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마을, 오통마을을 가다

10일 동안의 프랑스 여행기 2

등록 2010.10.23 11:37수정 2010.10.2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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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지방에 위취한 오통마을 파리에서 북서 쪽으로 2시간 가량 가면 수채화같은 오통마을이 있다 ⓒ 조갑환


프랑스에 온지 이틀째, 우리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유명한 생태마을, 오통마을(Le Tille Othon)을 보기로 했다. 나는 사실 선진국의 생태마을을 보고 나주시에 생태계와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관광생태마을을 추진하겠다는 관계자들을 무작정 따라 더부살이로 끼워 왔기 때문에 생태마을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태마을은 소규모 공동체라는 것이다. 생태마을은 마을의 구성원들이 상호간 사회와 인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고 서로가 더불어 잘 사는 공생사회를 이룬다는 것이란다. 프랑스의 오통마을은 생태마을이면서 도시인들이 농촌에 민박하면서 여러 가지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그린투어리즘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 주민은 300명밖에 안되지만 일 년에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6000명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큰 기대를 갖고 농촌민박관광의 대표적이라는 이 마을을 찾았다. 고속도로는 산하나 보이지 않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대평원을 달렸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출신의 화가 ,밀레(1814-1875)의 그림, 이삭줍기, 만종에서 보이던 배경 데로 끝 없이 이어지는 밀밭의 대평원, 그리고 노르망디 전통양식의 농가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그러나 이런 대평원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산 하나 강 하나 보이지 않는 밋밋한 풍경들만 계속되니 나중에는 식상해서 눈이 피곤할 지경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아기자기한 풍경이 이어지는 우리의 강산이 좋은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 공동체 오통마을

오통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가운데로 아주 오래된 교회가 자리하며 또 조그마한 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통마을이 1050년 무렵에 생겼다는 데 아마 교회도 이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듯 싶었다. 미리 알고 온 자료에 의하면 이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유지 된다는 것이다. 부활절, 크리스마스 때는 마을 전체 주민이 만나고 노는 축제의 장소가 되고, 마을 주민이  만나서  대화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학교가 있지만 수업시간이라 조용하다. 마을 골목 안에도 사람하나 보이지를 않고 조용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린투어로 유명한 마을이라 관광객도 북적북적하고 좀 시끄러운 마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마을의 분위기는 우리의 시골마을처럼 조용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정원이 우리의 시골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었는데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어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이 아름다웠다. 돌담 벽에는 담쟁이 넝쿨이 덮고 있었고 삼각형 지붕의 집 이엉은 우리의 초가집처럼 갈대로 이어진 집이 많았다. 갈대로 이어진 지붕에 창포 꽃을 심어 비가 새는 것을 막기도 하고 더욱 집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었다. 요즈음 건축자재가 얼마나 발달되었는가. 그럼에도 전통과 자연을 함께 하면서 시골스럽게 살아가려고 하는 오통마을, 바로 슬로우 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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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통마을의 집들 갈대로 이은 지붕에 창포가 심어져 있었고 골목은 조용하다 ⓒ 조갑환


마을의 가운데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긴 연못처럼 연꽃, 창포들이 어우러져 있고 오리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 연못의 물은 50-60년 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마시는 공동 우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연못 주위에는 포플러 나무들이 마을을 지키는 군대의 행렬처럼 서 있었다. 포플러 나무를 심었던 이유는 포플러 나무가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빗물로 연못이 넓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을의 촌장님을 학교에서 만났다. 촌장님은 60대의 인자하게 생긴 장 피에르제크(Jean Pierozek)씨였다. 우리 일행이 촌장님을 만나는 동안 그제야 수업시간이 끝난 아이들이 놀이터로 몰려나와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약 300명쯤 된다고 들었는데 학교의 아이들은 160여 명쯤 된다는 것이다. 우리로 말하면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이렇게 시골마을에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오통마을에 젊은이들이 많이 산다는 뜻이다. 프랑스도 전체적으로 인구가 매년 감소하고 있고 농촌이 공동화 되어가고 있다는 데 오통마을은 떠나서 도시에서 전문직으로 성공한 이들이 다시 돌아와 오히려 젊은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저희들과 다른 동양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기들을 찍어 대자 신기하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저희들끼리 떠들며 깔깔대고 웃었다. 뭐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내가 무척 신기한 듯싶다. 아이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기심이 많고 귀엽고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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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통마을 학교에서 만난 어린이들 내가 자기들의 노는 것을 사진을 찍자 신기한 듯이 나에게 몰려 들었다. ⓒ 조갑환


우리 일행과 촌장님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유럽의 생태마을 중에서 당신 네 마을이 가장 유명한 생태마을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뭔가 소문이 잘 못 전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을은 그렇게 유명한 마을이 아닙니다. 몇 해 전 한국인 몇 명이 마을에서 민박을 했었는데 그게 조금 과장되게 알려 진 것 같습니다." 
 "마을에 집 지붕을 갈대를 엮어 이엉을 했는데 마을 사람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또 갈대 이엉은 수명이 어떻게 됩니까"
  "갈대 이엉은 수명이 25-30년입니다. 마을사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갈대이엉을 엮는 기능공들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갈대 이엉의 수명이 25-30년이나 된다는 데에 놀랐다. 갈대도 식물인데 썩지 않고 그렇게 오래 갈 수 있을까 사실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의 농촌관광 중시 정책

프랑스의 지방행정단계는 3단계라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돈 단위)는 레지옹이라고 하는 데 22개의 레지옹, 그 밑에 데파르트망(시, 군 단위), 그리고 꼬민(통, 리 단위)인데 오통마을은 농촌지역의 꼬민으로 마을 촌장님은 명예직으로 보수가 없고 행정적인 일을 수행할 때만 실비를 받는다고 한다.

프랑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농촌공동화 현상을 크게 겪는가 보았다. 농업소득의 감소로 젊은 인구는 모두 도시로 몰리고 농촌은 더욱 피폐되자 도시민과 농촌이 하나 되는 농촌관광을 프랑스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도시민이 농촌체험활동을 통해 공해와 각박함에 찌든 도시인의 피곤한 정서에  쉼을 주고 농업인에게는 관광 사업을 통해 농외소득을 높이자는 도시와 농촌이 서로 상생하는 정책인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학생들의 농촌체험을 의무화 하고 있다고 한다. 오통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1인1박 기준으로 6천 명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이 많고 대부분 농작물을 심어 성장하는 봄, 여름에 대부분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우리가 갔던 가을에는 아마 비수기라서 관광객이 보이지 않았을 까 싶다.

오통마을에는 '접대농민'이라는 뜻의 '아크이으 페이징(Acceuil Paysan)'농가가 있다. 오통마을의 그린투어 특징은 개인의 재미를 중시하는 다른 유럽마을과 달리 농업과 공익적 측면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도시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체험을 통해 농촌을 이해하고 자연과 농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프랑스 여행 2틀 째 우리는 유명한 생태마을 오통마을을 방문했다.


덧붙이는 글 프랑스 여행 2틀 째 우리는 유명한 생태마을 오통마을을 방문했다.
#오통마을 #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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