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시골 초등학교 마당에 서있는 은행나무들이 한가롭다
송상호
집에서 글을 쓰며 대기하고 있으니 오후에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 지금이야. 올 때 혼자 오지 말고 언니랑 같이 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후딱 해치우지."아내의 명령(?)을 받은 나는 처형을 중간에 태우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는 은행잎과 은행이 어지럽게 늘려 있다. 양이 적잖았다. 아니 많았다고 표현해야겠다. 그런데, 장비는? 이때 아침에 아내가 들려 준 말이 얼핏 떠오른다. 흘려들었던 말이다. 차 트렁크에 무엇이 실려 있다는 바로 그 말.
트렁크를 열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속엔 플라스틱 다라와 물통이 몇 개나 있다. 은행을 쓸어 담을 쓰레받기와 눈치우개까지. 아침에 이걸 준비하느라 아내는 나름 바빴을 터. 당장 꺼내들어 처형과 함께 은행 주워 담기 작전에 돌입했다.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 처형이 나에게 또 다른 미션을 부과한다.
"제부, 은행이 많기도 하고 담기도 그러니 대형 비닐봉투를 사오세요. 그래야 주워 담기도 편하고, 들기도 편하고, 차에 쌓기도 편할 거 같아요.""넵. 분부대로 합죠."
이렇게 인근 철물점을 향해 차를 돌렸다. 대형 비닐봉투를 사들고 현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아내도 와 있었다. 벌써 두 사람은 은행 주워 담기 삼매경에 푹 빠졌다. 내가 오는 지도 잘 모른다. 조금 떨어져서 보고 있으니, '저렇게도 재미있을까. 사실 이렇게 귀찮은 일을'이란 마음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늦가을이라 벌써 해가 넘어가고 어둑해졌다. 주워 담고 묶고 실고. 수차례 반복했다. 주워 담으니 보기보다 많았다. 처형과 아내는 한 알이라도 더 담으려고 애쓴다. 이미 어두워진 현장이라도 눈에 불을 켠 두 여인에겐 밝은가 보다. 이만하면 됐으니 갔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몇 봉지를 담아 트렁크에 하나 가득 실어서야 일이 끝났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내가 병원 바로 주변에 있는 은행나무 밑에서도 은행 몇 봉지를 주었단다. 병원 원장과 함께 점심시간에 주웠다고. 간호사와 원장 둘이서 은행 주워 담으며 낑낑대는 모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온다. 그 은행 봉지를 원장이 자신의 차로 근처에 실어 날라 주고 갔단다. 다음에 은행 주울 때, 꼭 자신과 같이 해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바로 그 은행 몇 봉지를 차에 실어 담고서야 작전은 완전히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