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계에서 홀대 받는 '개'

한라식물원에는 '개' 자가 붙은 나무가 있다

등록 2010.10.28 11:45수정 2010.10.2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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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에 싸인 한라수목원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다
안개에 싸인 한라수목원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다오문수
안개에 싸인 한라수목원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다 ⓒ 오문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수목원길 40에는 한라수목원이 있다. 1993년 12월 20일에 개원한 수목원은 203,249㎡(61,590평)의 광대한 땅에 1100종 10만여 본의 수목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제주도 자생식물은 790종이고 도외수종은 310종이다. 이곳은 도청에서 5㎞, 1100도로에서 0.9㎞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주민들의 산책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수목원에서는 멸종위기야생식물 1급인 한란, 풍란, 죽백란, 만년콩, 돌매화나무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개가시나무, 갯대추, 대흥란, 물부추, 박달목서, 삼백초, 솔잎란, 순채, 제주고사리삼, 죽절초, 지네발란, 파초일엽, 황근, 으름난초, 자주땅귀, 무주나무, 백운란, 솜다리의 17종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한라수목원은 전국 최초로 환경부지정 '서식지외 보존기관'으로 지정되어 희귀·멸종위기 식물의 안식처가 되고 있으며, 도심 속 자연학습장으로 크게 각광 받고 있다.

 

해발고도 167미터의 주차장에서 죽림원, 약·식용원을 거쳐 삼림욕장으로 들어서면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여기가 천국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66미터의 광이오름정상에는 식물원을 찾는 사람들이 쉬어가도록 아담한 정자와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어 관광객이나 아침 운동하러 오는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비맞은  낙엽들이 산책길에 떨어져 또 다른 꽃이 되고
비맞은 낙엽들이 산책길에 떨어져 또 다른 꽃이 되고오문수
비맞은 낙엽들이 산책길에 떨어져 또 다른 꽃이 되고 ⓒ 오문수
 중국 바람이 세긴 센가보다. 수목원 곳곳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중국 바람이 세긴 센가보다. 수목원 곳곳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오문수
중국 바람이 세긴 센가보다. 수목원 곳곳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 오문수
 난 전시실
난 전시실 오문수
난 전시실 ⓒ 오문수

수목원 중앙에 위치한 온실에는 열대식물을 위한 온도조절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천천히 나무 모양새와 나무이름을 구경하던 내 눈을 끈 것들이 있어 발길을 되돌려 자세히 살펴봤다.

 

'개가시나무, 개나리, 개족도리, 개톱날고사리, 개갑수, 한라개승마, 산개벚지나무'

 

한라개승마와 산개벚지나무를 제외한 나머지 이름은, '개'라는 접두어만 빼고 나면 나무와 식물에 붙은 이름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왜 하필 좋은 이름을 두고 '개'자가 붙었을까? 예쁘고 영리하며 사람보다 나은 개도 있는데 이렇게 천대받는 느낌을 주는 이름을 지었을까.

 

민속식물연구소장 송홍선씨의 '개' 자가 들어간 나무에 대한 설명이다

 

'개' 자가 나무이름 앞에 들어간 경우는 '변변하지 못함'의 뜻으로 쓰인 이름이 대부분이다. '개벚지나무'는 장미과(科)에 속한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로 '개, 벚지, 나무'가 합쳐진 것이며, 벚나무의 열매(버찌)가 맛이 없는데서 '개'자가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족도리
개족도리오문수
개족도리 ⓒ 오문수

 개톱날고사리
개톱날고사리오문수
개톱날고사리 ⓒ 오문수
 한라개승마
한라개승마오문수
한라개승마 ⓒ 오문수

 개가시나무
개가시나무오문수
개가시나무 ⓒ 오문수

'개꽃'이라는 말이 있다. 먹을 수 없는 철쭉을 일컫는 흔한 말이다. 참꽃이 먹을 수 있는 진달래일 때에 대비되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먹을 수 없는 꽃을 총칭해 개꽃이라 쓰는가 보다. 친구들은 어릴적 산에 진달래가 피었을 때 달짝지근한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참꽃이라 불렀고 땅에 착 달라붙어 독해서 씹을 수 없었던 철쭉을 '개꽃'이라 불렀다.

 

접두사 '개' 자는 우리말의 나무이름에 종종 붙여졌다. 송홍선씨가 조사해 놓은 자료에도 개산초나무, 개오동, 개다래, 개머루, 개비자나무, 개옻나무, 개잎갈나무, 개암나무 등 10가지나 된다.

 

한편, 나무이름에서 '개' 자는 서로 닮은 나무가 있을 때에 이를 구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썼다. 좋지 않은 나무, 즉 크기가 작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쓰임이 적은 나무이름의 앞에 붙여졌다. 과연 '개'자가 붙은 나무 모양새는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또한 '개(또는 갯)' 자가 명사로 쓰일 때는 접두사로 쓰일 때와는 뜻이 전혀 다르다. 명사의 '개' 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나 물이 흐르는 강 또는 내의 주변'을 의미한다. 이때의 '개' 자는 뒤쪽의 말에 따라 발음상 사이시옷(ㅅ)이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개' 자는 일반적으로 바닷가 주변을 뜻하는 '갯' 자와 동일하다. 갯버들, 갯대추는 '물가'를 뜻해 붙여진 이름이다

 

때마침 보슬비가 오는 바람에 운동하던 사람들이 광이오름 정상에 있는 정자에 앉아 쉬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전에서 근무하다 제주도로 발령을 받아 한라수목원 인근에서 근무한다는 장운수씨와 얘기를 나눴다.

 

 대전에서 제주로 발령이나 수목원을 매일 찾는다는 장운수씨
대전에서 제주로 발령이나 수목원을 매일 찾는다는 장운수씨오문수
대전에서 제주로 발령이나 수목원을 매일 찾는다는 장운수씨 ⓒ 오문수

- 수목원에 자주 오십니까?

"매일 아침 5시 반에서 7시까지 수목원 주위를 돌며 산책하면서 운동을 합니다. 오늘(24일)은 비가 오고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적지만 평일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 수목원에 오시는 이유와 제주도의 자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말로 얘기할 수가 없죠. 일단 공기가 좋아요. 환경이 좋고 수목원 코스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루의 설계를 합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의외로 제주에 자생하는 식물에 관심이 적어요. 한라산 정상에 간 사람도 의외로 적고, 올레길을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요."

 

- 정년 후 이사오고 싶은 생각은?

"정년하면 오고 싶은 생각이 있어 아내한테 제주도로 이사 가자고 포섭 중이죠. 캐나다에 갔을 때 환경이 너무 좋아 거기도 생각해봤지만 문화와 삶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접었고 제주도는 생각 중입니다."  

 

 수목원 가운데 있는 무덤. 수목원에서 일부러 둔 것일까? 아니면 망자한테는 죄송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면---
수목원 가운데 있는 무덤. 수목원에서 일부러 둔 것일까? 아니면 망자한테는 죄송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면--- 오문수
수목원 가운데 있는 무덤. 수목원에서 일부러 둔 것일까? 아니면 망자한테는 죄송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면--- ⓒ 오문수

길을 따라 내려오는 도중에 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10여 미터 밖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신기해 직원한테 기르는 것이냐고 했더니, 산에서 스스로 내려와 산다는 것이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꿩이 사는 곳. 이런 곳에서 살면 늙지 않을 것 같다. 

 

'참'이란 이름이 붙은 나무면 어떻고, '개'란 이름이 붙으면 어떠랴… 모두가 자연이고 우리도 모두 자연인 걸.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한라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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