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북측의 정기형씨가 남측의 여동생들을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60년 전 '맨발로 떠난 오빠'를 위해 준비한 구두도 있었다. 북측의 오빠 정기형(79)씨를 만난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 기옥(62), 기연(58)씨는 한복을 차려입고 떡과 미역 등으로 차린 생일상 앞에서 절을 올렸다.
기형씨의 생일은 음력 12월 9일이지만, 또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동생들은 미리 생일상 준비를 해왔다. 선물은 털신과 가죽신 등 신발 4켤레였다. 1950년, 기형씨가 살던 경기도 안성을 점령한 인민군들은 동네 사람들을 시켜 말에게 먹일 풀을 뜯게했고 이를 운반하기 위해 동네 사람 몇을 뽑았다. 제비뽑기 끝에 뽑힌 건 기형씨의 아버지였으나, 당시 19세였던 기형씨가 "차라리 내가 가겠다"며 낡은 베잠뱅이에 헌신발 차림으로 나섰다.
북으로 가던 중간에 낡은 신발마저 잃어버린 기형씨는 길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에게 "신발을 사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나중에 이말을 전해들은 기형씨의 부모에게는 평생의 한이 됐다.
둘째 여동생 기옥(62)씨는 "오빠의 발 사이즈를 몰라 보통 크기로 샀는데 신발이 오빠한테 조금 커 속상하다"며 "그래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아 마음은 조금 놓인다"고 말했다. 오빠 기형씨는 술 3병을 동생들에게 주며 "두 병은 조부모님과 부모님 산소에 뿌려주고 한 병은 이번에 오지 못한 첫째 동생에게 선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인민군이 시키는 일을 다하고 가족들에게 돌아오려고 했는데 다리가 끊겼다, 내 걱정을 많이 했을텐데 너무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지 필요없는 태엽시계 준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