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죽든가 집에 콕 박혀 있으란 말이잖아요"

[주장] 노인 전철 무임승차는 '보편복지', 계층별 혜택 차이 위화감 조성할 수도

등록 2010.10.23 14:54수정 2010.10.2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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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인들이 주로 많이 이용하는 낮시간의 지하철

노인들이 주로 많이 이용하는 낮시간의 지하철 ⓒ 이승철


"저렇게 자리 비워놓고 가면 전기 값이 얼마나 적게 든대유? 노인들 차비 받으면 열 사람 중에 칠팔 명은 안 탈틴디..."

"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엔 총리라는 양반이 그러는 걸보면 정말 노인들 헌티 돈 받고 싶은가벼? 쥐꼬리만큼씩 주는 노령연금도 아깝고, 이 정부는 불쌍한 늙은이들 속 뒤집어 놓고 복장 터져 죽게 하려고 작정 혔나봐유..."

"어차피 다니는 지하철, 노인들 탄다고 비용이 더 듭니까?"

김황식 총리의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발언'이 보도된 지난 21일 낮 시간 전철 4호선은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마주보고 있는 노약자석 한쪽에 홀로 앉아 있던 노인 한 분이 맞은편 텅 빈 노약자석을 가리키며 화를 벌컥 낸다. 노인은 지난봄과 여름에도 언론에 보도되었던 정부부처의 지하철 요금 징수 발언과 기초노령연금 축소 운운에 대한 기억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다음 칸에서 만난 다른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73세라는 노인은 지금 우리나라 노인들이 누리고 있는 복지혜택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가난한 노인들에게 주는 매월 10여만 원과 지하철 공짜로 타는 것 밖에 더 있느냐는 것이었다.

"방귀가 잦으면 똥 나온다는데, 저 사람들 정말 강남부자들 세금 깎아준 걸 노인들에게 지하철요금 받아 메꾸려는 심보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 노인은 격한 감정을 가까스로 진정하는 표정이었다. 서울 종로 종묘공원에서 만난 노인 몇 분도 화를 내거나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다니는 지하철 노인들이 공짜로 탄다고 비용이 더 듭니까? 그리고 노인들에게 차비 받으면 노인들이 요금 내고 지하철 탈 것 같아요? 어림도 없는 소리. 공짜니까 그나마 이렇게 나와서 소일하지, 차비 받으면 반도 안 나와요. 그런데 노인들한테 차비 받아 적자 줄인다고? 뭘 알고 말해야지. 총리라는 사람이 쯧쯧."

올해 70세라는 이 노인은 지하철과 노인들의 승차문제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노인들도 옳은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는 말이야' 하고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a  저렇게 텅 빈 자리에 노인들이 앉아 간다고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텅 빈 자리에 노인들이 앉아 간다고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 이승철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아온 늙은이들에게 그까짓 지하철 공짜 좀 태워주는 것이 과잉복지여? 과잉복지, 내 참, 뭘 좀 더 잘해주려고 하지는 못할망정 주던 것 마저 빼앗겠다고 과잉복지라니..."

주변에서 듣고 있던 다른 노인들도 몹시 화가 난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몇 몇 노인들은 시무룩하게 듣고만 있었다. 그들 노인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뭘 어떻게 해요? 늙었으면 그냥 빨리 죽어야지... 빨리 죽든가 집에서 꼼짝 말고 콕 박혀 있으라는 말이잖아요?" 자조적인 말을 내뱉은 노인들의 표정은 씁쓸하고 슬픈 표정이었다.

짧은 기간에 급변한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인 상황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계층이 되어버린 노인들. 김황식 총리의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반대 발언'은 이런 노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모양이다.

a  자꾸만 소외당하는 노인들의 마음은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다

자꾸만 소외당하는 노인들의 마음은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다 ⓒ 이승철


기초노령연금, 노인 전철 무임승차는 '보편복지'

기초노령연금이나 전철의 무임승차의 복지제도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보편복지'에 해당된다. 따라서 김 총리의 말처럼 꼭 계층별로 혜택의 차이를 두는 것은 바람직한 '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계층별로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갈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무임승차 대상자를 선별한다면, 행정비용만 추가될 뿐이다.

더구나 지하철 적자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마치 노인들에게 책임전가라도 하려는 듯 무임승차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물론 김 총리의 발언이 돈 있는 노인들에게까지 무임승차혜택을 주는 것이 문제라는 의도라고 해도 고소득층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률이 현실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결국, 빈곤 노인들의 마음만 상하고 말았다.

기존 비용의 증가 없이 노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최소한의 복지가 바로 지하철의 무임승차제도가 아니겠는가. 노인들의 말처럼 어차피 운행하는 지하철에 노인들 몇 사람 공짜로 더 태운다고해서 국가나 운영주체에게 무슨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과잉복지 #소외당하는 노인들 #김황식 #전철무임승차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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