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부대가 소속 한국인 직원을 불법 사찰한 후 담임목사인 시민단체 임원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이 때문에 부당해고는 물론 한국 민간인과 교회에 대한 불법사찰 논란이 일고 있다.
군산 미공군기지(미 7공군 제8전투비행단)는 지난달인 10월 21일, 해당기지에서 전기기사로 근무해 오던 정아무개씨(45)를 "군산기지 안정성에 위험인사로 간주되는 사람과 부적절한 접촉을 유지해 오고, 승인되지 않은 인사에게 군사기지 접근을 제공했다"는 이유를 들어 해고 조치했다. 정씨는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지난 17년 간 사무직 11급 전기공학기사로 근무하며 전기 공사 관련 설계와 감독 등 업무를 맡아 왔다. 정씨의 부친 또한 30년 이상 군산기지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미 공군기지가 해고사유로 들며 지목한 '위험인사'는 정씨가 15년 째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유승기 담임 목사(군산 돌베개 교회)다. 유 목사는 시민단체인 '군산 평화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군산 평통사)의 전 대표를 맡아 왔다. 또 미 공군기지 측이 '승인되지 않은 인사에게 군산기지 접근을 제공'했다고 한 것은 지난 2007년과 2009년 각각 한 차례씩 유 목사가 정씨의 직장을 방문(심방)한 일을 지칭한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www.peaceone.org)은 1994년 창립되어 한국 평화운동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로 문규현 신부, 배종렬 전 전농 의장, 홍근수 목사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군산평통사는 평통사의 군산지역 조직으로 미군기지 문제 해결과 평화군축 운동을 평화적으로 전개해 온 시민단체다.
시민단체 전 대표가 왜 '위험인사'로 분류된 것일까? 왜 해당 교회 신도가 절차에 따라 일터를 찾아 신앙생활을 격려하러온 담임목사를 만난 일이 해고사유가 되는 것일까?
<오마이뉴스>가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주한미공군 특수수사대 "반미단체 회비 낸 당신 믿을 수 없다"
지난 6월 10일 오전 10시경. 주한미공군 특수수사대(AFOSI, Air Force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s)가 군산 미공군기지(미 7공군 제8전투비행단)를 찾아 정씨와 면담을 요청했다. 특수수사대는 처음에는 정씨에게 근무년수와 종교 등 평범한 내용을 묻다 군산평통사와 관계를 집중적으로 캐묻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씨는 "군산평통사는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로 알고 있을 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알지도 못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특수수사대 관계자는 "전체 교회 신도(약 50여 명)중 절반가량이 군산평통사 회원이고 담임목사가 대표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씨가 군산 여성의 전화와 평화선교회, 소속 교회 등에 후원 회비를 낸 기록을 제시하며 "이런 반미단체에 회비를 낸 당신의 진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추궁을 이어갔다.
특수수사대가 반미단체로 규정한 '군산여성의 전화'는 다문화가정 및 폭행을 당해 하소연하는 여성 등을 돕기 위한 상담활동 등을 주로 하고 있으며 '평화선교회'는 발달장애아동 대안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등 활동을 주로 하는 순수 자선구호단체다. 그런데도 특수수사대가 이들 단체를 반미단체로 규정한 것은 '평화선교회'를 주로 돌베개 교회 신도들이 운영하고 '군산여성의 전화' 전 사무국장이 한때 군산평통사의 후원 회원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때문으로 보인다. 즉 군산평통사의 후원회원 명부까지 뒤지고, 군산평통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단체와 사람들을 모두 '반미단체'이고 '위험인사'라로 단정한 것.
군산여성의 전화·평화선교회가 반미단체?
특수수사대는 특히 지난 2007년과 2009년 유 목사가 교인들의 신앙 활동을 돕기 위해 군산기지의 정씨 사무실을 신앙생활 격려차 방문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후 유 목사가 돌베개교회의 인터넷 비공개 카페에 사진과 함께 심방 결과를 올려놓은 자료를 마치 스파이 활동의 증거인양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씨는 "당시 목사님의 군산기지 방문은 오로지 선교활동의 일환이었고 합법적인 출입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며 "부대 식당에서 식사 후 기도하고 사진 촬영이 허용된 시설대 등에서 기념사진 몇 장 찍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수수사대 수사관들은 정씨에게 "군산평통사에 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느냐" "당신이 스파이냐, 아니면 담임 목사가 스파이냐?"라고 물으며 또 다른 기지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자백할 것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조사는 정씨의 자택에 있는 컴퓨터를 압수하는 등으로 오후 6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조사를 끝낸 특수수사대는 정씨의 기지출입증을 압수한 데 이어 군견과 함께 무장한 헌병을 앞세워 정씨에게 소지품을 챙기게 한 후 기지정문 밖으로 추방했다. 결국 이 날이 정씨가 17년 동안 몸담으며 헌신해 왔던 군산 미공군기지에서의 마지막 근무일이 되고 말았다.
