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말은 못했지만, 마음은 다 주었습니다

[어머님에게 보내는 편지6] 진핑-변경 마을의 시골장을 찾다

등록 2010.11.09 10:07수정 2010.11.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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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의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내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 기자말

어머님,
관광지의 마을에서는, 그곳에 사는 이들 조차 관광객과 하나로 흐르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네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저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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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雲南) 진핑(金平) 라오멍(老孟)의 장날. ⓒ 손희상


어머님,
위엔양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중국에서도 오지마을, 변경지대라는 진핑현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기 위해서는 신분증 검사(중국인이 여행하려면 변방 통행증이 있어야 한답니다. 외국인은 간단한 여권 검사가 이루어집니다)를 하여야 하며-괜시리 죄를 짓지 않았는데, '여권 검사를 한다'하니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입니다. 행여나 무슨 트집으로 그곳에 들지 못하게 할까라는 괜한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위엔장(元江)  다리를 건너, 신분증 검사가 이루어지면 다시 산을 거슬러 올라간 다음, 그 너머에 있는 근대 도시로 들어갑니다. 위엔양에서 5~6시간 거리에 있으면서, 세상과 또는 관광객으로부터 철저히 잊혀진 마을이기도 합니다. 진핑으로 오는 산길은 구름 위를 오르며, 이 깊은 곳에 도대체 어떤 마을의 형성되어 있을까라는 두려움 조차 일게 하는 산골 오지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고 한주(漢族)가 들어서면 언제나 근대도시로 탈바꿈을 하는 듯 하며, 소수민족이 이뤄낸 계단식 논은 사람이 이뤄낸 힘과 아름다움을 화두(話頭)로 남겨줍니다. 위엔양의 계단식논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진을 담기에는 이곳 –진핑의 논도 그 아름다움에 한 치 양보가 없을 듯 합니다.

어머님,
진핑 버스 정류장 뒷편에 방을 구해 배낭을 내려놓은 다음 -방값이 오래된 책에서 적힌 가격과 똑같았습니다-늘 그렇듯이 무작정 거리를 걸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각이라 버스정류장은 문이 닫혔으며, 마을은 시멘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현대도시와 별반 다르지가 않습니다. 이런 깊숙한 곳에 근대성을 갖춘 마을이 있는 것에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함께, '어디까지 현대적 도시가 만들어지는가', '소수민족은 모두 떠나버렸다' 등의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낯선 길 위에서, 사람에게 물어 물어가며 찾아가는 길이 조금 힘들었는지, 근대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잠자리며, 식사, 거리 걷기 등을 시나브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근대 도시가 막상 눈앞에 들어오니, 변경지대까지 근대화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슬픈 감정이 아이러니컬하게 일어납니다. 이는 육체적 피곤함을 지웠다는 데에 대한 안도감에서 오는 생각의 자만이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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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雲南) 진핑(金平) 장날 구경은 싸움 구경보다 낫다 ⓒ 손희상


저는 거리를 걷고 나서, 방안에 누워 몇 번이고 나에게 주문을 걸고 있습니다. '당신은 참 이쁘십니다' '사진을 한 장 담고 싶습니다' '참 이쁘네요. 이름이 뭐에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중국말을 노트에 적어가며, 밤새도록 연습을 하고서는 –중국에서 마지막 여행지이며, 남쪽의 가장 변방이며, 외부와 크게 닿지 않은 곳이라 오래도록 주문을 걸었으며, 생각보다 행동을 내세워 시골장을 찾아나섭니다.

진핑에서 볼 수 있는 시골장은 열두 띠 동물의 날로 정해서, 마을마다 돌아가며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거리는 두어 시간 남짓한 멍라(勐拉)이며, 멍라와 저미(者米) 사이에 삼커수(三稞樹)라는 마을도 있습니다. 저는 저미라는 마을까지 표를 끊은 다음, 어느 마을에 장이 서면 그곳에 내리려 합니다.

저미를 찾는 이유는 아마도, 아루주(何魯族) 여인들의 웃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서너 시간 떨어진 그곳이 장날(장날: 용, 개날)이 아니면 어떡하느냐는 생각도 지녀봅니다. 이런 마음으로 든 저미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조그마한 시골 동내이며 너무나 심심하여 졸음만 옵니다. 마을은 걸어서 5분이면 족히 들러보지만 더구나 돌아나오는 버스가 없다는 사실이 괜시리 슬프집니다. 내가 타고 온 버스는 이 마을에서 나를 놔두고 벌써 돌아가버렸습니다.

