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은 지방 자치 선거 날이었습니다. 투표를 마치고 개표 방송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10% 교사 퇴출을 공약한 후보의 당선이 두렵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나서야 그 초조감은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성적 말고는 중요할 것이 없는 학교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는 벅찬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마저 성적으로 매겨지는 살벌한 점수 경쟁에서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적 올리는 것만이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전임 교육감의 천박한 교육 철학은 '사람'은 없고 오직 '점수'로 모든 것이 평가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사라졌던 일제고사가 부활되었고, 일제고사의 비교육적인 것을 지적한 교사는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성적'만을 교육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중시하는 교육감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감의 권위를 내려놓고 수평적 리더십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며, 내가 선택한 후보의 당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교육감의 취임식 소식은 진보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교육감이 되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육감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기대는 교육감 취임 100일을 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실망과 걱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4년의 교육 행정을 하면서 왜 그런 실망이 없겠습니까? 눈여겨보면 많은 부분에서 학교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열 가지를 잘 해도 하나의 큰 실수가, 잘 한 열을 순간적으로 사라지게 합니다.
지금 학교마다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 규정을 제정하라는 교육청 공문에 학교는 많이 휘둘리고 있습니다. 교육은 아파트 재건축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일입니다.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교육감의 교육 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지금과 같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육청의 지침과 공문에 의해 규정을 제정하고 바꾸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과정 속에서 내면화될 민주적 가치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절차와 과정이 생략된 채 추진되고 있는 일은 성과주의, 업적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토론회를 하면서 체벌에 대한 찬반 논쟁을 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문제 제기를 하지 말라는 것은 침묵하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미 정한 방향으로 일방적 추진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독재 정권 때에나 있었던 일들입니다. 더구나 토론 한 번으로 드러난 모든 문제를 해결될 것으로 판단한다면 지금 추진하고 있는 토론회는 요식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서두르는 것은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한 집착으로 생각됩니다. 집착이 강할수록 실패할 확률은 높습니다. 밥이야 압력 밥솥이 있어 속성으로 되겠지만 교육의 압력 밥솥은 없습니다. 민주주의나 교육은 속성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교육감입니다.
학교에서 교사의 체벌은 오랫동안의 관행이었습니다. 또 '체벌 속에도 교육이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교사도 많이 있습니다. 교육청의 공문으로 교사의 신념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는 단순히 규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교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군사 독재 정권하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문화가 아닙니까?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체벌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교육 주체들의 깊은 성찰부터 이뤄져야 했습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교육감의 한 마디로 학교가 하루 아침에 바뀌어 질 수 있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4년 후에 '체벌은 교육 방법의 하나이다'라는 교육감이 당선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학교는 휘둘릴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체벌을 근절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게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교는 교육청의 공문과 지침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지시와 명령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청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충실하는 학교는, 정반대의 지시에도 충실할 것입니다. 틀린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손해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늦더라도 정확하게 가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는 거짓입니다.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고, 토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날짜를 정해 놓고 추진할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로 '체벌 없는 평화로운 학교' 추진에 대해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의 강력한 체벌 단절 선언은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멈추게 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종전에 체벌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부터입니다. 교육의 방법의 하나로 생각했던 교사들도 이제 들었던 '매'를 내려놓을 것입니다. 체벌로 교사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그렇게 둔감한 교사는 아닐 것입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마지막 수단이 '체벌'이었다면 이제 교사는 가르치는 수단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교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교육 환경을 바꿔내는 것에 대한 책임은 이제 교육 당국에 있습니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를 아무리 강조해도, 없는 체벌보다 나을 리 없다'는 교육감의 인권 의식을 존중합니다. '학생 인권 보호보다 우선하는 교육 정책은 없다'는 교육감의 교육 철학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교육 정책은 한 사람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툼의 소지가 있고 견해차가 큰 정책일수록 풍부한 논의 과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열 마디를 듣겠다는 생각을 할 때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문득 2010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의 자존감과 행복을 빼앗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반복되는 학습으로 '수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요. 성적이 나쁘다는 것만으로 무기력함과 좌절감에 빠져 있는 학생들에게는 체벌보다 더 무서운 일이 아닐는지요. 문제가 있음에도 방관하고 있다면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이겠지요.
정말로 성공하는 교육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0.10.20 11:04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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