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콜' 부르면 신호 지키라고 말도 못하나요

신호위반에 욕설 그리고 상사에 고자질까지... 생애 첫 대리운전 이용의 악몽

등록 2010.10.23 15:42수정 2010.10.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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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기사로 써야 하나 고민했다. 특히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어려운 경제 여건을 극복하자는 다큐멘터리인데 그중에서도 요 근래 흔히 다뤄지는 직업군이 바로 대리운전이다. 물론 연출되고 편집되는 점도 있지만 대부분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가족에 대한 무한 책임감과 직업인으로서 열심히 살려는 모습이어서 늘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이해할까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 대리기사의 일을 두고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정말 내가 한 행동이 그렇게 경우 없는 행위인지 묻고 싶었다. 바로 며칠 전, 내가 대리기사에게 당한 이해할 수 없는 수모에 대한 것이다.

 

내 생애 첫 대리운전 이용, 그것은 악몽의 시작

 

a  영화 속에서 당하는 사람은 늘 대리운전 기사였는데, 하필 첫 대리운전 이용에 험한 꼴을 당했다. 사진은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당하는 사람은 늘 대리운전 기사였는데, 하필 첫 대리운전 이용에 험한 꼴을 당했다. 사진은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 아침

영화 속에서 당하는 사람은 늘 대리운전 기사였는데, 하필 첫 대리운전 이용에 험한 꼴을 당했다. 사진은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 아침

대부분 그렇듯 저녁 6시가 넘어서면 내 휴대폰은 늘 문자메시지 소리로 요란하다. 내용은 주로 두 가지. 하나는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는 상형문자(?) 닮은 요란한 문구였고, 다른 하나는 친절하고 안전하게 대리운전을 해줄테니 이용하라는 대리운전 업체의 광고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대리운전을 이용해 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록 좋은 차는 아니지만 내 차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 일 누가 알 수 있을까. 그중 대리업체 전화번호 하나를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번호를 이용할 일이 생겼다.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술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무턱대고 승낙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으니 이동 수단이 어려웠다. 집에서 약속장소까지 거리로는 매우 가까운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서너 배 돌아야 갈 수 있는 위치였다.

 

어떻게 할까 망설일 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저장해 둔 대리운전 번호였다.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 역시 택시보다 좋겠다며 부추긴다. 새로운 경험은 가벼운 설렘도 주었다. 가서 좋아하는 이들과 '우아하게' 한 잔 한 후 내 차로 '편안하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호감이 '급'상승했다.

 

또 그동안 봐 온 문자 메시지 내용으로 본다면 비용도 택시비와 엇비슷할 것 같았다. 대충 밤 12시쯤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술자리 후 택시를 잡으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르니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마침내 처음으로 대리운전 기사에게 내 차를 맡기기로 하고 출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불행한 탑승은 시작되었다.

 

대리운전 기사에게 신호 지켜달라 했더니...

 

예상대로 약속은 유쾌했다. 퇴근 무렵이라 가는 길이 약간 막히기는 했지만 재주껏 잘 빠져 나와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준 예상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음식과 술에 행복했다. 그렇게 마시다 보니 돌아가는 술잔의 속도만큼 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어느덧 12시. 이제 그만 파할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악수 속에 함께 한 사람들을 모두 보낸 후, 나는 호기롭게 저장해두었던 번호로 대리운전 기사를 부탁했다. 집까지 비용을 물으니 1만5000원을 달라고 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으니 금방 온다는 답변이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시며 기다리는데 정말 5분여 만에 대리 기사가 도착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친구였다. 나는 차 키를 건네주며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보조석에 탔다.

 

기억하기도 싫은 악몽은 출발한 지 채 1, 2분이나 지났을까 싶은 시간에 벌어졌다. 출발해서 첫 번째 좌회전하는 순간이었다. 왕복 8차선의 큰 사거리였는데 '직진후 좌회전' 표시가 신호등에 크게 써 있었다. 그런데 직진 신호에서 대리운전 기사는 좌회전을 했다. 나는 순간, 신호위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을까 살피면서 기사에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급한 일이 없으니까 신호를 지켜서 운전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네, 뭐라구요?"

 

황당했다. "알겠습니다"라는 답이 올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답이 시비조다. 그래서 다시 재차 10년은 더 아래로 보이는 친구에게 말했다.

 

"빨리 가지 않아도 좋으니 신호를 지켜서 운전해 달라고요. 방금 전에 혹시 못 보셨나 본데 직진후 좌회전 신호에서 그냥 좌회전을 했거든요."

 

늦은 밤, 정말이지 괜한 시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이 말이 화근이 되었다.