저는 마을에 5분 머물렀다 다시 걸어나옵니다. 무작정 걷습니다. 아마도 길 위에서 가장 많이 한 행위가 '이 무작정 걷기'가 아닐까 합니다. 걷다가 빵차를 만나, 이를 타고 나오니, 삼커수에는 이미 파장되어 모두 제 집으로 가려 합니다. 우리의 빵차 아저씨가 차에 무엇을 싫는 사이 저는 음료수를 하나 사 먹습니다. 그런데 꼬마 아가씨는 3원을 내어 주니 2원을 돌려줍니다. 혹시나 내가 실수했나 싶은가 생각했는데, 그가 건낸 것은 음료수병을 재사용하여 음료를 담은 것이였습니다. 저는 무엇인지도 모른 체 갈증을 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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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雲南) 진핑(金平) 시간의 회귀(time slip)라는 느낌. ⓒ 손희상


삼커수에서 삼륜 오토바이가 진핑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부인 듯 한데, 아저씨는 운전을 하시고, 젊은 아내는 짐칸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길이 좋지 않아서 몇 번이고 튀어 오르는 것을 저는 뒤 따라가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삶의 질퍽한 자리에서 숨쉬는 부부가 괜시리 가슴 찡하게 다가옵니다. 아마도 '화려하거나, 낯설은 소수민족을 신기하도록 바라보는 행위'보다 제 앞에 가는 삼륜 오토바이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듯 합니다. 하늘이 –장도 없는, 버스도 없는 저미까지 나를 데리고 온 것은 어쩜 이 부부를 만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스칩니다.

왔다갔다 버스를 타고, 다시 걷고, 빵차를 얻어타고, 이 시간만 대여섯 시간 째 입니다. 무엇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며 속은 좋지 않은데… 야외온천이 있다는 이야기에 다시 멈춰섭니다. 멍라 역시, 나빠(那發)의 장날 만큼 소수민족이 많이 모여드는 자리입니다. 멍라에는 싸야오, 먀오, 하니, 랸덴야오, 홍토우야오, 빠오토우야오, 망, 다이주(-族) 등의 소수민족이 모이곤합니다.

이미 오후 시간이라 장은 파했으니, 저는 '남녀 함께'라는 온천을 찾아, 푸얼짜이(普洱寨)로 찾았습니다. 마을 들머리에는 오토바이 아저씨 서너 명이 대기하고 있는데, 전 그네의 오토바이에 올랐습니다. 아저씨는 내가 알지 못하는 길을 들려주십니다. 마을 뒷 편 산속에 들어서니 정말 야외 온천이 있습니다. 그곳에 어떠한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입장료 받는 곳도 없으며, 아주 넓은 목욕탕 하나만 놓여 있습니다(중국에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볼거리가 없다거나 아직 외지인의 손을 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오후의 햇살에 아주머니 한 분이 빨래를 하고 계십니다. 아저씨는 저에게 이곳 저곳을 가르켜 주시는데, 잠시 걸어 올라가니 아주머니가 노점상을 펼쳐놓았고, 그 뒷편에서 아저씨가 알몸으로 목욕을 하고 계십니다. 길과는 고작 열 걸음 사이에, 아무런 장막도 없이, 사춘기 아가씨가 지나 다니는데… 괜시리 야한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 날 이곳에 하루 정도 묶으면서 온천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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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雲南) 진핑(金平) 행복과 물질의 상관관계...? ⓒ 손희상


멍라에 돌아와 다시 진핑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정규 버스는 없으며, 빵차가 함부로 주저 앉아 있는데, 역시 언제 갈지 기사분도 모르는 그 빵차입니다. 저는 속도 좋지 않고 하여 혼자서 빵차에 들어 누워 '니가 가면 가는 거다'라고 속 편히 누웠습니다. 기사분도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데 대해 5분 관심을 주시더니 저희끼리 한담을 주고 받습니다.

몇 명의 손님이 드나들지만 언제 갈지 모르는 버스입니다. 이곳은 손님이 왕이 아니라 기사 분이 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어 시간 떨어진 거리를 달리는 데에 대한 수고로움을 계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나 깊은 산골, 변경 지역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미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온천을 보고 온 것에 감사하며, 속이 편안해지길 바라며 주인 없는 차 안에 누워서 두어 시간 째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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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雲南) 진핑(金平) 깊은 동내로 들었습니다. 중국말도 못하는데. ⓒ 손희상


어머님,
밥을 해결 할 때에, 전 같은 집을 되도록이면 찾아가곤 합니다. 그러면 다시 온 이 손님을 반가이 맞이해 주시는데… 진핑 버스 정류장 골목 시장에 할아버지가 죽이며 만두를 파는 2평 남짓한 가게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누추한 모습이 조금 불편해 보여도, 맛이 좋은지 장 보러 오신 분들이 많이 들러주십니다.

하지만 제 할아버지의 음식 솜씨보다 두 번 째 찾아간 날 저를 반가이 맞이해 주시는 모습을 더 오래도록 기억할 듯 합니다. 그리고 진핑에 간다면, 할아버지가 저를 몰라보아도 제가 그 집을 찾아가 죽이며 만두를 시켜 먹을 듯 합니다. 진핑에서 많은 말을 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다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10. 05 .13 변경(邊境)지역 진평(金平)현에서
#중국 #윈난 #소수민족 #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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