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버린 우리 말투 찾기(46) 얄궂은 말투 12

[우리 말에 마음쓰기 957] '유용하게 이용하는 형태', '병역의 의무를 시작' 다듬기

등록 2010.11.09 11:53수정 2010.11.0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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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유용하게 이용하는 형태로

 

.. 살기 위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동물의 목숨을 죽이던 시대, 인간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훨씬 진지한 태도로 다른 생명을 대했다. 희생양으로 삼은 동물의 터럭 하나까지도 유용하게 이용하는 형태로 ..  <숨겨진 풍경>(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 달팽이, 2010) 97쪽

 

"살기 위(爲)해"는 "살려고"로 다듬고, "직접(直接) 자신(自身)의 손으로"는 "손수"나 "내 손으로"로 다듬으며, "동물(動物)의 목숨을 죽이던"은 "짐승 목숨을 끊던"이나 "짐승을 잡던"으로 다듬습니다. '시대(時代)'는 '때'나 '무렵'으로 손보고, "인간(人間)은 그것을 알고"는 "사람은 이를 알고"로 손보며, '지금(只今)보다는'는 '오늘날보다는'이나 '요즈음보다는'으로 손봅니다. "진지(眞摯)한 태도(態度)로"는 "차분한 몸가짐으로"나 "차분하게"로 손질하고, "다른 생명(生命)을 대(對)했다"는 "다른 목숨을 마주했다"나 "다른 목숨을 맞이했다"나 "다른 목숨을 바라보았다"로 손질하며, "동물(動物)의 터럭 하나까지도"는 "동물한테서 얻는 터럭 하나까지도"나 "짐승털 하나까지도"로 손질해 봅니다.

 

 ┌ 유용(有用) : 쓸모가 있음

 │   - 유용 생물 / 유용 해조류

 ├ 이용(利用)

 │  (1) 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   - 폐품 이용 / 자원의 효율적 이용

 │  (2)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씀

 │   - 이용 가치가 높은 사람

 │

 ├ 유용하게 이용하는 형태로

 │→ 알뜰히 쓰면서

 │→ 버리지 않고 잘 쓰면서

 │→ 빠짐없이 잘 쓰면서

 └ …

 

쓸 만한 값어치를 일컬어 '쓸모'라 합니다. 쓸모가 있으면 '쓸모있다'요, 쓸모가 없으면 '쓸모없다'입니다. 말뜻 그대로 낱말을 빚어서 씁니다.

 

그런데 '쓸모없다' 한 가지는 국어사전에 싣고, '쓸모있다'는 국어사전에 안 싣는 국어학자입니다.

 

이 나라 국어학자는 왜 토박이말 '쓸모있다'는 쓸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맛있다'가 있으면 '맛없다'가 있고, '멋있다'가 있으면 '멋없다'가 있는 한국말입니다. '재미있다'과 '재미없다'가 서로 맞서고, '뜻있다'와 '뜻없다'가 나란히 맞섭니다. 그러나 '쓸모있다'는 국어사전 올림말이 아닙니다. '뜻없다' 또한 국어사전 올림말이 못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널리 쓰건 말건 국어학자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한겨레 말투와 말결과 말삶을 곰곰이 헤아리지 않는 국어사전이라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유용하게 이용하는"과 같은 알쏭달쏭한 말투가 난데없이 튀어나오고야 맙니다. 말뜻을 풀자면 "쓸모가 있게 이롭게 쓴다"는 소리인데, "쓸모있게 쓴다"는 말마디는 그지없이 얄궂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정책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제대로 잘 쓴다고 하면 "잘 쓴다"고 하거나 "알뜰히 쓴다"고 하거나 "알차게 쓴다"고 하거나 "알맞게 쓴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 고이 건사하면서

 ├ 알뜰살뜰 챙기면서

 ├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 …

 

글흐름을 돌아보면서 새롭게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짐승 한 마리를 손수 잡아서 알뜰히 먹던 지난날 삶이라 한다면, 짐승 한 마리한테서 얻는 터럭 하나까지 "고이 건사한다"거나 "고맙게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알뜰살뜰 챙긴다"든지 "빈틈없이 챙긴다"든지 "버리지 않고 잘 쓴다"든지 "고맙게 여겨 잘 쓴다"든지 이야기해 보아도 돼요.

 

 

ㄴ. 병역의 의무를 시작했다

 

.. 영국에서 돌아온 카르티에브레송은 파리 북부의 부르제 기지에서 공군으로 병역의 의무를 시작했다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클레망 셰루/정승원 옮김, 시공사, 2010) 20쪽

 

"파리 북부(北部)의 부르제 기지에서"는 "파리 북쪽에 있는 부르제 기지에서"나 "파리 북쪽 부르제 기지에서"로 다듬어 줍니다. "영국에서 귀국(歸國)한"이라 하지 않고 "영국에서 돌아온"이라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공군으로 병역의 의무를 시작했다

 │

 │→ 공군으로 병역을 치러야 했다

 │→ 공군 병사가 되었다

 │→ 공군이 되었다

 └ …

 

어릴 적 학교에서 사회 공부를 할 때에 "국방의 의무"이니 "납세의 의무"이니 하면서 "(무엇)의 의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이런 "(무엇)의 의무"라는 말마디가 알맞기나 한지, 또는 올바르기나 한지 헤아린 적은 없었고, 교사 가운데 이와 같은 말투가 알맞는지 아닌지를 살피는 이 또한 없었습니다. 교과서에 적힌 대로 가르치고 배우며 시험문제로 풀고 외워야 할 뿐이었습니다.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무엇)의 의무"처럼 읊는 말마디는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를 고스란히 한글로 옮겨적기만 했을 뿐입니다. 이 또한 마땅하다 할 터인데, 이러한 일본 말투를 옳게 깨달으며 옳게 가다듬고 옳게 털어내면서 알맞고 올바른 우리 말투를 찾으려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 파리 북쪽 부르제 기지에서 공군이 되었다

 ├ 파리 북쪽에 있는 부르제 기지에서 공군으로 들어갔다

 └ …

 

우리 말투대로 하자면 "국방 의무"이거나 "납세 의무"입니다. 이 보기글에서 따로 '군인으로 뛰는 의무를 짊어졌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면 "공군으로 병역 의무를 맡았다"라든지 "공군으로 병역 의무를 다했다"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단출하게 "공군이 되었다"처럼 손질해 주어도 군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한편, 군인이 되어 여러 해를 보내는 병역 의무를 다하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말투로 내 삶을 담아내고자 힘쓸 노릇입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글투를 북돋우며 우리 넋과 얼을 나타내고자 애쓸 노릇입니다. 꾸준히 살려쓰고 한결같이 사랑해야 새로워지면서 튼튼해지는 말입니다. 언제나 아끼며 노상 보듬어야 아름다워지면서 살가울 수 있는 글입니다.

 

말다듬기라든지 글가꾸기는 의무가 아닙니다. 권리 또한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누구나 이 땅에서 이웃과 복닥이며 살아가고 있는 동안 저절로 어루만지며 주고받는 말삶이요 글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2010.11.09 11:53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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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말익히기 #글다듬기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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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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