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미래>에서 읽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

등록 2010.10.25 18:50수정 2010.11.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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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신교(또는 '교회')와 교인들이 미래에 지금보다 더 나은 신앙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묻는다. 그러나 희망적인 답변이나 자기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은 교회 안에서 찾기 어렵다. 신앙의 미래, 교회의 미래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회의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한국 개신교회와 교인들은 예의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호를 앞세우며 '자폐'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삶과 죽음을 다루는 종교에서 정치를 생략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자기모순이다). '지금 여기서' 삶의 질을 높이고 물신과 같은 우상들을 제어하며, 세상의 거짓 질서를 고발하고 폭로하며 뒤집어 엎어버리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앙 에너지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대신에 성공 신화, 개인 구원, 인간 승리의 신화에 매달려 왔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안 다른 성원들을 배려하고 함께 나누고 고민하여야 할 공동의 관심사와 어려움을 풀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장로 대통령 무조건 지지, 극우 반동의 정치 행태, 친미 성향을 보이면서도 줄기차게 정치 불간섭을 외형으로 내세우며 개 교회 성장주의 신화를 일구고 있다. 이와 같은 행태가 교인들에게서 집단 이기주의와 반공동체 쪽 처신만 불러올 따름이다.

왜 그럴까. 이러한 교회의 행태를 우려하며 사람들은 교회 안팎에서 다시 심각하게 질문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여러 방법으로 찾게 된다. 하비 콕스가 <종교의 미래The Future of Faith>에서 제기하는 문제와 해법이 한국 교회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변화의 길로 이끌어 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제 '신앙의 미래'에서 알 수 있듯, 하비는 이 책에서 faith와 belief를 엄밀하게 구분하고 이를 기독교 역사와 신자들의 행태를 설명하는 데 적용하고 있다. 김창락 선생은 이것들을 각각 신앙과 믿음으로 옮기면서 "faith는 그 대상에게 자신의 존재 전체를 투신하여 삶의 향방을 결단하는 처신을 뜻하며, belief는 단지 교리나 신조 따위를 참이라고 승인하는 머릿속의 지적 작용에 불과하다"고 정리해 주고 있다(12 쪽 각주). "이 둘 사이 차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조적 변화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하비는 강조한다(13쪽). 그리스도교 역사는 신조의 역사가 아니며, 신앙의 사람들의 이야기(15)"라고도 말한다.

하비는, 2000여 년에 걸친 기독교 역사를 신앙의 시대, 믿음의 시대, 새 시대로 구분하면서 신앙이 어떠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설명한다. 믿음의 시대는 믿음이 신앙을 압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중요한 인물들로 해서 영적으로 활력이 있는 '신앙의 시대'였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새 시대의 흐름으로 근본주의 쇠퇴를 언급하면서 신앙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의의 하느님 나라 요구를 무시하면서 예수를 가슴에 모시는 것은 불가피하게 결국 하나의 개인주의적 경건으로 흘러가버린다고 그는 또한 강조한다(73 쪽). 정적이고 존재론적인 믿음, 탁상 위에서 주로 이뤄지는 믿음이란 그리스도교의 본래적 신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런 믿음은 정의나 사랑의 요구에 부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스도교가 예수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77 쪽)." 성령을 교리나 교회 안에 가두어 두는 것 또한 성경적이지 않다(85쪽),고 하비는 지적하는데, 이는 교회 안팎에 신선한 충격이다.

