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졸업장의 무게

토렴 단상

등록 2010.11.28 16:39수정 2010.11.2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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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선 국민(초등)학교조차 마치지 못 하셨다. 떵떵거리던 갑부였던 할아버지께서 작고하시자 할머니 또한 홧병으로 덜컥 세상을 버리셨단다. 이에 일가붙이들은 절호의 기회다 싶어 어린 나이였던 아버지와 숙부님을 아예 내쫓곤 그 많은 재산을 죄 강탈했단다.

 

그 바람에 사면초가의 타관객지로까지 밀려나신 아버지와 숙부님의 파란만장한 고생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렇긴 하더라도 그같은 불학의 설움을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이관시키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여간 나는 초등학교의 졸업식 날에도 정작 학교엔 갈 수 없었다. 이는 그날 역시도 불변하게 찢어질 듯 가난한 집구석인 터였기에 내 밥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문이었다.

 

세월은 여류하여 아버지께선 내 아들이 불과 세 살일 적에 그만 이승과의 인연을 버리셨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불학의 설움과 고통을 그러나 나만큼은 기필코 내 아이들에게 부전자전으로 넘겨선 안 된다고 진작부터 이를 깨물며 다짐했다. 올 2월, 아들에 이어 딸도 학사모를 쓰면서 받은 대학의 졸업장을 나에게 주었다.

 

순간 만감이 교차하면서 그 육중한 무게의 졸업장은 내가 받는 고진감래의 어떤 훈장이란 느낌이었다. 어제와 오늘 새벽까지 사이버 대학의 졸업 수련회가 있어 다녀왔다. 이제 오는 12월 29일이면 대망의 졸업식이다. 평생 단 한 번조차도 받아보지 못 한 졸업장이기에 내가 느끼는 졸업장에 대한 의미와 감흥은 분명 남다를 수밖엔 없다.

 

못 배웠다고 무시당하고 아는 것도 쥐뿔 없는 놈이 까분다며 조소의 손가락질은 또 그 얼마나 무수히 받으며 살아온 세월이었던가! "공부 잘 하던 널 못 가르친 게 한이 된다!"며 눈을 감으신 아버지. 따지고 보면 아버지도 왜 이 아들을 남들처럼 많이 가르치고 싶지 않으셨을까...

 

"너는 꼭  판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죄 없는 이를 구하고 바른 세상을 만들어야 돼!" 하지만 아버지의 그같은 바람은 고작 꿈으로만 부유하는 뜬구름이었다. 어쨌든 한창 나이 때 눈을 감으신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하여 한겨울의 백짓장처럼 마음이 하얗게 시려온다. "아빠도 드디어 올해는 졸업이시죠? 그간 주경야독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암튼 졸업식 날엔 저도 가서 축하해 드릴 게요."

 

졸업식 날 아들과 딸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껏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나의 졸업장 수령 소식에 오죽이나 좋아하셨을까...  오늘 새벽까지의 뒤풀이 과음으로 말미암아 아까 겨우 일어났다. 속을 풀 요량으로 냉장고를 여니 어제 오전에 먹고 남은 삶은 국수가 보였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국물을 우려내야 겠다. 그리곤 삶아진 국수를 토렴(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함)하여 후루룩 먹으면 속이 좀 나아질 성 싶다. 나는 모정(母情)에 이어 교육적 수혜까지도 충분히 받지 못한 그야말로 굴곡의 삶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과 기타의 관심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영원한 토렴의 그것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2010.11.28 16:39ⓒ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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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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