 

"'똥콜' 받고 와서 기분도 안 좋은데..."

 

a  정말이지 '심적으로' 내 멱살을 잡은 건 대리운전 기사지 내가 아니다. 사진은 영화 <무적자> 중 한 장면.

정말이지 '심적으로' 내 멱살을 잡은 건 대리운전 기사지 내가 아니다. 사진은 영화 <무적자> 중 한 장면. ⓒ (주)핑거프린트

정말이지 '심적으로' 내 멱살을 잡은 건 대리운전 기사지 내가 아니다. 사진은 영화 <무적자> 중 한 장면. ⓒ (주)핑거프린트

내 말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리운전 기사는 차를 도로변에 세웠다. 돌아온 말이 가관이었다.

 

"아저씨, 저는 신호 지켜서 운전하지 못하니까 신호 지키는 다른 기사 불러서 가세요. 참나. 재수가 없어서…."

 

기사는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려 버렸다. 도로가에서. 어이가 없었다. 화도 나지 않았다. 너무나 황당했을 뿐이다. 다시 물었다.

 

"아니, 신호를 지켜서 운전해 달라는 것이 죕니까. 만약 그러다가 신호 위반에 걸리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말이잖아요?"

 

참으로 치욕적인 말을 들은 건 그때였다. 말 서두에 욕설을 내뱉더니 이어진 대리운전 기사의 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똥콜' 받고 와서 기분도 안 좋은데 요구하는 것은 많아 가지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말뜻으로 봐서는 얼핏 욕설 같은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물었다. "똥콜이 무슨 뜻이냐"고. 그 대리운전 기사는 물어봐줘서 고맙다는 듯 큰소리로 다꾸했다.

 

"대리 운전비 1만5000원짜리를 우리는 '똥콜'이라고 부른다. 어디서 돈도 안 되는 걸로 불러서 사람 피곤하게 이래라 저래라 시키냐? 차도 안 좋은 게 쪽 팔린 줄도 모르고…."

 

그날 내가 당한 수모를 열거하는 것이 어지럽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다. 경찰을 불렀다. 너무 화가 나서 경찰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이런 경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처음 당한 일에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도착한 경찰관의 응대 역시 황당했다. 참으란다. 그리고 그냥 가시란다. 결국 분한 마음 가득했지만 별달리 할 방법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다른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갔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일은 따로 기다리고 있었다.

 

대리운전 기사의 뒷통수, 이건 정말 아니잖아

 

다음날, 직장의 윗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어제 대리운전 이용했냐"는 물음이었다. 순간 당황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떻게 아시냐"고 하자 대리운전 기사라는 사람이 직장으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어젯밤 일이 다 끝난 후 화해를 권유하던 경찰과 최근 그 지역에서 벌어진 어떤 일에 대해 우연히 이야기하던 중, "이것도 인연인데 명함 한 장 달라"고 한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바로 옆에 서서 듣고 있던 대리운전 기사도. 아마도 그는 그렇게 내가 일하는 직장을 알게 된 것 같다.

 

"뭐라고 말하던가요?"라고 묻자 상사는 대리기사의 말이 내가 자신을 폭행하고 행패를 부렸다며 그런 사람을 직원으로 쓰면 되겠냐고 말하더란다. 거짓말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출동한 경찰이 나를 폭행 등의 혐의로 현장에서 사건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을 부른 것도 나였고 기사가 불법 운전을 시인하니 참으시면 어떻겠느냐고, 오죽하면 궂은 일 하겠느냐며 경찰이 화해를 권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따른 것이다.

 

그런데 사과 한 마디 없이 경찰 차량을 타고 사라진 후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더구나 직장까지 전화해서 악의적으로 해코지하는 그의 행태를 보니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악몽이다.

 

생애 처음 대리운전을 부탁했다가 당한 일 치고는 너무나 고약한 경험이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으로는 내가 다시 대리운전을 부탁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1만5000원짜리 '똥콜' 운운하는 그 말에 내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믿는다. 내가 만난 그날 밤 대리 기사는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경우일 뿐 대다수 대리 기사님들은 친절하고 또 안전하게 손님들을 응대할 것이라는 걸. 이로 인해 다른 선량한 분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 시간을 되돌려 그날 저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차를 가지고 약속 장소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묻고 싶다. 그가 말한 대로 내가 '똥콜'을 부른 것이 잘못인지, 아니면 준법 운전을 부탁한 것이 잘못인지. 불행하게도 나는 아직도 내 죄를 모르겠다. 정말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대리기사 #고상만 #똥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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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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