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네 발에 난 것은 수염인가? 날개인가?

보물 제446호 선림원지 홍각선사의 비를 찾아가다

등록 2010.11.20 12:36수정 2010.11.2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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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각선사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선림원지에 소재한 홓각선사비
홍각선사비양양군 서면 황이리 선림원지에 소재한 홓각선사비하주성
▲ 홍각선사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선림원지에 소재한 홓각선사비 ⓒ 하주성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양양에서 출발을 하여 구룡령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선림원지는, 미천골이라는 계곡 곁에 자리하고 있다. 이 선림원지에는 4종의 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선림원지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보물 제446호는, 홍각선사의 탑비 귀부 및 이수이다. 이 탑비는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이다.

 

2004년 10월에 선림원지를 답사 갔을 때는 비 받침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이 남아있었다. 이번 14일 답사를 할 때는 새롭게 조성을 한 비가 새워져 있어 완전한 옛 형태를 보이고 있다. 비문이 파편만 남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재현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 홍각선사 탑비의 재현된 비는 가로 94cm, 세로 173.5cm 정도로 1340자 내외가 있던 것 중, 710자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귀부와 이수 2004년 10월 답사 때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었다
귀부와 이수2004년 10월 답사 때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었다하주성
▲ 귀부와 이수 2004년 10월 답사 때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었다 ⓒ 하주성

측면 이 거북은 사실적인 묘사로 뛰어난 조각술을 보인다
측면이 거북은 사실적인 묘사로 뛰어난 조각술을 보인다하주성
▲ 측면 이 거북은 사실적인 묘사로 뛰어난 조각술을 보인다 ⓒ 하주성

 

통일신라 때 세워진 홍각선사 비

 

보물 제446호인 홍각선사 비는 통일신라 때인 정강왕 원년인 886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탑비는 비받침인 거북이인 귀부와 몸돌, 그리고 머릿돌인 이수로 구분한다. 홍각선사 비의 받침의 거북은 목을 곧추세운 용의 머리모양으로 바뀌어있다. 이런 형태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로 넘어가는 시대에 많이 보이는 형태이다.

 

이 거북이는 땅에 납작 엎드린 형태이며,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네 발은 모두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어, 거북이의 발톱이라고 보기보다는 용의 발톱에 가깝다. 이 거북이의 또 하나 특징은 바로 네발에 있는 수염 같은 형태이다. 발에서 나온 이 수염 같은 형태의 조각은 보기가 힘들다. 아마도 이 수염 같은 것은 날개를 대신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귀부 거북이 몸에 용의 머리를 갖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이는 귀부의 특징이다.
귀부거북이 몸에 용의 머리를 갖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이는 귀부의 특징이다. 하주성
▲ 귀부 거북이 몸에 용의 머리를 갖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이는 귀부의 특징이다. ⓒ 하주성

뒷면 뒷면의 꼬리는 길게 튀어 올라있고, 양발에는 수염 같은 것이 위로 올라와 있다
뒷면뒷면의 꼬리는 길게 튀어 올라있고, 양발에는 수염 같은 것이 위로 올라와 있다하주성
▲ 뒷면 뒷면의 꼬리는 길게 튀어 올라있고, 양발에는 수염 같은 것이 위로 올라와 있다 ⓒ 하주성

비 연결부분 비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비 연결부분비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하주성
▲ 비 연결부분 비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 하주성

 

특징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예술

 

귀부의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비의 몸돌을 세우는 자리이다. 이곳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측면에는 소라형의 무늬 위에 안상이 새겨져 있다. 비머리인 이수에는 전체적으로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중앙에는 네모난 안에 '홍각선사비명'이라는 전액을 양각하였다. 그 주변에는 온통 운용문을 새겨, 신라 하대 석비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비 머리에 보면 두 마리의 용은 서로 마주하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은 머리를 아래로 하고 양편에 자리하고 있다. 비명을 사이로 대각으로 마주하고 있는 형태이다.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힘찬 조각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재현된 비문 모두 1,340자 정도 중에서 710자 정도를 복원하였다
재현된 비문모두 1,340자 정도 중에서 710자 정도를 복원하였다하주성
▲ 재현된 비문 모두 1,340자 정도 중에서 710자 정도를 복원하였다 ⓒ 하주성

이수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 적었으며 용과 그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이수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 적었으며 용과 그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하주성
▲ 이수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 적었으며 용과 그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 하주성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다. 하지만 비의 파편과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 홍각선사는 경서에 해박하고 수양이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비문은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다른 곳에서 모아 새긴 것이라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비명과 비문의 찬술 관련자, 홍각선사의 생애와 선사가 입적 후 비를 새우게 된 내력 등을 적고 있다.

 

처음 찾았을 때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 한편에 엎드린 듯 보이 던 홍각선사 탑비. 새롭게 조성을 한 탑비로 인해 제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국에 이렇게 비문이 사라진 수많은 문화재들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11.20 12:36ⓒ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홍각선사 #비 #귀부 및 이수 #선림원지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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