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시 박미선-소설 최시은 당선

남성문화재단 기금 출연, 올해로 16회째... 27일 오후 4시 시상식

등록 2010.11.22 18:46수정 2010.11.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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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만 원 고료의 2010년도 '진주가을문예' 수상자가 가려졌다. 시 부문(상금 500만 원)에서는 작품 <알츠하이머>를 낸 박미선(41, 마산)씨, 소설 부문(상금 1000만 원)에서는 <그곳>을 낸 최시은(40, 부산)씨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기금을 출연해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로 16회째를 맞았다.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지난 10월 말까지 공모를 마감하고 예심과 본심을 거쳐, 22일 결과를 발표했다.


이전에는 '진주신문가을문예'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는데, 진주신문이 휴간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4시 진주교육대학교 교육지원센터 506호실에서 열린다.

a  2010년도 진주가을문예 당선자인 박미선(시, 왼쪽)씨와 최시은(소설)씨.

2010년도 진주가을문예 당선자인 박미선(시, 왼쪽)씨와 최시은(소설)씨. ⓒ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


시와 소설 심사위원들은 전국 규모로 이루어진 '가을문예'의 응모작이 수준 높았다고 평가했다.

시 심사를 맡았던 강희근 시인은 "<알츠하이머>를 쓴 응모자는 순도가 높다. 참새, 돼지우리, 전깃줄, 뚝배기, 한 숟가락, 냉장고, 어머니 등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언어들이 언어 독자적으로 뛰고 있다"며 "우리는 그 뛰기를 보면서 소녀가 땅에다 그림을 그려 놓고 칸칸이 뛰는 놀이(사방놀이)를 보는 듯한 경쾌함을 느끼게 되었다. 꼭 의미를 추구하는 분들은 이 시를 읽으며 우리가 대충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강 시인은 "<메타세콰이어>를 쓴 응모자나 <서울, 아이티공화국 그리고 농담>을 쓴 응모자도 상당한 수련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 <메타세콰이어>의 적정한 상상력이나 <서울, 아이티공화국 그리고 농담>의 상상력 뛰기는 다 시를 허구의 틀로 본다는 점에서 실력이 출중하다"며 "그렇더라도 이번 수상은 그 허구의 순도 면에서 훨씬 기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 <알츠하이머>를 낸 분에게 돌아갔다. 만장일치다. 상은 한 판의 씨름과 같다. 둘째·셋째 판에서는 승자가 어느 쪽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자' 다시 시작하자"라고 밝혔다.

소설 본심을 맡았던 임철우 교수(한신대)는 "<그곳>의 최대 강점은 인물 내면을 밀도 있게 읽어낼 줄 아는 작가의 예리하고 치밀한 눈에 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주인공 및 그의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생생하고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며 "소설의 서두부터 결말 까지를 관통하는 '복어'의 상징적 장치와 그 반전도 매우 효과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어머니와 아버지, 나와 그를 대칭으로 배열해놓고 작가는 능란한 입심으로 이야기를 끝까지 힘 있게 밀고 나갔다. 그 힘이 때로는 넘쳐서인지, 호흡이 다소 거칠어지는 감도 없지 않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활약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 당선자 박미선씨는 함양 출신으로 경남대와 마산대 평생교육원에서 시 공부를 해왔다.


박미선씨는 "알츠하이머는 조금씩 지워지는 내 내면의 지우개다. 놓치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과 벌이는 싸움이다. 자존심이란 녀석은 이미 꼬들꼬들 말려 해장국으로 끓여 먹었다. 난 더 밑바닥과 조우할 것"이라며 "나에게 이런 행운이, 아니 잘못 온 전화겠지. 끊고 나서 한참을 공룡과 놀았다. 시는 나에게 일기다. 가장 친한 친구요, 배신하지 않는 애인이다. 알츠하이머는 국밥집에서 태어났다. 여섯 달간 인생 공부 많이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당선자 최시은씨는 경북 울진 출신으로 신라대 국어교육과를 나왔고, 부산에서 소설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시은씨는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면서 "더욱 노력해서 가슴 속 말들을 더 멋지게 내보내 보라는 독려의 의미로 알아듣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작 <알츠하이머>... 박미선 작

어느 날, 나는. 구름이 찔끔찔끔 흘리고 간 볼트를 주워 먹다 돼지우리로 들어왔다 찌지직, 뚝, 뚝

<나는 참새> 나는

전깃줄 잘라 고무줄놀이를 한다 살찐 돼지, 털로 새끼줄을 꼬아 목에 채웠다 코에 코뚜레를 끼우고 밤의 팬티를 갈아입혔다 가슴살 조금씩 잘라 밥상보를 만들자 앙상해진 두 다리가 콘센트에 꽂혔다 조잘거리던 혀를 뽑아, 나는

돼지의 기억들로 수의를 만들고 있다 눈에선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 돼지는 머리에 꽃밭을 만들어 나를 유혹했다 뚝배기 안에는 구멍 숭숭한 양말들이 눌어붙어 있다 한 숟가락씩 먹을 때마다 불러오는 건 배가 아니라 허기였다

발등에 무화과나무 한그루 심을 수 없다 머리를 주머니에 꾸역꾸역 쑤셔 넣으며 만원이 되길 기다려 보고, 솜사탕을 손가락에 먹여 보기도 한다 돼지 안의 돼지 한 마리 지퍼를 열고 유치원에 간다 비오는 날 대추나무 가지에 네발 사다리를 올려놓고 싶다 아직은 아니라고 안녕, 안녕, 주머니에 넣어둔 만원이 수염을 낳을 될 때까지 잠시 풍선껌을 씹으며 기다려 돼지야

묵은 김치를 꺼내려 김치 냉장고를 연다 숨이 하얗게 끊겨 겨울을 내뿜고 있는, 먼저 돼지와 협상한, 어머니의 손 전화 한 구.
#진주가을문예 #남성문화재단 #김장하 이사장 #박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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