"신조가 사람들을 사라져버린 믿음의 시대에 가두어 둔다(117 쪽)." 개신교의 근본주의적인 믿음이 신앙에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는 하비의 지적은 한국 개신교와 교인들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성서문자주의의 폐해는 정교분리라는 해괴한 교회전통과 어우러져 극단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 게 한국 개신교의 현실이다.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성직자계급제도 또는 성직자중심의 교회 운영이다(물론 한국 개신교의 경우, 평신도 대표인 장로의 역할 문제가 새로운 논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믿음의 시대의 산물이면서도 한국 개신교 절대 다수의 교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비는 신앙의 미래가 밝다고 낙관한다. 그 근거로 '새로운 성령의 시대'와 소시민 신비체험자들의 활동을 든다. "그들의 활기찬 예배와 세계의 짓밟히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바로 지금의 시기가 믿음의 시대에서 전이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143)." 교회 밖 여러 (해방)운동의 영향으로 교회 안 사람들이 대화를 많이 해 나가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라고 하비는 지적한다. 여기에 역사적 예수의 재발견과 탈 서구적 그리스도교의 출현으로 다른 종교들과 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비는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서구 밖 그리스도인들이 여성의 권리, 생태론, 평화의 문제를 놓고 비 그리스도인 이웃들과 함께 일하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그는 말한다.

21세기가 시작하면서 개신교 근본주의가 쇠퇴하고, 성서문자주의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한 새로운 경향도 신앙의 미래를 밝게 한다고 하비는 보고 있다. 해방신학과 오순절 성령파들(280 쪽 이하) 또한 신앙의 미래를 밝게 하는 것이라고 하비는 언급한다. 오순절 성령파들의 경우, 교인들로 하여금 기복주의에 빠지거나 시민으로서 정치참여를 포기하도록 부추길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오늘날 인도, 한국, 아프리카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탈 교리적'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때로 의미한다 것도 그가 신앙의 미래를 낙관하게 하는 근거다.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교리적 그리스도교에서 실천적 기독교로, 교리적인 데서 벗어나 윤리적 지침과 영적인 훈련에 더 많은 흥미를 느끼는 그리스도교로, 성직자계급중심에서 소시민중심의 그리스도교로, 서구 중심에서 비서구 중심의 그리스도교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미래는 '신앙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하비는 결론짓는다.

하비가 낙관하고 있듯 세계 기독교의 변화가 한국 개신교를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하비 콕스의 <종교의 미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러한 질문을 내어 놓는다. 하비 콕스의 장밋빛 전망은 큰 틀에서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경우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

한국 개신교는 근본주의, 성서문자주의, 교리주의가 여전히 절대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가운데, 성직자중심주의, 개 교회 중심주의, 개 교회 성장주의, 비정치적이며 교회중심의 믿음 생활, 내세를 말하면서도 물질축복에 탐닉하는 교인들의 삶 등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미래, 한국에서 신앙의 미래를 결코 낙관하게 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오순절 성령운동파 사람들도 한국의 경우, 하비가 우려하고 있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소시민적 삶을 구가하고 있으며 기복주의와 탈정치참여 성향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소비자 형태의 삶(293 쪽)"도 문제다.

"사람들이 종교로 돌아서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발버둥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지 내세를 준비하려는 것이 아니다(12쪽)." "사랑과 신앙은 둘 다 믿음보다 더 근원적이다(14 쪽)."라고 하비는 이 책에서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들이 자신이 축적한 자본의 정당성을 끝없이 물어보아야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황홀경이나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서 오는 행복감이 공동체 안 다른 성원들의 삶의 질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쉼 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

한정된 재화나 자원을 독점하려 모든 힘을 쏟으면서도 '영원한 생명'과 내세를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철저히 권력중심의 정치 참여를 하면서도 정교분리를 외치고, 극우보수주의나 반동주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에는 무관심한 정치 행태를 보여주는 것도 웃기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들을 바로 잡지 않는 한 한국 개신교-가톨릭은 논외로 한다-는 미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신앙을 되새겨 보며,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한국 개신교는 심각하게 찾아보아야 한다. 교회 밖의 민주화와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에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행태를 돌아보며 세상과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첨부파일
종교 미래.jpg
덧붙이는 글 하비 콕스, 김창락 역 <종교의 미래> 서울:문예출판사, 2010
첨부파일 종교 미래.jpg

종교의 미래 - 예수의 시대에서 미래의 종교를 보다

하비 콕스 지음, 김창락 옮김,
문예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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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개신교 개혁 #개신교 정치 참여 #소시민적 영성 #대형마트 소비자 생활 #극우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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