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습 한파로 떠들썩 했지만 지난 30일 바다 수온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우럭이 물살을 헤치며 뱃전으로 끌어 올려지기 직전의 모습이다.
추광규
우럭낚시가 고패질을 시작으로 부지런해야 풍성한 조과가 기대되는 반면 광어 낚시는 조금은 게으른 낚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을 끌면서 느긋해야만 하고 챔질도 급하게 해서는 광어를 잡을 수 없기에 그렇다.
이런 관계로 초보자들의 경우 낚싯바늘이 바닥에 닿은 줄도 모르고 바닥을 끌고 가다가 어느 순간 광어가 입질을 해대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막상 낚시 채비를 걷어 올리고서야 광어가 걸린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다.
이날 내가 탄 경영호의 맨 앞 선수 쪽에서는 한 분이 우럭낚시대가 아닌 루어낚시대로 무장한 채 큼지막한 광어를 계속해서 걸어올리고 있었다.
낚시 채비와 기법을 살펴보니 바닥에 걸리지 않도록 20호 남짓의 봉돌을 낚시줄 맨 끝에 달고 봉돌의 20센티쯤 위에 외바늘 광어 전용 낚싯바늘에 인조미끼를 끼운 게 전부였다.
다만 바늘을 던진 후 바닥에 닿은 봉돌로 광어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 번씩 챔질을 하면서 바닥을 계속해서 끌고 있는 거였다. 이 같은 낚시 방법에 광어는 여지 없이 걸려들고 있었다.
내가 들고 있던 우럭낚싯대에는 이날 오전 내내 단 한 마리의 우럭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요령을 눈여겨 본 후 광어 전용 낚싯바늘을 하나 빌려서 우럭낚싯대에 매달고는 곧장 우럭 낚시겸 광어낚시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오후 3시간 남짓의 낚시에 앞에서와 같은 풍성한 조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해 경기권의 광어 루어 낚시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고 있다더니, 사람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에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떼로 잡은 광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십수 년 전 낚시에 푹 빠져들고 있던 나에게 프로급 낚시꾼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나에게 다양한 물고기가 사는 웅덩이가 있다면 그물을 쳐서 이 웅덩이의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잡아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정답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낚시로는 이 웅덩이에 있는 물고기 치어까지도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잡아낼 수 있다고 했다. 낚시는 바로 물고기의 생리에 맞추어 잡아 내기 때문이라는 것.
루어낚시의 기법은 광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잡는 것이기에 낚시하는 부근에 광어가 있다면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였다. 서해안에 서식하는 광어로서는 대재앙을 만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을 떨어냈다.
잡는 손맛도 짜릿하지만 보다 차지고 오진 것은 예전 민물낚시를 즐겨 다닐 때는 아내가 집으로 고기를 들고 오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비린내 때문이었다. 또 민물고기는 잔가시 등으로 인해 요리를 해먹는 게 단순했다. 매운탕이 고작이었기 때문.
하지만 십수 년 전부터 우럭낚시를 즐기게 되면서부터 아내는 아무리 많은 고기를 잡아가지고 와도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다. 바다 생선은 회로 먹고 매운탕으로 먹고 구워서 먹는 등 밥상을 풍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내가 생선을 다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다하기에 이젠 낚시를 다녀오면 먼저 쿨러를 들여다보고 많이 잡은 날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배시시 짓곤 한다. 이날도 쿨러가 꽉 찰 만큼 잡은 물고기를 본 아내의 얼굴에는 곧 화색이 도는 것 같다.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토요일 날 혼자 놀러 갔다고 화가 나 있는 듯 무척이나 싸늘(?)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는 낚시를 즐겼다면 이제는 먹는 맛을 즐길 차례다. 배에서 내렸다지만 마치 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 '육지멀미'에 시달리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맛있는 회를 먹기만을 고대하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 정도 수고는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게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한 시간여 동안 칼질을 한 후에야 이날 잡은 생선 중 가장 큰 60cm급 자연산 광어를 손질해 회로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