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근린공원의 가을 풍경.
조을영
온종일 가정 일에 지쳐가며 생활하는 여성! 무적의 힘으로 가족을 건사하고, 밀려드는 제사와 명절에 정신없이 음식 장만하고, 시부모 봉양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동네 형님 아우들' 만나면 쉴 새 없이 수다 떨며 시댁과 남편 흉보고, 아이 커가는 것 자랑하는 '아줌마'라는 또 하나의 성(性)을 가진 이들.
왁자지껄 무대포 군단 그들이 여성스럽고 우아한 가을을 맞기 위해 전국에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학창시절 숨겨온 문학적 재능을 뽐내는 자리, 제28회 마로니에 전국 여성백일장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통 문화행사로서, 순수 문예 백일장을 표방한다. 참가 대상은 23세 이상의 여성으로서 학생이 아닌 생활인의 신분을 가진 여성으로 제한하고 있다. 글이란 것이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그 안에서 내면과 사유하고 성찰하는 것을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감안한 것이다. 그 결과로 이 백일장이 여성 감수성 문학의 산실이라는 특이성을 더욱 발현할 수 있게 한다.
해마다 가을 낙엽이 질 쯤에 펼쳐지는 이 행사는 지난 1983년부터 2008년까지 26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위치했던 동숭동의 마로니에 공원에서 펼쳐졌다. 지난해부터는 행사 주체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구로구 이전에 따라 구의 정례행사로 자리 잡아 구로근린공원으로 행사 장소를 옮겨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각 부문별 장원으로 뽑힌 세 명의 참가자에게는 문단에 정식 등단하고 작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오전 개회식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30분부터 시, 산문, 아동 문학 세 파트 중 하나를 선택해서 3시간 동안 작품을 완성하고, 오후에는 문학 강연 참가와 문화행사 관람을 즐기는 프로그램이 실시됐다. 부문별로 장원 1명, 우수상 1명, 장려상 3명, 입선 5명 등 총 30명에 대한 시상식이 거행됐다. 올해 제시된 글제는 '외갓집','아파트', '이별', '출근'의 4가지 주제이다.
아이를 데리고 행사에 참가한 새댁들은 공원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를 돌봐가며 원고지에 글을 쓴다. 팔순이 가까워오는 백발의 할머니는 돋보기 안경을 추켜세우며 창작에 골몰하며 살아온 생을 반추한다. 미혼의 젊은 여성들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깊은 가을의 서정을 음미하며 글을 구상한다.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여 여성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문학과 가을이라는 세계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