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거부하는 대한민국... 이해할 수 없다"

[인터뷰] 한국 비자 발급 거부당한 파키스탄 여성활동가 부슈라 칼리크

등록 2010.11.04 18:58수정 2010.11.0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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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여성단체 '여성노동자지원연합'이 여성 권익 보장을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 WWHL


G20에 '올인'하고 있는 정부가 인천공항에 또 하나의 '명박산성'을 쌓았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외국인이다. '국격을 높이는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은 원천봉쇄 하겠다는 것. 이로 인해 G20에 대응하기 위해 방한할 예정인 국제 NGO 인사들의 입국이 불투명해졌다.

파키스탄 여성 활동가 부슈라 칼리크씨는 G20과 관련해 입국이 저지된 첫 번째 인사다. 그는 전국여성연대의 초청으로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서강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인 '서울국제민중회의 국제여성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달 파키스탄주재 한국대사관에 비자 발급을 요청했다. 그는 파키스탄 여성노동자지원연합의 사무총장이며 세계여성행진 아시아지역 국제조정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대사관으로부터 "'국내의 국제회의 관련 안전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사증 발급이 거부됐다"는 회신을 받았다. 대사관은 또 "테러 연관 가능성 국가에는 강화된 기준으로 사증을 심사하며, 특히 파키스탄인에 대해서는 더 강화되고 엄격한 심사로 사증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그가 '테러 연관 국가'인 파키스탄 사람이라는 것이 비자 발급 거부의 이유라는 것이다.

부슈라 칼리크씨의 개인적인 이력은 비자 발급 거부 이유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는 것과 방문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들어있었지만 그는 이미 세계 각국을 방문한 국제 인사였고 '서울국제민중회의 참가'라는 명확한 방문 목적이 있었다.

그녀가 참석 예정인 서울국제민중회의는 금융위기, 개발, 기후변화, FTA 등 G20 정상회의에서 다루는 의제에 대해 민중적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보통의 학술회의와 다르지 않다.

또 저명한 세계 각국의 NGO 대표들이 참석하는 자리로, 테러가 일어나거나 폭력사태가 일어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참석하는 NGO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쟁과 테러, 폭력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슈라 칼리크씨가 몸담고 있는 여성노동자지원연합(WWHL)은 파키스탄에 스며든 탈레반 세력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치는 단체다. 테러 지원세력에 맞서는 활동가를 테러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하며 비자발급을 거부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는 한국을 방문한 후 13일 APEC 정상회담에 대응하는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물론 그녀의 일본 비자는 문제없이 발급됐다.


"파키스탄을 테러국가로 낙인찍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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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에 대응하는 '서울국제민중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부슈라 칼리크씨는 파키스탄주재한국대사관의 비자 발급 거부로 방한이 무산됐다. ⓒ 전국여성연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칼리크 부슈라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굉장히 불쾌하다, 언론을 상대로 한국대사관의 그릇된 태도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파키스탄을 테러국가로 낙인찍은 잘못된 인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정부의 결정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종식을 요구하는 NGO 단체들과 민중들의 요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3일과 4일 이메일을 통해 진행된 칼리크 부슈라씨와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자기소개 및 활동단체인 여성노동자지원연합에 대해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부슈라 칼리크(Bushra Khaliq)입니다. 2002년부터 여성노동자지원연합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파키스탄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관해, 또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단체입니다.

저는 단체 사무총장으로서 풀뿌리 여성 조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저의 업무는 여성 노동자 문제들의 언론 보도, 캠페인 기획,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 집회와 기사회견 준비와 기획입니다.

독재자 무샤라프에 반대해 파키스탄 변호사 단체가 펼친 운동, 파이살라바드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오카라 군사농원에서 군대를 반대하는 농민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밖에 세계여성행진 소속 파키스탄 국가위원회 조정위원과 파키스탄사회포럼 기획팀, '성정체성-빈곤 퇴치를 위한 남아시아 동맹'의 지역담당자를 맡고 있습니다."

- 무슨 일로 서울을 방문할 계획이었습니까?
"파키스탄에서 다양한 정치·사회적 활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전국여성연대가 8일부터 10일까지 개최하는 국제여성포럼에 여성노동자지원연합과 세계여성행진의 대표로 저를 초청했습니다. 세계여성행진은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경제적 착취 그리고 군사화(군국주의)에 반대하고 전 세계의 사회·경제적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국제 여성 네트워크입니다.

저는 이번 국제여성포럼에서 올해 파키스탄에 밀어닥친 대홍수 이후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발표할 예정이었습니다. 또 파키스탄처럼 가난한 나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같은 국제금융기구(IFI)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테러리즘과 탈레반주의 범죄행위, 미국이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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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 G20대응민중행동이 파키스탄 활동가 칼리크 부슈라에 대한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최지용


- 파키스탄주재한국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했을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다른 대사관과 뭔가 달랐나요?
"저는 지난달 21일에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요청하는 모든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창구에서 서류를 담당하는 직원이 서류를 접수하고 아주 기초적인 질문들(제가 하는 일과 한국방문 목적 등)을 물었습니다. 아주 정상적이고 정기적으로 다른 나라의 비자를 발급받을 때도 있었던 질문 수준이었습니다. 여성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 발생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비자 발급을 거부한 사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일련의 비자발급 과정에서, 파키스탄을 테러국가로 낙인찍은 잘못된 인식하에 그릇된 태도로 저를 대해왔습니다."

- 전에도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적이 있으신가요? 비자 발급 거부 소식을 듣고, 어떠셨나요?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스웨덴, 브라질, 아프리카, 태국, 인도, 네팔, 스리랑카, 미국 등을 자주 여행했고, 심지어 수차례 방문했던 나라도 있습니다. 저의 입국을 거부한 한국정부의 결정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종식하라는 국제 NGO들과 민중들의 요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대사관의 답신에 따르면, 비자 발급 거부 사유 중 하나가 '파키스탄이 잠재적 테러 국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서방국가들과 서방국민들, 특히 주류 우파 언론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잘못되고 그릇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편협하게 만들고 강화시킨 결과입니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에서 활동하는 사회운동 및 노동운동 단체들은 매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선 농경지를 차지하고 있는 군대에 대항하는 원주민 농민들의 운동, 공장주들에 대항하는 기업노동자들의 운동, 무샤라프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변호사들의 운동, 그리고 반여성적 이슬람법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여성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이러한 현실과 민중들의 투쟁은 서방언론에서 한 번도 주목받은 적이 없습니다.

테러리즘과 탈레반주의에 속한 '소수'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들의 활동이 증대할 수 있도록 범죄행위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노동자지원전선은 파키스탄에서 여성운동을 강화함으로써 탈레반 세력에 도전하고자 열심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 비자거부와 관련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요.
"한국대사관에 비자발급 거부사유를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항의서한을 보냈습니다만 아직까지 답이 없습니다. 앞으로 이틀간 더 기다려보고 답이 없으면 원래 한국 입국예정일이었던 7일, 언론을 상대로 한국대사관의 그릇된 태도에 대한 기자회견을 할 예정입니다.

-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일반적으로 비자거부는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불쾌한 것은 제가 여행사로부터 여권을 돌려받았을 때 제 여권의 '28page'가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비자 발급 거부 과정에 더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할 것입니다. 만일 대사관 직원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대사관과 여행사 양자 모두를 상대로 법적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 대사관은 3일 그녀에게 여권 훼손에 대해 사과하는 전화를 했고 5일 면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G20 #G20정상회의 #파키스탄 #탈레반 #전국여성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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