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있는 이율 알 수 없지만, 초년 운이 강한 이 집은 집주인이 식구들과 상극이란 말에 정약용은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풍수사는 눈가에 담소(淡素)를 묻히며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러나 가상법은 손질하기에 따라 길흉이 바뀌는 게 묘밉니다. 쓸모없는 쇠붙이도 대장장이의 손끝에 놓이면 여러 용도로 바뀌듯, 이런 집은 부엌의 방위에 따라 길흉이 바뀌니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요."
"풍수사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하루 저녁에 다섯 번 우는 오명계(五鳴鷄)가 신경 쓰입니다. 또한 60년만에 다시 나타난다는 점이 목 안의 가시처럼 거치적거린 이유가 뭘까요?"
"자세한 걸 아시려면 <관상찰요(觀象察要)>를 눈여겨보십시오. 소인은 일이 있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송길주가 자리를 뜬 후에도 정약용은 한동안 집안을 서성거렸다. 검안을 끝낸 서과는 집안에 금줄을 쳐 출입을 통제하고 몇 가지 이상한 점에 대해 슬며시 얘길 꺼내들었다.
"나으리, 이번 일은 육의전 행수 나웅배의 죽은 상황과 별반 다름없어 보입니다. 스스로 목을 조른 정황이 비슷하고 사체 주변에 토끼 같은 가금(家禽)이 있었던 게 더욱 그렇습니다."
"나웅배의 주검 곁에도 있었다?"
"예에, 그땐 암탉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흐음, 토끼와 암탉이라···. 이상한 일이구먼. 서과는 <관상촬요>를 들은 적 있느냐?"
"비기(秘記)와 같은 종류라 생각됩니다만 아는 바 없습니다. 나으리께서 위항(委巷)에 잠시 나가 보시지요."
좁고 지저분한 거리가 위항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넓은 집에 사는 양반과 달리 좁은 골목에 산 대부분의 중인(中人) 계급이 위항인이었다.
양반들이 사는 곳과 경계를 이루는 청계천 일대가 역관이나 의원, 상인들이 사는 위항의 하나였다. 그렇다고 마냥 나갈 수만 없어 사헌부로 돌아온 정약용은 감찰방(監察房)에 근무하는 서리 한사람을 불러들였다. 최씨 성을 쓰는 서른이 못돼 보이는 사내였다.
"듣자하니 그곳 감찰방에, 청계천의 위항 사는 이가 있다 들었네만."
"무슨 일이신데요?"
"옛서적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도움 받을까 하네."
"그곳엔 역관이나 의원, 또는 상인들이 많이 살지만 서적에 관해 알아보신다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오늘 사체가 발견된 광희문밖이라면 점쟁이와 관계된 일이니 신당동으로 가는 게 좋을 것으로 봅니다만···, 만약 예언서같은 것이면 인왕산 쪽으로 가시는 게 합당할 것으로 봅니다."
"인왕산이라···."
"인왕산 언저리엔 서리나 아전이 많이 살아 그곳 가까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적지 않습니다. 가끔은 웃고 말 일이나 때론 생각이 깊어지는 얘기도 있습니다."
"자넨 <관상찰요>에 대해 들은 적 있는가?"
"관상찰요? 혹여 관상감에서 흘러나온 얘기가 아닙니까?"
"그럴 것이네."
"그건 비기(秘記)가 아닌 비록(秘籙)이지요. <비기>란 것도 범상치 않는 내용입니다만 <비록>은 전연 다른 내용이지요. 둘다 왕실과 관련있어 일반인들이 함부로 책 읽는 걸 금했습니다만 특히 <비록>은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중벌을 피할 수 없을만큼 내용이 충격적입니다."
흔히 풍수나 도참 등에 관해 말할 때엔 <비기>라 하지만 <비록>은 기록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걸 말한다. 그래서 '록(籙)'자엔 대 죽 변을 사용하는 데 이것은 '대나무통 안에 숨겨놓는 기록'이란 의미다. 사헌부에 있는 <기찰비록>이나 관상감의 <관상찰요>는 함부로 밖에 나타내지 못할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말일세. 내가 오늘 풍수사에게 들은 오명계란 게 관상찰요에 있는 모양이야."
"나으리, 먼저 검시기록을 살펴보시지요. 다섯 해 전에 육의전 나행수가 죽었는데 그 자의 검시기록에 오명계란 말이 있었답니다. 그로인해 감찰방에선 자정 넘어 다섯 번 우는 닭을 찾고자 장안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야···."
"나중에야?"
"한 사람의 죽음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가 누군가?"
"명종 대왕 때의 홍계관(洪繼寬)이란 점쟁입니다."
"홍계관?"
정약용은 가만이 상체를 의자에 기대며 생각을 곱씹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광희문밖 그 집, 하늘의 별자리를 뜻하는 스물 여덟 계단을 오르면 뜯겨나간 현판 위로 처마가 보이고 그 끝엔 십이지(十二支)의 어처구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신복(神卜)으로 이름을 알린 홍계관의 집이었다. 역사서엔 그가 명종의 운수점을 치다 안색이 변했다고 적고 있다.
"어허, 변괴로다. 자미성(紫微星)이 유수(柳宿)를 지나지 못하고 빛을 잃는구나! 마마, 소인이 천기를 보았사온대 유수가 자미성을 핍박하고 있사오니 머잖아 역모를 꾸민 자가 나타날 것이옵니다."
그 액업을 피할 비방으로 유수가 빛기운을 다하는 이레 동안 용상 밑에 숨어야 한다는 방책을 내놓았다. 왕은 선선히 홍계관의 말을 따랐다.
