시선입니다.
금연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에 큰아이의 편지처럼 아이들의 거부감은 갈수록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20여 년 동안 피워온 담배이고 나름 고집스러운 애연가지만 다시 한번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금연 때마다 '한 개비만,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했던 약속을 이번에는 꼭 지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이들하고는 약속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이들 몰래 끊어 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빠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기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담배를 보고 아빠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우 진짜 말 좀 들어요!!"라는 아이의 편지 글처럼 이제는 아이들 말도 좀 들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키지 못할 약속 왜 했어' 공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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