"당신이 스파이냐, 아니면 담임 목사가 스파이냐?" 추궁
이후 군산 미공군기지 측은 지난 9월 정씨에게 '해고예정통보서'를 발송했다. 이 통보서에는 해고사유로 "지난 2008년 9월 11일부터 실시된 미공군특수수사대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귀하는 최소한 반주한미군단체와 관련돼 있으며 그들의 부대출입을 용이하게 했다"며 "한미보안성 대상물에 피해를 입힐 수 있어 미군시설 접근을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정씨에 대한 사찰을 2년여 전부터 벌여왔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정씨는 "유 목사님의 기지방문은 교인들의 일터를 방문해 신앙적으로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안 절차를 비롯 안보를 해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어 "유 목사님의 군산평통사 활동은 개인적인 것이며 교회 안에서 군산평통사에 대해 말씀하거나 활동을 종용한 적이 없다"며 "저 또한 올해 초에서야 유 목사님이 군산평통사 전 대표를 맡았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거듭 "유 목사님과는 목사와 신도의 관계만 유지해 왔다"며 "이로 인해 군산기지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 목사도 군산 미공군 측에 보낸 해명서를 통해 "순전히 목회활동 차원에서 비행장을 방문해 신앙생활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기도해 준 것이 전부"라며 "군사기밀에 관련된 질문은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뒤늦게 정씨가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은 까닭을 알고 저로 인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이 저려왔다"며 "선처한다면 정씨와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군산 미공군기지 측은 지난달 21일, 정씨에게 해고예정통지서에서 밝힌 것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해고처분했다.
정씨는 곧바로 "증거자료를 직접 검토해 반박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고, 상황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며 주한미군 한국인직원 소청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거듭된 항변에도 끝내 해고.. 군산시민단체 "심각한 명예훼손+불법사찰"
직장을 잃은 지 6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정씨는 여전히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불안감에 싸여 있다.
정씨는 "스파이 혐의로 몰려 너무 힘들었다"며 "누군가 계속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고, 사찰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인터넷이나 전화하는 일 자체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당해고를 취소하고 원상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목사는 "황당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일기도 한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내가 위험한 인물이라면 나를 직접 조사할 일이지 왜 죄없는 교인을 해고시키느냐"면서도 "정씨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면 책임을 떠안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군산평통사 김판태 사무국장은 "교회의 목사가 군산 평통사 대표라는 이유로 평통사를 반미위험단체로 규정하고 스파이혐의를 덮어씌워 조사한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자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미 공군 특수수사대가 정씨의 수사과정에서 평통사 자료와 돌베개 교회의 교인들만 볼 수 있는 자료를 내보인 것은 주한미군 수사기관이 한국의 시민단체는 물론 한국 민간인과 교회를 일상적으로 불법 사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산 미 공군기지 "규정상 관련 자료 공개하거나 답변 못 한다"
그는 또 "군산 미 공군의 해고조치는 근거 없는 부당해고를 금지한 한국 노동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근거로 한미 소파(SOFA)(제17조 3항)의 '합중국군대가 설정한 고용조건 및 노동관계는 대한민국의 노동 법령의 제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과 한미 소파 합의의사록(제17조 3항)의 '합중국 정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고용을 종료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군산지역시민사회단체는 이후 대책위를 구성해 기자회견과 집회, 기도회, 서명운동, 고소고발 등 가능한 모든 대응을 해나가기로 했다. 지역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일 전북도경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불법사찰에 대한 진상규명과 주한미군 당국의 대국민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군산 미 공군기지 공보팀 관계자는 12일 기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번 일은 개인정보에 관한 일인데다 소청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규정상 관련 자료를 공개하거나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군산 미공군기지 측의 입장과 해명을 거듭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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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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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목사를 왜 여기에? 당신 스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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