사흘이 지났을 때 무고 사건이 터졌다. 윤임이 그의 조카 봉성군(鳳城君)을 보위에 앉히려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이었다. 관련자들이 의금부 옥사에서 피 튀기며 치죄당했다.
바람을 탄 무고의 불길은 걷잡지 못하게 번져나갔다. 인종 대왕이 죽을 당시 성종의 셋째아들 계성군(桂成君)을 옹립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자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주장했고, 그로인해 유관과 유인숙이 사사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왕은 용상 밑에 몸을 숨기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자미성이 유수를 지나지 못하고 빛을 잃었다는 건, 결국 유씨 성을 쓰는 유관과 유인숙의 역모 때문이었는가. 이제 그들이 사사됐으니 과인에게 닥친 액업은 끝났으렸다.'
왕은 다시 점을 치게 하자 홍계관은 산통을 흔들어 괘사를 뽑더니 닷새를 더 지나야 한다고 낯빛을 굳혔다. 왕은 배알이 뒤틀렸으나 별 수 없이 용상밑으로 들어갔다. 그때 저만큼에서 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가자 왕은 그 쥐를 잡게 한 후 홍계관을 불렀다.
"방금 과인 앞으로 몇 마리의 쥐가 지나갔느냐?"
"세 마립니다."
"이런 고이얀!"
왕은 크게 화를 냈다. 점쟁이 홍계관의 말이 망언이라며 당장 참수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수레에 실린 채 형장으로 가면서 홍계관이 묻는다.
"이 달구지 암소가 끌고 있소, 아니면 황소요?"
"암소가 끌고 있소."
"어허, 큰일났구먼. 암소는 황소보다 걸음이 빠르니 아무래도 내가 살긴 틀린 것 같소. 이보오, 형리. 내 부탁 하나 들어주오. 내가 죽는 게 두려워 그러는 게 아니라 밥 한 끼 먹을 시간만 기다리면 내가 살 수 있소. 그때까지 기다려 주오."
그러나 형리의 얼굴에 깔린 냉랭한 기운을 보자 즉시 방법을 바꾸었다.
"이보오, 내가 죽으면 이 서찰을 나의 제자에게 주시오."
"알았수."
형리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그 무렵에 왕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쥐의 배를 가르게 했더니 뱃속엔 두 마리의 새끼가 들어있었다.
"홍계관의 점괘가 맞질 않느냐. 어서 처형을 중지하라!"
사령이 형장으로 뛰었다. 저 멀리 형장이 보이는 곳까지 말을 달리며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게 빨리 죽이라는 것으로 알고 망나니는 죄인의 목을 쳐버렸다. 의문이 남는다.
'홍계관이 비명횡사한 때문만은 아닐 터인데 명종 임금은 서른셋의 한창 때 세상을 떠난 게 기이한 일이 아닌가.'
그 이후 홍계관에 대한 얘기는 관상감의 기록에서 삭제되고 함부로 그에 대해 입에 올리는 것조차 엄벌에 처해졌다. 최씨 성의 서리가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홍계관의 부탁으로 그가 살던 집은 모양을 달리했을 것입니다. 그리했기에 오랜 세월 살기(殺氣)를 숨겨왔을 것입니다만 60년이 지난 후에도 관심 갖는 사람이 없어 요즘엔 그럭저럭 지나왔을 것입니다."
그때 서과가 다섯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육의전 지전 행수 나웅배의 검시기록을 찾아왔다. 초검을 맡은 이는 의금부 관원 박인구(朴仁龜)였다.
<목을 졸려 죽은 시체는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떴으며, 목 위는 졸린 흔적이 검은색이다. 식기상(食氣顙)은 꺼지고 목에 액흔이 감돌아 교차된 특성으로 볼 때 목 졸려 살해된 게 분명하다. 사체는 두 눈을 감았으며 이가 드러나고 빼어문 혀가 2푼이 조금 못 되게 나왔고 살빛이 누렇고 파리한 데다 둔부에 대변이 나왔으니 목 졸려 죽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대개 남에게 목 졸려 죽은 시체는 목 아래 끈이 감겨 교차하고 손가락이나 손톱에 긁힌 흔적이 있으나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구타당한 후 끈으로 목이 졸려 죽임을 당했다면 목이 졸린 숨통 아래 검은 액흔이 6촌 가량이어서 목 뒤까진 이르지 아니하고 둔부엔 대변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참조할 때 살해된 게 분명하다 할지 모르나 그건 옳지 않다. 남에게 강제로 목이 졸려 살해됐다면 시체는 당연히 입을 벌리고 눈을 뜨며 머리와 상투는 늘어지고 숨통 아래 검은 액흔은 둘레가 1척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두 주먹을 쥐지 않았으니 이것은 타인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타살은 아니라고 하나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은 지울길 없다는 이유가 붙어 있었다.
<···나웅배 죽음에서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을 지울길 없었던 건 주검 옆에 있던 닭이다. 살아있는 닭을 집안에 들인 이유가 무엇인가. 번거롭게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집안엔 음식을 만들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웅배가 죽었을 때도 부엌의 찬장 등은 비어 있었지만 나상희의 죽음은 주검이 놓인 형태를 보고 자진이란 확신을 갖지 못해 서과는 영조척을 꺼내 가늠하느라 시간을 보냈었다. 정약용은 심각해지고 있었다.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을 만큼 심각한 이유가 뭣인가?'
[주]
∎어처구니 ; 나쁜 일을 차단시키는 십이지의 형상
∎가금(家禽) ; 집에서 키우는 가축
∎관상찰요(觀象察要) ; 관상감에 전해지는 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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